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준과 동의보감 5편
■ 허준과 동의보감 5편
왕명을 받은 허준은 정작·양예수·김응탁·이명원·정예남 등 당대의 인재들과 함께 편찬 작업에 들어갔다. 5인의 공동 작업으로 책의 요점(要點)을 잡아가는 시점에, 정유재란이 일어나 의관들이 뿔뿔이 흩어져 작업은 자연히 중지되었다. 이에 선조는 허준을 다시 불러 허준 혼자라도 책임지고 새로운 의서를 만들라고 명하면서 궁궐에서 소유하고 있던 내장방서 500권을 내어주며 참고하도록 했다. 이후 허준이 단독으로 책임을 맡아 책을 완성시켰다. 이처럼 《동의보감》의 편찬사업은 처음부터 국가의 지대한 관심에 따라 대규모로 기획되었던 것이다.
1596년(선조 29년)에 시작된 이 작업은 공직생활로 짬을 내지 못해 지지부진하다가 선조 사후 그 책임을 지고 가게 된 귀양지에서 집필에 몰두할 수 있었다. 1609년 말 귀양에서 풀려난 허준은 서울로 돌아와 이듬해인 1610년(광해군 2년)년 8월 마침내 완성된 『동의보감』을 광해군에 바쳤다. 허준이 전심전력하여 책을 완성하자, 왕은 곧 내의원에 명하여 인출(印出), 널리 반포하게 하였다. 그 결과 1613년(광해군 5년)에 들어 출판의 결실을 맺어 널리 보급되었고, 한국의학의 신기원을 이룩하게 되었다. 광해군은 이 책을 완성한 공로를 기려 빗발치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임금의 장인에게나 주는 봉호인 양평부원군을 내렸다. 문관들이 깔보는 일개 의원을 영의정의 반열에 들게 해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게 한 것이다. 이 책은 조선에서 출판된 뒤 중국과 일본에서도 출판되어 의원들의 필독서(必讀書)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19세기 끝 무렵 이제마의 사상의학(四象醫學)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 풍토와 체질에 맞는 유일한 처방전으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고, 의학공부에 빼놓을 수 없는 교과서가 되었다. 1613년 훈련도감에서 목활자로 인쇄된 초판본 완질 25책은 남아 있지 않고, 훗날 전주와 대구에서 목판본으로 출판된 것이 전승되고 있다.
광해군은 허준이 선왕의 유업을 완수했다고 하여 그에게 좋은 말 1필을 상으로 내렸다. 책 제목의 ‘동의(東醫)’란 중국 남쪽과 북쪽의 의학전통에 비견되는 동쪽의 의학 전통 즉, 조선의 의학 전통을 뜻한다. ‘보감(寶鑑)’이란 “보배스러운 거울”이란 뜻으로 ‘귀감(龜鑑)’이란 뜻을 지닌다. 허준은 조선의 의학 전통을 계승하여 중국과 조선 의학의 표준을 세웠다는 뜻으로 《동의보감》이라 이름 지었다.
정(精) · 기(氣) · 신(神)을 중심으로 하는 도가의 양생(養生: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함)학적 신체관과, 구체적인 질병의 증상과 치료법을 위주로 한 의학적 전통을 높은 수준에서 하나로 통합했다는 평을 받는 이 책은 이후 조선 의학사의 독보적인 존재로, 오늘날까지도 한의학도에게 널리 읽히는 명저(名著)이다. 총 25권 25책으로 당시 국내 의서인 《의방유취(醫方類聚)》《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의림촬요(醫林撮要)》를 비롯하여 중국 의서 86종을 참고하여 편찬한 것이다. 그 내용은 내경(內景)·외형(外形)·잡병(雜病)·탕액(湯液)·침구(鍼灸) 등 5편으로 구성된 백과전서(百科全書)이다.
- 6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