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불염學而不厭 - 배우면서 싫증을 내지 않다, 학문을 꾸준히 하다.
학이불염(學而不厭) - 배우면서 싫증을 내지 않다, 학문을 꾸준히 하다.
배울 학(子/13) 말이을 이(而/0) 아닐 불(一/3) 싫어할 염(厂/12)
배우거나 공부한다는 뜻의 學(학)이란 글자는 아이들이 양손에 책을 들고 가르침을 본받아 깨우치는 모습에서 나왔다고 한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글을 배워서 자신의 앞길을 닦아야 한다며 예로부터 학문에 관한 좋은 말이 많이 내려온다.
‘학문은 번영의 장식이고 가난의 도피처이며 노년의 양식’이란 서양의 격언에서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人不學 不知道/ 인불학 부지도)’라 한 禮記(예기), ‘책 가운데 황금의 집이 나온다(書中自有黃金屋/ 서중자유황금옥)’는 古文眞寶(고문진보)까지 부지기수다. 이처럼 유익한 공부라도 늙어 죽을 때까지 다 못한다고 했으니 보통 사람들이 꾸준히 하기엔 주눅 든다.
孔子(공자)는 태어날 때부터 깨달아 아는 生而知之(생이지지)의 성인이 아니라면 꾸준히 배워서 알아야 한다고 學而知之(학이지지)를 강조했다. 공부를 하면서(學而) 싫증을 내지 않는다(不厭)면 더 이상 좋을 수 없겠지만 공자같이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가능하겠다. 이 말은 ‘論語(논어)’ 述而(술이)편에 등장하는데 그 구절의 앞뒤를 보자.
‘묵묵히 기억하며 배우되 싫증내지 않고, 남을 깨우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일(默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묵이지지 학이불염 회인불권)이라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何有於我哉/ 하유어아재)?’ 알 식(識)은 기억할 지, 誨는 가르칠 회.
외우고 배우고 가르치는 세 가지 모두 부족하다고 겸양의 뜻으로 풀이하기도 하는데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수많은 제자를 기른 공자 이상 가는 사람이 있었을 리 없다. ‘孟子(맹자)’의 公孫丑(공손추) 상편에서 공자의 이 말을 인용한 뒤 제자 子貢(자공)이 스승을 우러를 때 언급하며 다시 나온다.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움이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어짊입니다(學不厭智也 教不倦仁也/ 학불염지야 교불권인야).‘ 老子(노자)의 제자라는 文子(문자)도 이런 말을 남겼다. ’배우면서 싫증내지 않는 것이 제 몸을 닦는 바탕이다(學而不厭 所以治身也/ 학이불염 소이치신야).‘
우리나라가 가난에서 탈피할 수 있었던 것은 배우고 자식을 가르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빈부의 격차가 커져 아무리 노력해도 계급의 위아래로 유리벽이 있어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아우성이다. 자격증을 수두룩하게 가지고도 취업에 쩔쩔 매는 청년층을 보면 공부가 무슨 소용이랴 싶기도 하다.
하지만 느리게라도 내일이 올 테니 朱子(주자)의 말을 한 번 더 되새기자. ‘오늘 배우지 아니하고서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올해에 배우지 아니하고서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물위금일불학이유래일 물위금년불학이유래년).’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