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4일 수요일

구조정에 남은 한 자리

구조정에 남은 한 자리

구조정에 남은 한 자리

부부가 해상에서 위험에 부딪혔는데, 부인을 돌보지 않고 남편이 혼자 도망쳤다면?

한쌍의 부부가 유람선에서 해상 재난을 당했는데 구조정에는 자리가 하나 밖에 없었다. 이 때 남편은 부인을 남겨두고 혼자 구조선에 올랐고 부인은 침몰하는 배 위에서 남편을 향해 소리쳤다.

선생님은 여기까지 얘기하고는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여러분, 부인이 무슨 말을 했을까요?" 학생들은 모두 격분하여 말하기를, "당신을 저주해요. 내가 정말 눈이 삐었지!!"

이때 선생님은 한 학생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학생에게 다시 물었더니, 그 학생은, "선생님, 제가 생각했을 때, 부인은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 우리 아이 잘 부탁해요"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너 이 얘기 들어봤니?"

학생은 머리를 흔들며, "아니요. 그런데 제 엄마가 돌아가실 때 아버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선생님은 감격해 하며, "정답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습니다.

배는 침몰했고 남편은 집으로 돌아와 딸을 잘 키웠고, 몇년 후 병으로 죽었습니다. 딸이 아빠의 유물을 정리하던 중 아빠의 일기장을 발견하는데, 아빠와 엄마가 배여행을 갔을 때 엄마는 이미 고칠 수 없는 중병에 걸려있었고, 그 때 마침 사고가 발생하였고, 아빠는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아빠의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 때 나도 당신과 함께 바닷에서 죽고 싶었지만 그럴수가 없었지. 우리의 딸 때문에, 당신만 깊고 깊은 해저 속에 잠들게 밖에 할 수 없었어."

이야기를 끝내자, 교실은 조용했다. 선생님도 알 수 있었다. 학생들도 이미 이 이야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다는 것을,,

세상에서 선과 악이란 어떤 때는 복잡하게 얽혀있어 쉽게 판단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만 상대를 가볍게 판단해서는 안된다.

먼저 밥값 계산을 하는 이는 돈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돈보다 우정을 더 중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할 때 주동적으로 하는 이는, 바보스러워서 그런게 아니라 책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말싸움 후에 먼저 사과하는 이는, 잘못해서 그러는게 아니라 주변의 사람을 아끼기 때문이다.

너를 나서서 도와주려는 이는, 너에게 빚진 게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너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늘 너에게 정보를 주는 이는, 한가하고 할 일이 없어서 그러는게 아니라 마음 속에 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Story 글 옮김-

행복의 지름길

행복의 지름길

행복의 지름길

지나간 일에는 후회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은 고칠 수 없습니다.

불행의 대부분이 후회에서 비롯됨을 아는 순간

우리는 행복으로 가는 첫걸음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실체가 없는 것에 마음을 쏟고 있는 것 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웃음은 참을 수 없는 슬픔을 참을 수 있는 것으로,

나아가 희망적인 것으로 바꾸어 줍니다.

-배우 겸 코미디언 ‘밥 호프’-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게다. 이렇게 늦다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학교에 적은 두되 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 오는 것이 내 목표였는데,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 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 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하는 짓인가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 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아있는 석사 학위가 아니었다. 첫 학기 첫 시험 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이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반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한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 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손석희 앵커-

인생

인생

인생

사람들이 자주

놀라는 것은

아픈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자주 슬프고

외로운 것도

아픈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아픔을

치유하는 것은

또 다른 아픔입니다

슬픔이 슬픔을

씻어 내고

외로움이 외로움을

이겨 내고

상실이 상실을

밀어내고

흔들림이 흔들림을

막아 줍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일어나고

그러면서 날마다

걸어가고

그러다가

어느 날은 웃게 됩니다

-정용철 ‘사랑의 인사’-

친절한 척 하지말고 진짜 친절하기

친절한 척 하지말고 진짜 친절하기

친절한 척 하지말고 진짜 친절하기

따뜻한 척 하지말고 진짜 따뜻하기

잘한 척 하지말고 진짜 잘하기

노력한 척 하지말고 진짜 노력하기

고마운 척 하지말고 진짜 고마워하기

친한 척 하지말고 진짜 친하기

웃는 척 하지말고 진짜 웃기

착한 척 하지말고 진짜 착하기

성실한 척 하지말고 진짜 성실하기

사랑한 척 하지말고 진짜 사랑하기

진실한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유지나-

동행의 기쁨

동행의 기쁨

동행의 기쁨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가슴에

길 하나를 내고 있습니다.

그 길은 자기에게 주어진 길이 아니라

자기가 만드는 길입니다.

사시사철 꽃길을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동안 투덜투덜

돌짝길을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꽃길을 걷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내게도 시련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늘 준비하며 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시련이 오면 고통과 맞서

정면으로 통과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시련이 오면 고통을 받아들이고

조용히 반성하며

기다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시련이 오면 약한 모습

그대로 보이고도

부드럽게 일어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시련이 오면

고통을 통하여 마음에

자비와 사랑을 쌓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시련이 오면

고통 가운데서도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시련이 지나간 뒤

고통의 시간을

감사로 되새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산다는 것은 신나는 일입니다.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은 더욱

신나는 일입니다.

남을 위해 사는 방법 가운데

내 삶을 나눔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의 기쁨과 안타까움이

다른 이에게는

더할 수 없는 깨달음이 되어

삶을 풍요롭게 하기도 합니다.

동행의 기쁨,

끝없는 사랑,

이해와 성숙,

인내와 기다림은 행복입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는 일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나는 분명히 느낄 것입니다.

-묵연 스님-

프링글스 마크에 담긴 감동의 사연

프링글스 마크에 담긴 감동의 사연

프링글스 마크에 담긴 감동의 사연

동그란 얼굴에 인자한 콧수염 아저씨가 그려진 프링글스 마크, 이 마크엔 눈물 나는 사연이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과 독일군이 치열하게 싸우던 서부 전선의 작은 마을, 프록터 앤드 갬블사의 창업자이자 초대 회장인 루카시 도비슨(Lucacci Dawbison)은 독일군의 공습에 부모를 잃은 전쟁 고아였습니다.

어느 춥고 배고픈 날, 먹을 것을 며칠간이나 구하지 못했던 고아들은 제비뽑기를 하여 군부대 취사실에 가서 먹을 것을 훔쳐오기로 했는데 하필 루카시가 걸렸습니다. 군부대 취사실에 숨어들어 감자와 옥수수 같은 먹을 것들을 몇 개 집어서 취사실을 빠져나오던 루카시는 이내 어떤 투박한 손에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벙어리 프링글스 씨와 루카시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호되게 야단을 맞을 줄 알았던 루카시는 되려 프링글스 씨가 미소를 지으며 감자 몇 알과 고기 몇 점도 넣어주자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둘의 인연이 계속 되던 어느 날, 루카시는 프링글스 씨의 손목과 팔, 얼굴 등에 상처가 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음식이 조금씩 없어진 것을 눈치 챈 상사가 말 못하는 벙어리인 프링글스 아저씨에게 거친 폭언을 쏟으며 채찍으로 모질게 때렸던 것을 알고 둘은 껴안은 채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던 중 프링글스 씨가 일하는 부대가 독일군에 의해 포위되어 병사들마저 굶는 사태가 일어났고

루카시는 프링글스 씨가 탈영을 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뒤이어 어떤 연합군의 벙어리 병사가 독일군의 밭에서 감자를 훔치다가 잡혀 곧 총살당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루카시는 깜짝 놀라 형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때 마침 울리는 총성... 총에 맞은 프링글스 씨의 고개가 숙여지면서 그가 쓴 허름한 군모가 벗겨졌고, 그와 함께 굴러 떨어지는 조그만 감자 네 알... 루카시는 그 감자 네 알을 안고 언제까지고 울었습니다.

프링글스 씨는 탈영을 한 것이 아니라 배고픔에 떠는 루카시를 지켜볼 수 없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것을 알면서도 몇 안 되는 감자 몇 알이라도 더 가져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루카시는 프링글스 씨를 잊지 못해 자신이 만든 과자에 그의 얼굴을 기억해 새겼고

그것이 이 마크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BAND 글 옮김-

이런 부자를 보고 싶다

이런 부자를 보고 싶다

이런 부자를 보고 싶다

헨리 포드가 영국에 왔을 때의 일이다. 그가 공항안내소로 가서 가장 값싼 호텔을 물었다.

안내원은 어리둥절해서 그를 쳐다 보았다. 그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인물이었기에 신문에 입국 기사가 났고, 안내원도 그를 알아 봤던 것이다.

"당신이 바로 헨리 포드씨지요? 나는 잘 기억하고 있어요.당신의 사진을 봤거든요."

"맞습니다."

"당신은 매우 낡은 코트를 입었고 가장 값싼 호텔을 찾고 있습니다. 저번에 당신 아들이 이곳에 왔을 때 최고급 옷을 입고 비싼 호텔을 찾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내 아들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으니까요. 나는 굳이 값비싼 호텔에 묵을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어디에 있어도 헨리 포드입니다." 그러나 내 아들은 아직 새롭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그가 값싼 호텔에 묵는다고 생각할까 봐 신경을 쓰지요.

이 코트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물려 주신 것입니다. 나는 새로운 옷이 필요없습니다. 내가 어떤 옷을 입든 나는 헨리 포드입니다.

내면 세계가 부유하다면 겉으로 나타나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법이고, 아직 익지 않은 사람들만이 겉으로 보여 주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

-배꼽철학 중-

"

누가 버린 꽃을 꽂았을 뿐인데..

누가 버린 꽃을 꽂았을 뿐인데..

누가 버린 꽃을 꽂았을 뿐인데..

어느 기업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회사 건물에는 층마다 청소하는 미화원이 따로 있는데, 11층 할머니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항상 싱글벙글 미소를 짓습니다.

11층 화장실에 가면 늘 꽃향기가 가득합니다. 할머니가 꽃을 꽂아두기 때문입니다.

기업 특성상 행사가 많고, 행사 후 버려지는 꽃들이 많은데, 할머니가 그중에 싱싱한 꽃들을 잘 간추려서 화병에 꽂아두는 것입니다.

화장실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꽃향기를 맡고는 아, 이게 무슨 향기지 하며 반가워 합니다.

삭막한 화장실 구석이 마치 갤러리 처럼 변했습니다.

그동안 미화원이 숱하게 바뀌었지만, 하루 하루 바삐 지내는 회사 사람들은 어떤 직원이 바뀌는지 관심 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할머니가 바뀐다고 하니 모두 아쉬워 했습니다.

그러던 중 11층 직원들과 사장이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습니다. 사장이 “건의할 것 있으면 말씀 하세요"라고 하자 직원 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우리 11층 미화원은 바꾸지 말아 주십시오. 옆에 있던 다른 직원도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11층 미화원 할머니 정말 좋습니다.” 라고 많은 직원들은 사장님께 그렇게 건의를 하였고 미화원 할머니는 우수 직원으로 뽑혔습니다.

회의 때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할머니는 “누가 버린 꽃을 가져다 꽂은 것뿐인데... ” 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 그 일을 즐겁게, 감사한 마음으로 하는사람, 그런 사람이 꼭 필요한 사람, 없으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BAND 글 옮김-

넬슨 만델라가 인권 운동가로 활약하다 감옥에 투옥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27년간이나

넬슨 만델라가 인권 운동가로 활약하다 감옥에 투옥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27년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처음엔 너무도 힘든 고문과 열악한 환경으로 하루 하루 지내는 것이 지옥과도 같은 날들이었습니다.

넬슨 만델라가 인권 운동가로 활약하다 감옥에 투옥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27년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처음엔 너무도 힘든 고문과 열악한 환경으로 하루 하루 지내는 것이 지옥과도 같은 날들이었습니다.

그를 위해 찾아온 변호사가 물을 때마다 "지옥이야 지옥 지옥 중에서도 이런 지옥이 없을 거야"라고 불만을 노골적으로 털어 놓았습니다. 자기는 정말 아무 죄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 억울한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불만을 털어놔 봤자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는 어느 날 벽에다 한마리의 날아가는 용을 그려 놓았습니다. 변하지 않는 환경에 도리어 자신을 변화 시키기로 마음을 먹고는 매일 그 그림을 보았습니다.

지옥같이 느껴지던 감옥 생활에도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 후 27년간이나 옥살이를 한 후 풀려 났고, 마침내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흑인들은 이제껏 자기들을 지배하고 탄압했던 백인들을 향해 폭동을 일으킬 기세였습니다. 그때 그는 "모든 것을 밝히자! 그리고 나서 모든 걸 용서하자"라고 했습니다. 그 후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 부터 위대한 지도자로,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지옥이었던 감옥에서 결코 희망을 잃지 않고 진정한 평화와 용서의 천국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의 그림대로 멋지게 하늘을 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스토리 메이커 박성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