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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일 화요일

횡거철피橫渠撤皮 - 장횡거가 모피 자리를 거두다, 후진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리를 내주다.

횡거철피橫渠撤皮 - 장횡거가 모피 자리를 거두다, 후진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리를 내주다.

횡거철피(橫渠撤皮) - 장횡거가 모피 자리를 거두다, 후진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리를 내주다.

가로 횡(木/12) 개천 거(氵/9) 거둘 철(扌/12) 가죽 피(皮/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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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직위나 어떤 분야에서 권위를 누리는 사람은 저마다 각고의 노력으로 그 자리에 올랐다. 누구나 우러러보고 존경하니 오래 그곳에 머물려하는 것은 모두 원할 것이다. 그러나 강물이 흘러가듯 세월이 흐르면 후진들이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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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의 후학이 더 훌륭하다고 靑出於藍(청출어람)이라 했는데 권위만 앞세우고 자리를 차지한다면 後生可畏(후생가외)를 모르는 老醜(노추)로 욕먹는다. 영예로운 자리에서 물러날 때를 현명하게 알고 실천한 사람으로 중국 北宋(북송)의 張載(장재, 1020~1077)를 먼저 꼽는다. 그의 자인 橫渠(횡거)가 스승의 자리에서 물러났다(撤皮)는 성어까지 남겼으니 그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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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는 유가와 도가의 사상을 조화시켜 우주의 일원적 해석을 설파함으로써 당대 최고의 학자로 이름 높았다. 그가 스승의 자리인 호피 방석에 앉아 유교 경전을 논하면 명성을 듣고 제자들이 모여 들었다. 어느 때 程顥(정호, 顥는 클 호)와 程頤(정이, 頤는 턱 이) 형제가 찾아 와 가르침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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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가 二程(이정)과 易經(역경)을 논하다 학문이 깊이를 알아보고 놀랐다. 다음 날 장재는 호피를 거두고(次日 横渠撤去虎皮/ 차일 횡거철거호피)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가 지난 날 강의한 것은 도를 혼란하게 한 것이니라(吾平日 與諸公說者 皆亂道/ 오평일 여제공설자 개란도).’ 朱熹(주희)의 ‘二程語錄(이정어록)’이나 托克托(탁극탁)의 ‘宋史(송사)’ 등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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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호, 정이 형제를 스승으로 삼아 가르침을 받으라며 자신은 고향으로 떠났다. 후진의 능력을 한눈에 알아보고 스승의 자리를 선뜻 물려준 장재의 용퇴는 중국뿐 아니라 조선에서도 학자들의 귀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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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가죽이나 표범 가죽 등 짐승 가죽으로 만든 자리는 명신이나 대학자들에 내리는 임금의 귀한 선물이었다. 특히 虎皮(호피)는 학문을 강론하는 스승의 자리를 뜻하는 상징적인 물건이었고 달리 皐比(고비, 皐는 언덕 고)라고도 불렸다. 조선 후기 실학자 李德懋(이덕무, 懋는 힘쓸 무)는 장재를 본받아야 한다며 후진들에 수시로 강조했다. ‘허물을 알면 아낌없이 자리를 걷어야지(省尤莫吝掇皐比/ 성우막린철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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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의 능력을 알고 적극적으로 길을 터준 장재와 같이 큰 공을 이룬 뒤 용퇴하라는 것은 이미 老子(노자)의 가르침에서도 나왔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만 둘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知足不辱 知止不殆(지족불욕 지지불태)와 같이 공을 이루고 명성을 얻었으면 물러나라고 功成身退(공성신퇴)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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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갈 것 없이 이형기 시인은 더 와 닿게 노래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낙화). 숱한 좋은 말이 있어도 좀처럼 실행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영광의 자리에 오래 머물고도 더 좋은 낙하산 자리는 없을까 두리번거리는 사람만 우글거리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