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한명회의 시대 1편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한명회의 시대 1편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4년 3월 29일 금요일

한명회의 시대 1편

■ 한명회의 시대 1편

■ 한명회의 시대 1편

세조는 완전한 권력을 쥐게 될 때까지 안평대군 등 가까운 혈육과 김종서, 성삼문 등 시대를 대표할 만한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죽였고, 종국(終局)에는 자신의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야 만다. 세조의 이러한 폭주가 가능했던 것은 한명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정난(靖難)을 통해 왕이 된 절대군주가 원활한 통치와 안정적 왕권 확보를 위해 취하는 방식은 이런 저런 핑계를 만들어 공신들을 모조리 죽여 후환을 없애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세조의 할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이 그러했다.

그러나 세조는 한명회 등 공신들을 끝까지 예우하며 함께 정국을 운영하였는데, 이는 한명회와 신숙주 등이 계유정난의 성공에 절대적으로 기여했고, 또 이들의 재주와 처세 그리고 충성심이 워낙 뛰어나 세조 역시 이들을 없앨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한명회의 세력이 워낙 넓고 깊게 퍼진데다가, 한명회의 책사 능력이 장자방(한나라 고조 유방의 책사인 장량의 자가 자방(子房)이어서 장자방이라고 함.) 못지않았으므로, 함부로 제거하려다가는 오히려 세조의 처지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세조 시대는 공신들의 세상이었다. 이러한 공신 중의 공신은 한명회였는데, 세조 이후 연산군에 이르기까지의 왕위 승계 과정을 보면, 이 시대 한명회의 위상을 쉽게 알 수 있다. 세조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큰 아들은 세자(의경세자)의 자리에 오른 후 왕이 되기 전에 병으로 죽었고, 그 슬하에 월산군과 자을산군(잘산군)이라는 아들 둘을 남겼다. 세조의 둘째 아들 해양대군은 형인 의경세자가 스물에 죽자 세자가 된 후 왕(예종)이 되었으나 13개월 만에 죽었다. (독살설도 있음)

예종이 죽은 후, 예종의 아들(제안대군 4살)이 아닌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이 왕(성종)이 되었다.(큰아들 월산군은 병약해서 제외되었고 결국 요절함)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세조 이후 왕이 된 예종과 성종의 부인이 모두 한명회의 딸이었다는 것이다. 한명회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2편에 계속

"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