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산업 빅딜, 한진해운 전철 밟지 말아야
◇ 항공산업 빅딜, 한진해운 전철 밟지 말아야
해운 운임이 급등하며 국내 수출기업들이 선박 부족과 해상운임 급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3년 전 한진해운 처리의 패착이 이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
2017년 기준 세계 7위, 국내 1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은 당시 정부의 금융논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현대해상과의 빅딜을 포기한 채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한번 무너지면 복구가 불가능한 네트워크산업 특성에 대한 몰이해가 사태를 이 지경으로 내몰았다.
반면에 외국 정부는 자국 해운기업을 살리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지원했다. 정부의 집중 지원을 받은 글로벌 해운사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우며 경쟁력을 강화했고, 2016년 59% 수준이었던 글로벌 상위 7개 선사들의 시장 점유율은 2018년 77.8%까지 급증하며 과점체제가 고착화됐다.
홀로 살아남은 HMM(구 현대상선)은 한진해운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했다. 2016년 12%였던 국적선사의 미주항로 점유율은 한진해운 파산 직후인 2017년 3월에는 3.8%로 내려앉았다. 한때 글로벌 5위까지 올랐던 한국 해운의 위상은 10위권 밖으로 추락했다.
고정비 비중이 높고 대외변수에 취약한 항공산업은 테러ㆍ감염병ㆍ경기 침체 등 위기상황에서 대형 M&A를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위기를 극복해 왔다. 미국, 유럽 등 세계 주요 항공시장의 역사를 살펴보면 시장 재편 과정을 거치면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한 대형 항공사들이 생존과 성장을 거듭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항공산업은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고, 세계 각국 정부는 자국 항공사 지원에 엄청난 규모의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우리나라 항공시장은 코로나19 이전부터 공급 과잉에 따른 과열경쟁에 시달려 왔다. 단위 인구 및 면적당 기준으로 미국은 물론 중국, 일본보다도 항공사가 많은 상황이다. 차제에 양대 국적항공사의 합병 및 대형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에서 이보다 효과적인 경쟁력 제고 방안은 아직 발견된 바 없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항공산업 빅딜과 관련하여 과거 한진해운·현대상선 구조조정 사례와 같이 통합에 실패할 경우 항공업에 투입해야 하는 비용이 대폭 늘어나고 정상화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항공산업은 해운산업과 마찬가지로 핵심 자산인 네트워크가 붕괴되면 복원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국내 항공산업의 중·장기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미국, 유럽 항공업계처럼 통합을 바탕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2016년 당시 한진해운 회생에 4,000억원이면 되었을 것을 8조원이 넘는 재정을 쏟아붓고도 한국 해운업 재건은 난망하다. 국가 기간산업에 두 번의 실책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도 그대로 따라가지 않도록 복거지계(覆車之戒)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