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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9일 화요일

관녕할석管寧割席 - 관녕이 자리를 자르다, 친구와 교제를 끊다.

관녕할석管寧割席 - 관녕이 자리를 자르다, 친구와 교제를 끊다.

관녕할석(管寧割席) - 관녕이 자리를 자르다, 친구와 교제를 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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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롱 관(竹/8) 편안 녕(宀/11) 벨 할(刂/10) 자리 석(巾/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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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의 사귐을 기리는 성어가 많은 중에 성격이 전혀 다른 사이인데도 우정을 지속한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잘 알려진 竹馬故友(죽마고우)는 단지 어릴 때 같이 놀이를 했을 뿐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친구라는 뜻이었다. 管鮑之交(관포지교)는 管仲(관중)에게 일방적으로 양보한 鮑叔牙(포숙아)에 의해 빛이 난 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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刎頸之交(문경지교)는 사이가 좋지 않다가 한 친구가 제 잘못을 알고 사죄함으로써 후세의 기림을 받은 경우였다. 친구 사이란 조금의 차이만 있어도 틀어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관계이지만 희생과 양보가 따라야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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管寧(관녕, 158~241)이란 사람은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魏(위)나라 출신의 덕망 높은 학자였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어렵게 공부했고,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평상에 꿇어앉아 글을 읽어 무릎에 닿은 상의 바닥이 뚫어졌을 정도였다. 이 관녕이 자리를 잘랐다(割席)는 이야기는 친한 친구와 서로 뜻이 맞지 않아 교제를 끊었다는 데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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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녕이 젊은 시절에 늘 함께 공부하고 같이 놀았던 華欽(화흠)은 사람됨이 완전히 달랐다. 宋(송)나라의 문학가 劉義慶(유의경)이 지은 명사들의 일화집 ‘世說新語(세설신어)’ 德行(덕행)편과 그 내용을 인용한 唐(당)나라 李瀚(이한)의 아동용 교재 ‘蒙求(몽구)’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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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두 사람이 밭에서 김을 매다가 금덩이를 발견했다. 관녕은 흙으로 덮었고 화흠은 만져본 뒤 던졌다. 또 한 번은 자리에 같이 앉아 책을 읽는데 밖에서 고관의 행차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관영은 자세를 바꾸지 않고 독서를 계속 했지만, 화흠은 책을 덮고 그것을 구경했다. 관영이 자리를 갈라 따로 앉으며 너는 나의 벗이 아니라고 말했다(寧讀書如故 欽廢書而看 寧割席分坐曰 子非吾友也/ 녕독서여고 흠폐서이간 녕할석분좌왈 자비오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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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녕의 곧은 자세만 칭송해야 할까. 화흠은 吳(오)나라와 위나라에서 부름을 받고 고위직 벼슬을 지냈다. 청렴하여 백성들의 신망도 높았다. 인물을 천거하라 했을 때 화흠은 몇 번이나 관녕을 권했지만 끝내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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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친구 邴原(병원, 邴은 고을이름 병)과 함께 세 사람을 한 마리의 용이라 했고, 화흠은 용머리라 했다. 칼 같은 친구 관녕과 그것을 받아준 화흠의 아량이 빛난 우정이 된 셈이다. 한 때의 사소한 일로 틀어졌으면 서로 이해하고 양보해야 우정이 오래 간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2024년 3월 18일 월요일

관녕할석管寧割席 - 관녕이 자리를 자르다, 친구와 교제를 끊다.

관녕할석管寧割席 - 관녕이 자리를 자르다, 친구와 교제를 끊다.

관녕할석(管寧割席) - 관녕이 자리를 자르다, 친구와 교제를 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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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롱 관(竹/8) 편안 녕(宀/11) 벨 할(刂/10) 자리 석(巾/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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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의 사귐을 기리는 성어가 많은 중에 성격이 전혀 다른 사이인데도 우정을 지속한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잘 알려진 竹馬故友(죽마고우)는 단지 어릴 때 같이 놀이를 했을 뿐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친구라는 뜻이었다. 管鮑之交(관포지교)는 管仲(관중)에게 일방적으로 양보한 鮑叔牙(포숙아)에 의해 빛이 난 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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刎頸之交(문경지교)는 사이가 좋지 않다가 한 친구가 제 잘못을 알고 사죄함으로써 후세의 기림을 받은 경우였다. 친구 사이란 조금의 차이만 있어도 틀어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관계이지만 희생과 양보가 따라야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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管寧(관녕, 158~241)이란 사람은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魏(위)나라 출신의 덕망 높은 학자였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어렵게 공부했고,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평상에 꿇어앉아 글을 읽어 무릎에 닿은 상의 바닥이 뚫어졌을 정도였다. 이 관녕이 자리를 잘랐다(割席)는 이야기는 친한 친구와 서로 뜻이 맞지 않아 교제를 끊었다는 데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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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녕이 젊은 시절에 늘 함께 공부하고 같이 놀았던 華欽(화흠)은 사람됨이 완전히 달랐다. 宋(송)나라의 문학가 劉義慶(유의경)이 지은 명사들의 일화집 ‘世說新語(세설신어)’ 德行(덕행)편과 그 내용을 인용한 唐(당)나라 李瀚(이한)의 아동용 교재 ‘蒙求(몽구)’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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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두 사람이 밭에서 김을 매다가 금덩이를 발견했다. 관녕은 흙으로 덮었고 화흠은 만져본 뒤 던졌다. 또 한 번은 자리에 같이 앉아 책을 읽는데 밖에서 고관의 행차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관영은 자세를 바꾸지 않고 독서를 계속 했지만, 화흠은 책을 덮고 그것을 구경했다. 관영이 자리를 갈라 따로 앉으며 너는 나의 벗이 아니라고 말했다(寧讀書如故 欽廢書而看 寧割席分坐曰 子非吾友也/ 녕독서여고 흠폐서이간 녕할석분좌왈 자비오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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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녕의 곧은 자세만 칭송해야 할까. 화흠은 吳(오)나라와 위나라에서 부름을 받고 고위직 벼슬을 지냈다. 청렴하여 백성들의 신망도 높았다. 인물을 천거하라 했을 때 화흠은 몇 번이나 관녕을 권했지만 끝내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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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친구 邴原(병원, 邴은 고을이름 병)과 함께 세 사람을 한 마리의 용이라 했고, 화흠은 용머리라 했다. 칼 같은 친구 관녕과 그것을 받아준 화흠의 아량이 빛난 우정이 된 셈이다. 한 때의 사소한 일로 틀어졌으면 서로 이해하고 양보해야 우정이 오래 간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2024년 3월 4일 월요일

관녕할석管寧割席 - 관녕이 자리를 자르다, 친구와 교제를 끊다.

관녕할석管寧割席 - 관녕이 자리를 자르다, 친구와 교제를 끊다.

관녕할석(管寧割席) - 관녕이 자리를 자르다, 친구와 교제를 끊다.

대롱 관(竹/8) 편안 녕(宀/11) 벨 할(刂/10) 자리 석(巾/7)

친구와의 사귐을 기리는 성어가 많은 중에 성격이 전혀 다른 사이인데도 우정을 지속한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잘 알려진 竹馬故友(죽마고우)는 단지 어릴 때 같이 놀이를 했을 뿐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친구라는 뜻이었다. 管鮑之交(관포지교)는 管仲(관중)에게 일방적으로 양보한 鮑叔牙(포숙아)에 의해 빛이 난 우정이었다. 刎頸之交(문경지교)는 사이가 좋지 않다가 한 친구가 제 잘못을 알고 사죄함으로써 후세의 기림을 받은 경우였다. 친구 사이란 조금의 차이만 있어도 틀어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관계이지만 희생과 양보가 따라야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管寧(관녕, 158~241)이란 사람은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魏(위)나라 출신의 덕망 높은 학자였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어렵게 공부했고,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평상에 꿇어앉아 글을 읽어 무릎에 닿은 상의 바닥이 뚫어졌을 정도였다. 이 관녕이 자리를 잘랐다(割席)는 이야기는 친한 친구와 서로 뜻이 맞지 않아 교제를 끊었다는 데서 나왔다. 관녕이 젊은 시절에 늘 함께 공부하고 같이 놀았던 華欽(화흠)은 사람됨이 완전히 달랐다. 宋(송)나라의 문학가 劉義慶(유의경)이 지은 명사들의 일화집 ‘世說新語(세설신어)’ 德行(덕행)편과 그 내용을 인용한 唐(당)나라 李瀚(이한)의 아동용 교재 ‘蒙求(몽구)’에 실려 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밭에서 김을 매다가 금덩이를 발견했다. 관녕은 흙으로 덮었고 화흠은 만져본 뒤 던졌다. 또 한 번은 자리에 같이 앉아 책을 읽는데 밖에서 고관의 행차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관영은 자세를 바꾸지 않고 독서를 계속 했지만, 화흠은 책을 덮고 그것을 구경했다. 관영이 자리를 갈라 따로 앉으며 너는 나의 벗이 아니라고 말했다(寧讀書如故 欽廢書而看 寧割席分坐曰 子非吾友也/ 녕독서여고 흠폐서이간 녕할석분좌왈 자비오우야).’

관녕의 곧은 자세만 칭송해야 할까. 화흠은 吳(오)나라와 위나라에서 부름을 받고 고위직 벼슬을 지냈다. 청렴하여 백성들의 신망도 높았다. 인물을 천거하라 했을 때 화흠은 몇 번이나 관녕을 권했지만 끝내 나가지 않았다. 다른 친구 邴原(병원, 邴은 고을이름 병)과 함께 세 사람을 한 마리의 용이라 했고, 화흠은 용머리라 했다. 칼 같은 친구 관녕과 그것을 받아준 화흠의 아량이 빛난 우정이 된 셈이다. 한 때의 사소한 일로 틀어졌으면 서로 이해하고 양보해야 우정이 오래 간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