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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0일 토요일

측은지심惻隱之心 - 불쌍히 여기는 마음, 타고난 착한 마음으로 四端사단의 하나

측은지심惻隱之心 - 불쌍히 여기는 마음, 타고난 착한 마음으로 四端사단의 하나

측은지심(惻隱之心) - 불쌍히 여기는 마음, 타고난 착한 마음으로 四端(사단)의 하나

슬플 측(⺖/9) 숨을 은(阝/14) 갈 지(丿/3) 마음 심(心/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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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성품이 착하나 나쁜 환경이나 물욕으로 인해 악하게 된다. 孟子(맹자)의 性善說(성선설)이다. 사람들은 천부적으로 선한 본성을 갖고 태어나기에 남의 고통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데 그것이 仁義禮智(인의예지)의 근본을 이루는 四端(사단)이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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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荀子(순자)는 性惡說(성악설)을 주장하며 선천적으로 한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을 그대로 두면 파멸하기 때문에 禮(예)로써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해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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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누구나 남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한다는 마음이 있다고 주장하며 재미있는 어린아이와 우물 이야기를 예로 든다. 公孫丑(공손추) 상편에 있는 내용을 보자. 한 어린아이가 우물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면, 누구나 다 깜짝 놀라며 불쌍히 여기게 된다(見孺子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 견유자장입어정 개유출척측은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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怵은 두려워할 출, 惕은 두려워할 척. 이는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제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동네의 친구들에게 어린아이를 구해 주었다는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며, 어린아이를 구해 주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소리가 싫어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자 공손추에게 문답을 통해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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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인의 단서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의 단서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의 단서이다(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측은지심 인지단야 수오지심 의지단야 사양지심 예지단야 시비지심 지지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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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처음 오는 어린애의 성품이 성선인지 성악인지 측정할 수는 없다. 연쇄살인마나 강간 살인범같이 이 세상에 해악만 끼치는 사람을 보면 태어나면서부터 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진이나 화재, 수해의 재난을 입은 이재민들, 끝없는 행렬의 난민들에게 국가가 나서기 전에 일반 시민들이 줄이어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것을 볼 때는 선하게 태어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2024년 3월 8일 금요일

측은지심惻隱之心 - 불쌍히 여기는 마음, 타고난 착한 마음으로 四端사단의 하나

측은지심惻隱之心 - 불쌍히 여기는 마음, 타고난 착한 마음으로 四端사단의 하나

측은지심(惻隱之心) - 불쌍히 여기는 마음, 타고난 착한 마음으로 四端(사단)의 하나

슬플 측(⺖/9) 숨을 은(阝/14) 갈 지(丿/3) 마음 심(心/0)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성품이 착하나 나쁜 환경이나 물욕으로 인해 악하게 된다. 孟子(맹자)의 性善說(성선설)이다. 사람들은 천부적으로 선한 본성을 갖고 태어나기에 남의 고통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데 그것이 仁義禮智(인의예지)의 근본을 이루는 四端(사단)이란 이야기다. 이에 반해 荀子(순자)는 性惡說(성악설)을 주장하며 선천적으로 한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을 그대로 두면 파멸하기 때문에 禮(예)로써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해 대조적이다.

맹자는 누구나 남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한다는 마음이 있다고 주장하며 재미있는 어린아이와 우물 이야기를 예로 든다. 公孫丑(공손추) 상편에 있는 내용을 보자. 한 어린아이가 우물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면, 누구나 다 깜짝 놀라며 불쌍히 여기게 된다(見孺子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 견유자장입어정 개유출척측은지심). 怵은 두려워할 출, 惕은 두려워할 척. 이는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제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동네의 친구들에게 어린아이를 구해 주었다는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며, 어린아이를 구해 주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소리가 싫어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자 공손추에게 문답을 통해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강조한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인의 단서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의 단서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의 단서이다(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측은지심 인지단야 수오지심 의지단야 사양지심 예지단야 시비지심 지지단야).’

이 세상에 처음 오는 어린애의 성품이 성선인지 성악인지 측정할 수는 없다. 연쇄살인마나 강간 살인범같이 이 세상에 해악만 끼치는 사람을 보면 태어나면서부터 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진이나 화재, 수해의 재난을 입은 이재민들, 끝없는 행렬의 난민들에게 국가가 나서기 전에 일반 시민들이 줄이어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것을 볼 때는 선하게 태어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