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담 서경덕 4편
■ 화담 서경덕 4편
마음이 어린 후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마음이 어리석으니 하는 일마다 모두 어리석도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늬 님 오리마난(겹겹이 구름 낀 산중이니 임이 올 리 없건만)
지는 닙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지는 잎과 부는 바람에도 행여나 임인가 하노라)
황진이가 떠난 후에 서경덕은 일이 손에 잘 안 잡힌 모양이다. 바람에 낙엽이 구르는 소리에도 혹시 황진이가 다시 온 것이 아닐까 설레고 있는 마음이 나타나 있다. 대학자도 육체는 정신력으로 제어할 수 있었지만 자기 마음만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데(내가 언제 신의가 없어 임을 언제 속였기에)
월침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달도 없는 깊은 밥중이 되도록 올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잎소리야 낸들 어이하리오(바람에 떨어지는 잎소리에 내 마음이 어떻겠는가)
복잡한 감정의 갈등 속에서 진이가 화담을 찾는 날이 뜸해지자 서경덕은 그녀를 기다리는 마음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랐을 것이다. 밤은 깊고 적막한데 낙엽이 구르는 소리에 놀라 영창을 열고 혹시나 그녀가 올까 기다렸다가 실망하고 잠 못이루는 화담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렇게 고고한 화담도 인간인지라 사랑에 대한 순결하고 겸허한 인품이 솔직히 나타나 있고, 그의 고독한 심정에 진이에 대한 그리움이 여실히 나타나 있다.
황진이도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읊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 내어)
춘풍(春風)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속 서리서리 넣어두었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정든 임이 오시는 날 밤이면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는 한평생 서화담의 사람됨을 사모하여 늘 거문고와 녹주를 가지고 화담이 사는 초당에 가서 즐기다가 오곤 하였다. 하루 이틀 만남이 깊어짐에 따라 화담과 황진이는 스승과 제자로서의 정이 이성으로서의 정으로 변해 갔지만 도덕이 높은 화담은 글을 배우러 오는 그녀를 허심탄회하게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녀 역시 스승으로서의 존경을 넘어서는 마음의 흔들림을 붙잡으려고 몹시 고심했음을 엿볼 수 있다.
- 5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