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난설헌 4편
■ 허난설헌 4편
그녀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삶의 희망을 잃었다. 딸과 아들의 무덤을 자신이 사는 광릉 땅 양지바른 언덕에 나란히 만들고 나서 낮은 봉분에 잔디를 심고 어루만졌다. 훗날 그녀는 자신이 죽으면 두 아이의 무덤 뒷자리에 묘를 쓰라고 했다. 그리하여 세 무덤은 광주 지월리의 달을 보고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그녀의 불행은 꼬리를 이었다. 남편의 방탕은 조금도 쉴 줄을 몰랐고, 행복과 기쁨이 넘치던 친정집에도 풍파가 연달아 이어졌다. 그녀의 아버지는 상주에서 객사(客死)했고, 이어 오라버니 허봉은 이이의 잘못을 들어 탄핵했다가 갑산으로 귀양 가게 되었다. 허봉은 2년 뒤 풀려나 백운산, 금강산 등지로 방랑생활을 하며 술로 세월을 보내다 병이 들어 서울로 돌아오다가 금화 생창역에서 아버지처럼 객사하고 말았다. 이런 친정의 슬픔은 그녀를 더욱 외롭게 했고, 자신의 시재를 알아주었던 인물이 하나씩 사라지는 데 더욱 가슴이 메어졌다.
불행은 계속되어 곧 임신 중이던 뱃속의 아이까지 사산(死産)하였고, 남편 김성립은 계속 밖으로 겉 돌았다. 또한 어머니 김씨 역시 객사하였고, 동생 허균도 귀양 가고 말았다. 그녀는 삶의 의욕을 잃었고, 더욱 감상(感傷)과 한(恨)에 빠졌다. 그래서 그녀의 시 213수 가운데 속세를 떠나고 싶은 신선시가 128수나 된다. 그러다가 ‘삼한(三恨)’, 곧 ‘세 가지 한탄’을 노래했다고 한다. 첫째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요, 둘째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요, 셋째는 남편과 금슬이 좋지 못한 것이라 한다. 첫째는 바로 그녀가 시재(詩才)를 널리 뽐낼 수 없는 좁은 풍토를 안타까워한 것이고, 둘째는 남성으로 태어나 마음껏 삶을 노래하지 못한 것을 뜻한다. 셋째는 그녀의 남편이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더욱 방탕에 빠져들고 있었음을 말한다. 허난설헌은 이 모든 불행을 견디며 오직 시를 짓는 일로 위안을 삼았다. 그녀의 시에는 집안에 갇혀 살아야 하는 여인들의 마음과 속세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담겼다.
그녀는 어머니의 초상을 당해 친정에 가 있을 때 꿈을 꾸었다. 그녀는 꿈속에서 신선이 사는 곳에 올라 노닐면서 온갖 구경을 다 하다가 한 줄기 붉은 꽃이 구름을 따라 날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꿈에서 깨자 곧 《붉은 부용꽃 서른아홉 송이가 차가운 달에 떨어졌네》 라는 유언과 비슷한 시를 지어 읊었다. 자신의 죽음을 두고 읊조린 것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고, 많은 한과 원망을 가슴 가득히 안고 스물일곱의 나이에 죽고 말았다.(강물에 투신했다는 설과 자택에서 앓다가 죽었다는 설도 있음.) 한 여성 천재가 한 많은 삶을 마감한 것이다.
『碧海浸瑤海 /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靑鸞倚彩鸞 /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芙蓉三九朶 /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紅墮月霜寒 /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5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