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란만장 단종의 짧은 생生 4편
■ 파란만장 단종의 짧은 생(生) 4편
단종이 태어나는 날부터 그의 앞날을 보여주는 듯 한 불길한 일이 있었다. 단종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 세종이 기쁨에 겨워 2급 이하의 죄수를 모두 사면하는 대사면 교지를 발표했는데, 이 교지를 다 읽기도 전에 용상 근처의 큰 촛대가 땅에 떨어져 버렸다. 세종 역시 안 좋은 예감을 느꼈는지 그 촛대를 치워 버리도록 명했다. 결국 일주일 후 단종의 생모 세자빈 권씨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은 것이다.
이 세자빈 권씨는 이후 현덕왕후로 추존되어 소릉에 매장되었는데,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한 화(禍)가 여기까지 미쳐 소릉이 강가로 이장된다. 이걸 다시 원래 자리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 생육신 중의 한사람인 남효온이다. 만약, 현덕왕후가 일찍 사망하지 않고 대비가 되었다면,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된 아들을 잠깐이나마 수렴청정하여 보호했을 것이고, 계유정난이라는 비극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세종은 당시 세자(문종)가 건강이 나빠져 일찍 사망할 경우 수렴청정을 할 왕실 웃어른(대왕대비나 대비)이 없는 상태이고 세손(단종)은 너무 어리므로 여러 신하들에게 그를 부탁했고, 심지어 죽기 직전에 김종서에게는 군사를 이끌고 수도로 돌아오라는 명까지 내렸다. 문종 역시 김종서 등에게 세자(단종)를 부탁했을 정도로 왕실 기반이 너무 약했다. 문종이 살아생전 새 왕비를 들이지 않아 사후 단종에게 든든한 후원세력을 만들어주지 못한 점도 못내 아쉽다.
단종은 어릴 때 무척이나 총명했다고 한다. 총명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할아버지 세종대왕이 감탄했을 정도였다. 왕위가 위태로울 시절에도 할 말은 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 세간에서 말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약하고 어린 왕" 의 이미지는 아니었던 듯하다.
즉위할 때 나이가 12살이었으나 성종은 13살에, 명종도 12살, 숙종은 14살에 즉위했다. 뒤로 가면 순조는 11살, 헌종은 8살에 즉위한 걸 보면, 즉위에 있어서 나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성년이 될 때까지 통치를 해줄 왕실의 확고한 후견인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탓에 세종과 문종으로부터 단종을 보호해달라는 유지를 받은 신하들의 힘이 강해지고 왕권은 약해졌는데, 이 때문에 집현전 학자들과 김종서 등의 재상들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다. 이는 김종서 등이 왕권을 노골적으로 노리는 수양대군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의 세력이 확장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 5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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