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왜降倭:투항왜병 6편
■ 항왜(降倭:투항왜병) 6편
여여문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선조실록》 1597년(선조 30년) 9월8일 기록을 보면 ‘사백구’라는 항복한 왜인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공적이 대단했다. 항왜에 지극히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경상우병사 김응서가 선조 임금에게 사백구의 포상을 건의하면서 올린 상소문이다.
『금년(1597년) 3월 가토 기요마사 휘하에서 사백구라는 왜인이 투항했는데, 지성으로 왜병을 토벌하는 것을 보니 지극히 가상합니다. 상급을 내려야 합니다.』
김응서는 항복한 왜인 사백구에게 줄 상급이 없어 일단 김해부사 백사림에게 보냈다. 마침 일본군이 경상도 함양의 황석산성을 공격했다. 이때 김해부사 백사림도 출전했는데, 사백구 또한 전장에 나섰다. 사백구의 활약은 남달랐다. 조총으로 왜병을 4명이나 쏘아 죽였다. 하지만 황석산성은 함락되었고, 살이 쪄서 거동이 불편했던 백사림은 꼼짝없이 포로가 될 운명이었다. 이때 사백구가 왜병 흉내를 내어 백사림 가족을 성 밖으로 탈출시켰다. 사백구는 백사림을 산속에 숨겨놓고는 왜병이 점령한 산성으로 숨어들어갔다. 백사림은 사백구가 자신의 위치를 왜적에게 알려 공을 세우려는 줄 알고 두려움에 떨며, 사백구가 배신할 까 두려워 몸을 잠시 피해있었다. 그러나 사백구는 성안으로 들어가 왜병들에게 “먹을 것 좀 달라”고 해서 쌀 한말과 간장, 무우, 옷가지 등을 구해왔다.
사백구는 백사림이 보이지 않자 발을 구르고 ‘어디 갔느냐’고 불러댔다. 백사림이 겨우 몸을 드러내자 사백구는 백사림의 허리를 끌어안고 “대체 어디 갔다가 왔느냐”고 반가워했다. 백사림 가족은 사백구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사백구는 부사 백사림에게 옷을 입혀주고 밥을 먹이면서 눈물을 흘렸다. 백사림이 밥을 다 먹은 뒤에야 사백구는 수저를 들었다.
사백구와 백사림의 일화를 전하던 김응서의 한탄이 심금을 울린다.
『조선의 유식한 무리도 처자식을 구제하지 못하는데, 무식한 오랑캐 무리의 지성이 사백구와 같으니 사람으로써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사백구에게 상급을 내려 위로하소서. 그리고 사백구에게 성씨를 하사하여 조선 사람으로 영원히 살도록 하소서.』《선조실록》
여여문과 사백구 외에도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에서 한몫 단단히 한 준사(俊沙)라는 항왜도 유명하다. 이순신 장군이 단 13척이 배로 일본 수군을 격파할 때 장군의 배에는 안골포에서 투항한 항왜 준사가 타고 있었다. 준사는 바다에 빠진 왜군들을 내려다보면서 “저 무늬 있는 붉은 비단옷을 입은 자가 적장 마다시(馬多時)라고 지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이순신 장군이 마다시의 목을 내다걸어 왜적의 사기를 꺾었고,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