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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4일 일요일

황진이의 남자들 3편

■ 황진이의 남자들 3편

■ 황진이의 남자들 3편

야담(野談)과 야사(野史)는 대체로 황진이를 음탕한 요부(妖婦)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것은 다분히 유교양반사회에서 기생이라는 그녀의 신분으로 인해 생겨난 편견이기도 하다. 황진이는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생으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시와 글, 춤에 능한 예인(藝人)으로서의 역사적 인물로도 재해석해야 할 것 같다.

황진이의 어머니는 진현금이란 이름의 아전의 딸로 그다지 미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황진사의 아들과 서로 눈이 맞아 버렸다. 둘은 서로 정을 통하였지만 결혼을 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 이후 진현금은 딸을 낳았는데, 이가 바로 황진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황진이의 미모는 날로 돋보이기 시작했다

황진이의 첫 번째 남자는 옆집 총각이었다. 황진이의 나이 15세 무렵, 그녀의 미모에 반한 이웃집 총각이 홀로 황진이를 연모하다 상사병으로 죽는 일이 발생했다. 총각의 부모는 창졸지간에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죽은 아들의 장례를 치러야했다.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상여에 관을 싣고 장지까지 운구를 했다. 성인의 장례에는 대부분 화려한 꽃상여를 썼는데, 결혼하지 않은 총각이나 처녀는 흰 종이와 천으로 만든 백상여에 태워 장례를 치렀다. 총각을 태운 백상여를 장지까지 운구하기 시작하였는데, 집에서 출발한 상여가 황진이 집 앞에 다다르자 꼼짝없이 멈춰서는 것이었다. 상여를 맨 상두꾼들이 아무리 발을 떼려고 해도 땅에 찰싹 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때, 상여를 인도하던 선소리꾼(종구잽이)이 총각의 죽은 이유를 알았는지라 황진이 집을 향해 애절하게 만가(挽歌:상여를 멜 때 부르는 노래)를 불렀다.

방에서 이 소리를 들은 황진이는 마음이 짠해 왔다. 황진이도 이 총각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입고 있던 치마를 벗어들고 대문까지 나와 상여 위로 던졌다. 황진이의 치마가 상여 위에 걸쳐지자 거짓말처럼 상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후, 황진이는 스스로 기생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물론 그녀가 기생의 길을 선택한 것은 이 사건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녀(孽女)라는 신분과 여성의 사회활동이 제약받던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관과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통로로써 기생의 길을 택했을 지도 모른다. 황진이는 첩의 딸로서 멸시를 받으며 규방에 묻혀 일생을 헛되이 보내기 보다는 봉건적 윤리의 질곡 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였던 것 같다. 황진이는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적에 입적하게 되었다. 황진이가 기생이 되자 각지의 내로라하는 풍류객들이 그녀를 보기 위해 송도에 몰려들었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2024년 4월 13일 토요일

황진이의 남자들 3편

■ 황진이의 남자들 3편

■ 황진이의 남자들 3편

야담(野談)과 야사(野史)는 대체로 황진이를 음탕한 요부(妖婦)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것은 다분히 유교양반사회에서 기생이라는 그녀의 신분으로 인해 생겨난 편견이기도 하다. 황진이는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생으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시와 글, 춤에 능한 예인(藝人)으로서의 역사적 인물로도 재해석해야 할 것 같다.

황진이의 어머니는 진현금이란 이름의 아전의 딸로 그다지 미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황진사의 아들과 서로 눈이 맞아 버렸다. 둘은 서로 정을 통하였지만 결혼을 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 이후 진현금은 딸을 낳았는데, 이가 바로 황진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황진이의 미모는 날로 돋보이기 시작했다

황진이의 첫 번째 남자는 옆집 총각이었다. 황진이의 나이 15세 무렵, 그녀의 미모에 반한 이웃집 총각이 홀로 황진이를 연모하다 상사병으로 죽는 일이 발생했다. 총각의 부모는 창졸지간에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죽은 아들의 장례를 치러야했다.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상여에 관을 싣고 장지까지 운구를 했다. 성인의 장례에는 대부분 화려한 꽃상여를 썼는데, 결혼하지 않은 총각이나 처녀는 흰 종이와 천으로 만든 백상여에 태워 장례를 치렀다. 총각을 태운 백상여를 장지까지 운구하기 시작하였는데, 집에서 출발한 상여가 황진이 집 앞에 다다르자 꼼짝없이 멈춰서는 것이었다. 상여를 맨 상두꾼들이 아무리 발을 떼려고 해도 땅에 찰싹 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때, 상여를 인도하던 선소리꾼(종구잽이)이 총각의 죽은 이유를 알았는지라 황진이 집을 향해 애절하게 만가(挽歌:상여를 멜 때 부르는 노래)를 불렀다.

방에서 이 소리를 들은 황진이는 마음이 짠해 왔다. 황진이도 이 총각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입고 있던 치마를 벗어들고 대문까지 나와 상여 위로 던졌다. 황진이의 치마가 상여 위에 걸쳐지자 거짓말처럼 상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후, 황진이는 스스로 기생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물론 그녀가 기생의 길을 선택한 것은 이 사건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녀(孽女)라는 신분과 여성의 사회활동이 제약받던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관과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통로로써 기생의 길을 택했을 지도 모른다. 황진이는 첩의 딸로서 멸시를 받으며 규방에 묻혀 일생을 헛되이 보내기 보다는 봉건적 윤리의 질곡 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였던 것 같다. 황진이는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적에 입적하게 되었다. 황진이가 기생이 되자 각지의 내로라하는 풍류객들이 그녀를 보기 위해 송도에 몰려들었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