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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4일 일요일

황진이의 남자들 6편

■ 황진이의 남자들 6편

■ 황진이의 남자들 6편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시조의 뜻을 풀어 보면 『벽계수님아, 그렇게 급히 가지 마세요. 여기를 한 번 지나가 버리면 (혹은 인생이란 한 번 지나가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언제 다시 자신과 만날 수 있을지 모르니) 내가 이렇게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데 함께 즐겨봄이 어떤가요?』 라는 뜻이다.

"

시조를 읊는 황진이의 아름다운 모습에 그냥 갈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다 놀란 벽계수가 타고 가던 나귀에서 떨어졌다. 큰소리 친 것과는 달리 별로 군자답지 못한 벽계수를 보고 실망한 황진이는 “이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단지 풍류랑일 뿐이다”라며 다시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노래는 벽계수 낙마곡으로도 유명하고 현재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만, 사실은 이는 좀 과장된 소문일 가능성이 높다. 황진이가 벽계수를 만난 것이 이사종과 동거하기 이전인지, 그 뒤의 일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그때는 이미 황진이의 명성이 온 나라 안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

여섯 번째 남자는 이생이다. 아버지가 정승을 지냈다는 이생은 황진이를 만나자 함께 금강산 유람을 가자고 권했다. 황진이가 좋다 하여 함께 유람길에 올랐다. 그렇게 길을 떠난 두 사람은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샅샅이 누비고 다니며 빼어난 경관에 넋을 잃었는데, 금강산 구경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만 노잣돈이 떨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이 절 저 절을 찾아다니며 얻어먹어야 했고, 나중에는 황진이가 몸을 팔아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고 한다. 여행이 끝나고 두 사람은 미련 없이 헤어졌다.

일곱 번째 남자는 지족선사(知足禪師)이다. 황진이 때문에 가장 대표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면벽(面壁) 수련 30년 지족선사가 황진이의 눈웃음 한 번에 넘어가 파계(破戒)를 했다고 사람들은 비웃는다.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개성 교외의 천마산 청량봉 기슭에 지족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는데, 이곳에는 30년 동안 면벽수행을 하여 생불(生佛) 소리를 듣는 지족선사라는 고승이 있었다. 사람들은 지족선사는 아무리 어여쁜 황진이가 와서 유혹해도 눈썹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어느 비오는 날 황진이가 소복을 하고 지족암을 찾아갔다.

- 7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2024년 4월 13일 토요일

황진이의 남자들 6편

■ 황진이의 남자들 6편

■ 황진이의 남자들 6편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시조의 뜻을 풀어 보면 『벽계수님아, 그렇게 급히 가지 마세요. 여기를 한 번 지나가 버리면 (혹은 인생이란 한 번 지나가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언제 다시 자신과 만날 수 있을지 모르니) 내가 이렇게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데 함께 즐겨봄이 어떤가요?』 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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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를 읊는 황진이의 아름다운 모습에 그냥 갈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다 놀란 벽계수가 타고 가던 나귀에서 떨어졌다. 큰소리 친 것과는 달리 별로 군자답지 못한 벽계수를 보고 실망한 황진이는 “이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단지 풍류랑일 뿐이다”라며 다시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노래는 벽계수 낙마곡으로도 유명하고 현재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만, 사실은 이는 좀 과장된 소문일 가능성이 높다. 황진이가 벽계수를 만난 것이 이사종과 동거하기 이전인지, 그 뒤의 일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그때는 이미 황진이의 명성이 온 나라 안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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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남자는 이생이다. 아버지가 정승을 지냈다는 이생은 황진이를 만나자 함께 금강산 유람을 가자고 권했다. 황진이가 좋다 하여 함께 유람길에 올랐다. 그렇게 길을 떠난 두 사람은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샅샅이 누비고 다니며 빼어난 경관에 넋을 잃었는데, 금강산 구경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만 노잣돈이 떨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이 절 저 절을 찾아다니며 얻어먹어야 했고, 나중에는 황진이가 몸을 팔아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고 한다. 여행이 끝나고 두 사람은 미련 없이 헤어졌다.

일곱 번째 남자는 지족선사(知足禪師)이다. 황진이 때문에 가장 대표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면벽(面壁) 수련 30년 지족선사가 황진이의 눈웃음 한 번에 넘어가 파계(破戒)를 했다고 사람들은 비웃는다.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개성 교외의 천마산 청량봉 기슭에 지족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는데, 이곳에는 30년 동안 면벽수행을 하여 생불(生佛) 소리를 듣는 지족선사라는 고승이 있었다. 사람들은 지족선사는 아무리 어여쁜 황진이가 와서 유혹해도 눈썹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어느 비오는 날 황진이가 소복을 하고 지족암을 찾아갔다.

- 7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