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묘편시掘墓鞭屍 -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하다, 통쾌한 복수를 넘어 지나친 행동을 말함
굴묘편시(掘墓鞭屍) -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하다, 통쾌한 복수를 넘어 지나친 행동을 말함
팔 굴(扌/8) 터 기(土/8) 채찍 편(革/9) 주검 시(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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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스페인 영화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이나 이탈리아 동화 ‘엄마 찾아 삼만리’란 작품이 있었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혈육을 찾아 나선 과정을 그려 당시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같이 감동을 주는 스토리는 없어도 반대되는 말이 떠오르는데 日暮途遠(일모도원), ‘해는 지고 갈 길은 멀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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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을 펼치고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한 伍子胥(오자서)의 변명이었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의 楚(초)나라 명문 출신 오자서에서 유래한 널리 알려진 성어 중 무덤을 파고(掘墓) 시체에 매질을 했다(鞭屍)는 이 말도 그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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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서의 부친은 楚平王(초평왕)의 태자를 가르친 스승으로 간신 費無忌(비무기)의 모함을 받고 형과 함께 죽음을 당한다. 오자서는 복수를 위해 이웃 나라를 떠돌다 吳(오)나라에서 10년이 넘도록 절치부심 끝에 마침내 기회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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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의 공자 闔閭(합려, 闔은 문짝 합)를 도와 왕위에 오르게 한 뒤 중책을 맡고 병법의 대가 孫武(손무)와 함께 대대적으로 초나라를 침공하게 됐다. 당시는 不俱戴天(불구대천)의 원수인 평왕과 간신 비무기가 이미 사망한 이후였으나 원한에 사무친 오자서는 평왕을 이은 昭王(소왕)이 도주한 뒤에도 수도 郢(영)을 유린했다. ‘史記(사기)’ 오자서열전에는 이 부분을 간략히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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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서는 소왕을 찾는데 실패하자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에 300번이나 매질을 했다(伍子胥求昭王 既不得 乃掘楚平王墓 出其尸 鞭之三百/ 오자서구소왕 기부득 내굴초평왕묘 출기시 편지삼백).’ 여기에 ‘東周列國志(동주열국지)’ 등에는 살을 붙인다. 평왕은 보복을 예견하고 호수 속에 무덤을 만들고 50여 명의 석공을 시켜 가짜 석곽 아래 관을 따로 만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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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 지키기 위해 석공을 무덤 속에서 살해했는데 유일하게 살아나온 한 노인이 원귀들의 한을 푼다며 오자서에게 가르쳐줘서 복수를 할 수 있었다. 상세한 묘사는 이렇다. ‘손에 아홉 마디로 된 구리 채찍을 들고 평왕의 시신을 300번이나 후려치니, 살이 문드러지고 뼈가 부러졌다(手持九節銅鞭 鞭之三百 肉爛骨折/ 수지구절동편 편지삼백 육란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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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서의 친구 申包胥(신포서)가 복수의 수법이 잔인하다고 질책하자 갈 길이 멀어 순서를 거꾸로 하게 됐다고 해명하는 倒行逆施(도행역시)가 더 따르는 이야기다. 오자서의 원한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죽은 원수의 시체를 찾아 매질을 가했을까. 일견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시체까지 욕보인 점에서는 지나치다는 평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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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옛날이 아니라도 잘못을 고치면서 더 어그러지게 하는 일은 흔하다. 근래의 사건 하나만 보자. 이전 정권의 미운 놈 몰아내기 블랙리스트를 단죄하면서 그보다 더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서도 뻔뻔한 처사를 보면 시체 매질 그 이상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