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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7일 목요일

◇ 청국장, 치즈가 프랑스 사람에게 고향의 맛이면 청국장은 한국 사람에게 고향의 향이다

◇ 청국장, 치즈가 프랑스 사람에게 고향의 맛이면 청국장은 한국 사람에게 고향의 향이다

◇ 청국장, 치즈가 프랑스 사람에게 고향의 맛이면 청국장은 한국 사람에게 고향의 향이다

프랑스 파리 공항에 도착했을 때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공항 라운지에서 한 젊은 부부가 유모차를 옆에 둔 채 바게트에 치즈를 껴서 먹고 있던 것이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희미한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달착지근한 조미료 향이 공기 중에 퍼져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저 속살로 파고들면 분명히 청국장 냄새가 날 것이다. 고속도로가 아니라 국도변을 걸어 보면 안다. 그 길이 강원도라면 보이는 식당의 4할이 막국수집이요 나머지 6할이 청국장집이리라. 그곳에 들어가면 익숙한 모습을 한 아낙이 손님을 반기고 바쁘게 음식이 나온다. 된장찌개보다 깔끔하고 김치찌개보다 가벼운 청국장 맛은 어디를 가도 다르지 않고 그윽한 냄새는 어디를 가도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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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중림동 두메산골은 꼭 시골 국도변까지 가지 않더라도 청국장 맛을 볼 수 있다고 웅변이라도 하듯 서울역 지척에 있다. 외벽에 붙은 큰 간판과 잡다한 메뉴를 보면 시내의 흔한 밥집 같다. 그러나 안에 들어서면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그 향에 먹어야 할 음식이 하나로 수렴된다. 청국장을 시키면 이내 나이 든 사내가 윤이 나는 냄비에 청국장을 깔고 두부와 채소를 수북이 올려 내온다. 찬으로 가져온 무생채와 콩나물도 그 양이 상당하다. 여기에 상추와 김 가루를 가득 채운 대접도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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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균이 죽으니까 오래 끓이지 마세요"라는 조언 한마디를 남긴 사내를 뒤로하고 가스 버너의 불을 댕긴다. 금세 끓은 청국장을 국자로 푹푹 퍼서 대접에 담은 뒤 콩나물과 무생채, 김치를 넣고 쓱쓱 비벼 먹는다. 향은 쿰쿰하지만 입에서 감도는 맛은 개운하다. 그 맛 덕에 이것저것 섞어도 맛이 무겁거나 번잡하지 않다. 양볼 빵빵하게 밥을 먹고 있으면 사내가 또 한마디 거든다. "시골에서 먹듯이 청국장을 듬뿍듬뿍 넣어 드세요." 그 말이 끝나면 이 집이 나무 그늘 같고 기차 소리 멀리 들리는 논밭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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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시내로 들어오면 소공동에 사직골이 있다. 본래 사직동에서 사직분식이란 이름으로 영업하던 이 집은 재개발로 장소를 옮기며 이름도 바꿨다. 호젓한 사직동을 떠났어도 이 집을 지키는 사람은 그대로고 맛도 변함이 없다. 평일 점심이면 하얀 셔츠 입은 회사원 긴 줄이 늘어서고 주말이면 근처 백화점 직원들과 근처 공사장 인부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상 위에는 바삭한 김이 통째로 올라오고 시원한 김치와 새큼한 김치볶음, 고등어조림 같은 반찬이 모자라지 않게 빈 곳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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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슷하게 썬 파와 풋고추를 넣은 청국장이 큼지막한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나오면 낮은 천장을 한 이 집에는 밥 먹는 소리만 들린다. 깔끔한 티를 내는 사람도 없고 식욕이 떨어져 보이는 이도 없다. 이 땅에서는 이런 음식을 먹는다고 소리 없이 외치듯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소가 여물을 씹듯 청국장 그릇을 비운다. 여전히 맑은 눈으로 손님들에게 모자란 반찬을 채워 주는 주인장을 보면 그 맛의 배경이 무엇인지 가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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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오개 언덕을 넘어 합정동에 오면 좁은 도로를 끼고 콩청대(사진)가 있다. 이름대로 두부, 순두부, 콩국수, 청국장까지 콩으로 하는 거의 모든 요리를 내놓는 곳이다. 조리복을 차려입은 남편은 주방을 지키고 모든 손님에게 공손한 아내는 홀을 본다. 반찬부터 매콤한 순두부, 하얀 순두부 모두 빠지는 게 없지만 그 중 막 시작한 콩국수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정화수를 떠놓은 것처럼 무엇 하나 잡스러운 맛이 없는 콩물을 마셔보면 숨겨진 고수를 만난 듯 겸손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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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간 듯이 깎아지르는 맛의 콩국수와 달리 청국장은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순하고 둥글둥글하다. 순두부를 토핑처럼 올리고 담백하게 끓여낸 청국장에 밥을 비비고 그때그때 바뀌는 찬을 올린다. 우아 하고 감탄할 만한 음식은 아니다. 드문드문 씹히는 콩과 뭉근한 애호박 같은 것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비강을 통해 익숙한 냄새가 흘러든다. 세련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향기다. 그 속에는 범접할 수 없는 거만함도 누군가를 깔아뭉개는 위대함도 없다. 익숙하여 쉽게 잊고 마는 이 나라의 오래된 향내가 낮게 깔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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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