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지책糊口之策 - 가난한 살림에서 겨우 먹고 살아가는 방책
호구지책(糊口之策) - 가난한 살림에서 겨우 먹고 살아가는 방책
풀칠할 호(米/9) 입 구(口/0) 갈 지(丿/3) 꾀 책(竹/6)
사람이 먹지 않고서는 살아나갈 수가 없다. 인간 생활의 기본요소인 衣食住(의식주) 하나라도 없으면 기본적으로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없지만 그 중에서도 음식이 먼저다. 먹지 못하면 바로 생명을 잃기 때문이다. 관련된 성어로 가장 유명한 것이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는 以食爲天(이식위천)이다. 食爲民天(식위민천)이라 해도 같다. 孔子(공자)님은 믿음을 군사나 식량보다 믿음을 더 중시해야 한다고 無信不立(무신불립)이란 말을 남겼지만 이는 개인이 아닌 나라의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필수적인 먹는 음식이 없다면 생활을 영위하기가 어렵고 최소 식료를 구하는 것이 참으로 구차하다. 그래서 늘 굶고 살 정도로 살림이 매우 가난한 것을 가리켜 ‘사흘에 한 끼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눈 속담을 쓴다. 풀칠은 물론 종이 등에 풀을 칠하는 것인데 입에 풀칠한다면 최소의 음식으로 목숨을 이어가는 가난한 생활을 말한다. 굶지 않고 겨우 살아가는 것을 ‘입에 풀칠하다’, ‘목구멍에 풀칠하다’ 등으로 표현한다. 입에 풀칠하는 가난한 살림(糊口)을 꾸려 나가는 방책(之策)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
高麗(고려) 때의 승려 一然(일연)이 쓴 ‘三國遺事(삼국유사)’ 권3 洛山二大聖(낙산이대성) 편에 처음 용례가 보인다. 주인공이 꿈속에서 파란만장한 생활을 겪은 뒤 현실세계로 돌아 와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幻夢(환몽) 설화다. 新羅(신라) 때의 스님 調信(조신)이 농장 관리인으로 파견됐다가 태수의 딸에게 반했다. 꿈에서 만나 아들 딸 낳고 행복한 생활을 했지만 40년 지나면서 궁핍해졌다. ‘집은 네 벽만 있고 변변치 못한 곡식도 없어, 서로 잡고 끌며 걸식으로 겨우 풀칠했다(家徒四壁 藜藿不給 遂乃落魄扶携 糊其口於四方/ 가도사벽 여곽불급 수내낙백부휴 호기구어사방).’ 藜는 명아주 려, 藿은 콩잎 곽. 물론 꿈에서 깨어난 조신은 속인과의 사랑을 참회하고 믿음 깊은 승려가 되었다.
우리 고전에도 자주 사용됐다. 世宗(세종) 실록에는 흉년든 강원도에 파견된 皇甫仁(황보인)이 ‘환과고독들은 풍년에도 얻어먹고 사는데 금년에는 풀칠할 데가 없어(鰥寡孤獨在豐年寄食他家 今年無可糊口/ 환과고독재풍년기식타가 금년무가호구)’ 구제해야 한다고 왕에 건의했다. 예나 지금이나 늙고 병든 노인들은 고달프다. 노인빈곤지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하위로 미끄러진다. 기초연금 등 국가에서 신경을 쓰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겠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