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삭위인七朔偉人 - 일곱 달 만에 태어난 큰 인물
칠삭위인(七朔偉人) - 일곱 달 만에 태어난 큰 인물
일곱 칠(一/1) 초하루 삭(月/6) 클 위(亻/9) 사람 인(人/0)
조금 모자라는 사람을 놀림조로 칠삭둥이라고 한다. 칠푼이와 같은 말이다. 매달 음력 초하루를 朔日(삭일)이라 하는데 삭이 지나야 한 달이 되기 때문에 개월을 나타내는 단위도 된다. 어머니 뱃속에 열 달을 채워야 정상인데 일곱 달 만에 세상에 나왔으니 모자란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산모나 뱃속 아이의 건강이 좋지 않은 미숙아였을 뿐 출생 후 관리를 잘 하면 정상아와 똑 같다. 일곱 달 만에(七朔) 태어나서 더 훌륭하게 자라난 사람(偉人)도 있으니 대표적인 인물이 韓明澮(한명회, 1415~1487, 澮는 봇도랑 회)다. 이후 태어날 때에는 부족했어도 나중에 잘 되는 경우를 의미하게 됐다.
한명회라 하면 조선 端宗(단종)때 首陽大君(수양대군)을 도와 1453년 癸酉靖難(계유정난)을 일으키고 世祖(세조) 즉위에 앞장선 공신으로 알려져 있다. 또 死六臣(사육신)의 복위운동도 좌절시켜 그들을 주살하는데 주도적으로 가담한 악명으로 이름났다. 生六臣(생육신)의 한 사람인 南孝溫(남효온)의 ‘秋江冷話(추강냉화)’ 등 여러 곳에 한명회의 일화가 기록되어 전한다. 몇 가지만 알아보자.
한명회는 일곱 달 만에 칠삭둥이로 태어났는데 사지가 갖추어지지 못해 안을 수도 없었다. 부모까지 일찍 여의어 늙은 여종이 흰 솜옷에 길렀는데 뜻밖에도 잘 자랐다. 등과 배에 검은 사마귀가 있어 사람들이 특이하게 여겼다. 자라서 靈通寺(영통사)라는 절에 들어가 공부할 때 한 노승도 머리 위에 광채가 난다며 귀한 징조라 일러줬다. 그 곳에서 權擥(권람, 擥은 가질 람)과 사귀며 막역지우로 지냈다. 권람이 먼저 벼슬을 하고 세조에게 한명회를 추천한 이후 거사를 계획하고 앞장서 행동하여 승승장구, 영의정까지 올랐다.
서울 鴨鷗亭洞(압구정동)의 이름은 그 곳에 있었던 한명회의 호를 딴 정자 이름이 있다. 한강 남쪽에 터를 잡고 벼슬에는 뜻이 없이 갈매기와 벗할 것이라며 이름 지었는데 실제로는 그것과 멀었다. 일등공신 네 번, 두 임금의 장인 등 영화와 권세를 누리고 살았던 한명회는 사후 燕山君(연산군)의 甲子士禍(갑자사화)때 尹妃(윤비) 폐위에 가담했다 하여 剖棺斬屍(부관참시 됐다가 후일 복원되는 등 파란이 이어졌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