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2일 금요일

흑우생백독黑牛生白犢 – 검은 소가 흰 송아지를 낳다, 화복이 뒤바뀌다.

흑우생백독黑牛生白犢 – 검은 소가 흰 송아지를 낳다, 화복이 뒤바뀌다.

흑우생백독(黑牛生白犢) – 검은 소가 흰 송아지를 낳다, 화복이 뒤바뀌다.

검을 흑(黑/0) 소 우(牛/0) 날 생(生/0) 흰 백(白/0) 송아지 독(牛/15)

세상사에 늘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다. 나쁜 일만 계속된다고 하여 늘 실의에 빠질 필요도 없다. 세상사는 늘 돌고 돌아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禍(화)와 福(복)이 바뀌고 吉凶(길흉)이 섞인다는 대표적인 성어에 ‘인간만사는 새옹지마라’ 할 때의 塞翁之馬(새옹지마)이고 轉禍爲福(전화위복)이다.\xa0여기에 검은 소(黑牛)가 흰 송아지를 낳았다(生白犢)는 뜻의 말도 똑 같은 의미다. 검은 소가 행운의 흰 송아지를 낳았으니 큰 복이 올 것이라 기대하다 재앙이 닥치고, 또 그것이 복으로 바뀐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道家(도가)의 사상가 列子(열자)와 그 후학들이 편찬했다는 ‘열자’에 이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宋(송)나라에 3대째 이어가며 어질고 의로운 행동을 하는 집안이 있었다. 그런 어느 날 그 집에서 기르던 검은 소가 까닭 없이 흰 송아지를 낳았다(家無故黑牛生白犢/ 가무고흑우생백독). 어떤 연고인지 아버지가 아들을 시켜 孔子(공자)에게 여쭤보게 했다.

공자는 아주 길한 징조이니 상제께 바치라고 일러 주었는데 일 년 후 그만 아버지가 눈이 멀게 됐다. 다시 집의 검은 소가 흰 송아지를 낳아 아버지가 공자에게 물어보라고 하자 아들은 알아맞히지도 못한다고 불평했다. 성인의 말씀은 처음 어긋나다가도 뒤에는 맞는 법이라며 보냈다가 이번에도 하늘에 제사지내라는 말씀을 듣고 왔다. 그대로 행한 뒤 일 년이 지나 이번에는 아들도 눈이 멀었다.

성인의 말이 계속 틀리고 흰 송아지가 계속 불행만 가져온 것일까. 그 뒤 강국 楚(초)나라가 송나라를 침략하여 그들이 사는 성을 포위하자 사람들은 굶주려 자식을 바꾸어 잡아먹는 끔찍한 일까지 벌어지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또 장정들은 성 위로 올라가 싸우다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이들 부자는 모두 앞이 안 보였기 때문에 재앙을 면할 수 있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시력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 와 사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검은 소가 결국 재앙을 면하게 해 준 복덩이였다. 8편 중 說符(설부)편에 실려 있다.

인생에서 길흉화복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검은 송아지로 비유했는데 한 때의 그것으로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교훈도 준다. 그러니 잘 나간다고 기고만장하여 닿지 말고, 지금 불행하다고 의기소침하지 말고 앞날을 대비하는 기회로 삼아야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곡반면出告反面 - 나갈 때 아뢰고 들어올 때 뵙는다.

출곡반면出告反面 - 나갈 때 아뢰고 들어올 때 뵙는다.

출곡반면(出告反面) - 나갈 때 아뢰고 들어올 때 뵙는다.

날 출(凵/3) 고할 고, 뵙고청할 곡(口/4) 돌이킬 반(又/2) 낯 면(面/0)

밖에 나갈 일이 있을 때는 매번 부모에게 가는 곳을 아뢴다(出告). 집에 돌아 왔을 때도 반드시 부모님을 뵙고 귀가했음을 알린다(反面). 옛날 효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께 자식으로서 지녀야 할 도리로 생각했던 효의 덕목이다. 원래는 出必告 反必面(출필곡 반필면)이라 했다.

고할 告(고)는 뵙고 청한다는 뜻으로는 음이 ‘곡’이 되어 ‘출곡’으로 읽는 것이 좋다. 중국 五經(오경)의 하나인 禮(예)에 관한 경전 ‘禮記(예기)’에서 상세한 것이 실린 후 아동들의 한학서 ‘小學(소학)’에 까지 실려 널리 알려진 성어이다.

먼저 예기 曲禮(곡례) 상편에 있는 내용을 보자. 곡례는 각종 행사에 몸가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을 설명한 예법을 말한다고 한다. ‘모든 자식된 자는 나갈 때에는 반드시 나간다고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부모에게 낯을 보여야 한다(夫爲人子者 出必告 反必面/ 부위인자자 출필곡 반필면).’ 형제와 친구, 연장자에 대한 태도 등에도 가르침을 주는데 부모에게는 늙었다는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있다.

‘평상시 자신을 늙은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恒言不稱老/ 항언불칭로)’는 것은 부모가 늙은 것을 더욱 느끼게 되니 삼가라는 것이다. 70세가 된 효자 老萊子(노래자)가 그 부모를 위해 색동저고리를 입고 재롱을 떤 것도 그런 뜻이 있었다.

소학은 南宋(남송)의 대유학자 朱熹(주희)의 저작이라 되어 있지만 실제 그의 친구인 劉淸之(유청지)의 원본에 가필한 것이라 한다. 여기에 인용한 내용이 어려워 우리나라서 四字一句(사자일구)로 엮은 것이 ‘四字小學(사자소학)’이다. 아동들도 알기 쉽게 정리한 것이라 千字文(천자문)과 함께 교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충효와 윤리도덕, 벗과의 교유 등 올바른 인성을 갖추도록 권장하고 있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父生我身 母鞠我身/ 부생아신 모국아신)’로 시작되는 孝行(효행)편에 성어가 나온다.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오면 반드시 뵈어라(出必告之 反必面之/ 출필곡지 반필면지). 먼 곳에 가 노는 것을 삼가고, 놀더라도 반드시 일정한 곳에 있게 하라(愼勿遠遊 遊必有方/ 신물원유 유필유방).’

부모의 은혜를 알게 되는 것은 자식을 낳고 기를 때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복잡한 요즘 세상에 집을 나서고 들 때 이처럼 번거롭게 행하기는 어렵다. 또 멀리 떨어져 있다면 매번 알리지는 않더라도 부모에 걱정을 끼치지 않을 정도로 가끔씩 안부를 여쭙는다면 흡족해 할 것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성년부중래盛年不重來 - 젊음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청춘을 낭비하지 말라

성년부중래盛年不重來 - 젊음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청춘을 낭비하지 말라

성년부중래(盛年不重來) - 젊음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청춘을 낭비하지 말라

성할 성(皿/7) 해 년(干/3) 아닐 불, 부(一/3) 무거울 중(里/2) 올 래(人/6)

시간은 금이고, 돈이고, 흘러간 시간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서양 격언이다. 중국 宋(송)나라의 蘇軾(소식)도 一刻値千金(일각치천금)이라 읊었으니 동서가 다르지 않다. 이렇게 값나가는 시간이 지나가기는 덧없다. 빨리 지나가는 시간을 말이 달리는 것에 비유한 표현이 많다.

禮記(예기)에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지나는 것을 문틈에서 보듯이 순식간이라고 若駟之過隙(약사지과극)이라 했고, 莊子(장자)에서도 비슷하게 흰 망아지가 달리는 것을 보는 白駒過隙(백구과극)과 같다고 했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는데 인생에서 짧은 부분인 전성기는 순식간이니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혈기가 왕성한 젊은 시기(盛年)는 일생에서 두 번 오지 않으니(不重來) 청춘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명구는 陶淵明(도연명, 365∼427)의 시에서 나왔다. 六朝(육조) 최고의 시인인 그는 바로 歸去來辭(귀거래사)가 떠오르고 박봉으로 허리를 굽힐 수 없다는 五斗米折腰(오두미절요)란 말도 연상한다.

전원생활과 음주를 벗한 그의 시에 ‘雜詩(잡시)’란 제목의 12수가 있는데 1수의 뒷부분에 이 구절이 나온다. 내용을 보자. ‘한창 시절은 거듭 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은 두 번 맞지 못한다네(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 성년부중래 일일난재신), 때맞춰 부지런히 힘써야 하리,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네(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 급시당면려 세월부대인).’

도연명의 시는 다른 구절 一日難再晨(일일난재신)이나 歲月不待人(세월부대인)까지 누구나 알 정도로 많이 인용된다. 우리의 한문교재 ‘明心寶鑑(명심보감)’에도 실려 친숙하기도 하다. 19편의 항목에서 증보한 마지막 24편의 勸學(권학)에서인데 여기엔 朱子(주자)의 유명한 시도 함께 소개된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소년이로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는 구절과 ‘오늘 배우지 아니하고서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올해에 배우지 아니하고서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물위금일불학이유래일 물위금년불학이유래년)’는 권학문이다. 古文眞寶(고문진보)에도 나오는 그 구절이다.

선현들이 수없이 시간을 아끼고, 전성기는 빨리 지나가니 알차게 보내야 한다고 일러도 보통 사람들이 명심하기는 어렵다. 특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것이 영원한 줄 안다. 權不十年(권불십년)이란 이야기는 남에게만 해당되는 것인 양 우쭐댄다.

어쩌다 재산을 모은 졸부는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인 줄 모르고 흥청망청 낭비한다. 남을 욕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피땀 같은 세금을 앞날은 생각 않고 퍼주기 인기몰이 하는 위정자는 더하다. 영원한 것은 없고 좋은 시기는 후딱 지나간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2024년 4월 11일 목요일

복경호우福輕乎羽 - 복은 새털보다 가볍다.

복경호우福輕乎羽 - 복은 새털보다 가볍다.

복경호우(福輕乎羽) - 복은 새털보다 가볍다.

복 복(示/9) 가벼울 경(車/7) 어조사 호(丿/4) 깃 우(羽/0)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길 꿈꾼다. 사람은 평생을 행복을 구하며 불철주야 노력한다. 福(복)이라는 글자는 조상의 신주를 나타낸 보일 示(시) 옆에 음식이나 술이 가득한 항아리 畐(복)을 붙여 나타냈다고 한다. 조상에게 음식을 바쳐 복을 기원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남이 봤을 때 충분히 성공하여 행복하게 보일지라도 자신은 더 이상을 욕심낸다. 행복을 자기 자신 이외의 곳에서 발견하려고 바라는 사람은 그릇된 사람이다. 어릴 때 누구나 읽는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의 ‘파랑새’는 행복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헤매지만 결국 집안의 새장에서 찾는다.

복은 나눌수록 커지고 남을 행복하게 하는 자가 자신 또한 행복하다. 행복에 관한 동서고금 철인들의 명언은 수없이 많다. 복이 왔다고 자만하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것은 찰나이며 그 변화는 끝이 없다는 잘 알려진 성어가 塞翁之馬(새옹지마)다.

塞翁(새옹)이란 노인이 기르던 말이 주인에게 吉凶禍福(길흉화복)을 번갈아 갖다 준다. 천지만물을 풍자와 寓言寓話(우언우화)로 풀어내는 道家(도가)의 중심인물 莊周(장주)도 그답게 복은 깃털보다 가볍다고 한 마디 보탰다. 그의 책 ‘莊子(장자)’의 內篇(내편) 人間世(인간세)에서다.\xa0개인이 혼란한 시기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말한 이 글에서 戰國時代(전국시대) 楚(초)나라의 은자로 알려진 接輿(접여)를 등장시켜 지나가는 孔子(공자)에게 한 마디 한다. 중간 부분을 보자.

‘행복은 깃털보다 가볍지만 아무도 그것을 간직할 줄 모르고(福輕乎羽 莫之知載/ 복경호우 막지지재), 재앙은 땅덩어리보다 무겁지만 아무도 그것을 피할 줄 모르오(禍重乎地 莫之知避/ 화중호지 막지지피).’ 이 말은 접여가 공자를 鳳凰(봉황)으로 지칭하며 혼탁한 현실 정치에서 벗어날 것을 충고하는 내용이라 해석한다. ‘論語(논어)’의 微子(미자)편에도 접여가 鳳兮歌(봉혜가)를 부르며 도가 없는 세상에서 덕을 베푸는 일은 위험하다고 했다.

깃털은 가볍다. 하지만 그것이 모여 배도 가라앉힐 수 있다고 積羽沈舟(적우침주)라 했다. 행복이 자그마하다고 가벼이 여기고 아무렇게나 대하면 순식간에 빠져 나간다. 행복은 남의 정원에서 따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복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것이 복인지 모른다(身在福中不知福/ 신재복중부지복)’는 말과 같이 가까이서 복을 찾아야 한다. 또 복이 왔을 때 소중히 여기는 것도 중요하다. 그 복이 언제 화가 되어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을 만족하고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지혜다. / 제공 : 안병화 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부앙불괴俯仰不愧 - 구부리거나 하늘을 우러러도 부끄러움이 없다.

부앙불괴俯仰不愧 - 구부리거나 하늘을 우러러도 부끄러움이 없다.

부앙불괴(俯仰不愧) - 구부리거나 하늘을 우러러도 부끄러움이 없다.

구부릴 부(亻/8) 우러를 앙(亻/4) 아닐 불(一/3) 부끄러울 괴(心/10)

인간만이 얼굴이 붉어지는 동물이며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羞恥心(수치심)은 모든 도덕의 원천이라고 현인들은 말한다. 남보다 능력이 부족해 열등감을 느끼거나 양심에 어긋나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부끄럽다.

항상 조심하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인품이 높은 사람이 있는 반면,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도대체 남에게 피해가 가는 짓을 하고도 厚顔無恥(후안무치)인 철면피도 있다. 부끄러움을 말할 때 먼저 떠오르는 시인이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항상 생각한 민족시인 윤동주다.

우리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여 잘 알려진 그의 ‘序詩(서시)’의 앞부분을 보고서 바로 연상되는 것이 구부려 보거나 우러러 보거나(俯仰) 부끄러움이 없다(不愧)는 이 성어다. 俯仰無愧(부앙무괴)라 해도 같다. 性善說(성선설)을 주장한 孟子(맹자)는 인간의 도덕적 본성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 한다.

그의 책 ‘맹자’의 盡心(진심) 상편에 설명한다. 사람의 본심인 仁義禮智(인의예지)가 외부에 대응하여 나타난 四端之心(사단지심)을 바르게 기르는 것이 하늘을 섬기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뒷부분에 성어가 나오는 유명한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君子三樂/ 군자삼락)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격과 덕망을 갖춘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 되는 것을 먼저 제외한다. 부모가 살아계시며 형제들이 무탈한 것이 첫째이고, 천하의 우수한 인재들을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로, 그 사이 문장을 보자.

‘위로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 굽어보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이낙야)’이라 했다. 怍은 부끄러워할 작. 첫째와 셋째에 비해 부단히 수양해야 이뤄지는 두 번째 즐거움의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군자의 세 가지로 시작하는 말이 다수 있는데 무식하고, 모르면서 배우지 않고, 배우고 실천하지 않는 것을 君子三憂(군자삼우)라 하는 등이다.

보통 사람들은 양심에 조금 거리끼는 짓을 하면 부끄럽다. 부끄러움을 잘 타는 사람은 내성적이라 자기 일만 하고 남의 앞에 잘 나서지 못한다. 앞장서서 일을 잘 처리하려면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이 필요하다.\xa0문제는 남을 위한다며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자주 부끄러움을 잊는다는 점이다.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어제한 말과 오늘 말이 다르고, 큰소리치면 이긴다고 생각하고, 아랫사람은 괴롭혀도 괜찮다고 갑질을 일삼기 일쑤다. 심지어 범죄를 저지르고도 변명을 일삼고 남에게 덮어씌운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사회가 건강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인면수심人面獸心 - 사람의 얼굴에 마음은 짐승사람 인人-0 낯 면面-0 짐승 수犬-15 마

인면수심人面獸心 - 사람의 얼굴에 마음은 짐승사람 인人-0 낯 면面-0 짐승 수犬-15 마음 심心-0

인면수심(人面獸心) - 사람의 얼굴에 마음은 짐승사람 인(人-0) 낯 면(面-0) 짐승 수(犬-15) 마음 심(心-0)

사람이 몹쓸 짓을 저질렀을 때 비유하여 짐승 같다, 짐승보다 못하다, 짐승보다 더 하다고 수시로 짐승에 갖다 붙인다. 그러나 실제 동물들은 억울하다. 사람보다 더 부모를 위할 줄 알고, 새끼들을 귀여워하고, 사랑하고 은혜를 안다.

대충의 성어를 떠올려 봐도 反哺之孝(반포지효)의 까마귀, 老牛舐犢(노우지독)의 소, 鴛鴦之契(원앙지계)의 원앙, 黃雀銜環(황작함환)의 꾀꼬리 등을 사람에게 본받으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의 얼굴(人面)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짐승과 같다(獸心)는 이 말은 잘못 갖다 붙인 것일지라도 사람들이 멋대로 쓴다. 도리를 지키지 못하고 배은망덕하고, 또 음탕하거나 흉악한 짓을 한 사람에게 손가락질하면서 욕한다.

성어가 처음 사용된 곳은 "漢書(한서)"다. 班固(반고)가 20년에 걸쳐 완성하여 史記(사기)와 비견되는 책이다. 열전 속의 匈奴傳(흉노전)에 처음 묘사했을 때는 흉악하기보다는 오랑캐들을 일반적으로 지칭한 것으로 나온다.\xa0흉노는 기원전 3세기 말부터 기원후 1세기 말까지 몽골고원과 만리장성 일대를 중심으로 거주했던 유목 기마민족이다. 周(주)나라 때부터 괴롭혔던 종족의 후예라거나 유럽의 훈족과 관련이 있다고도 한다.

이들이 자주 침공하여 漢(한)나라는 절세미인 王昭君(왕소군)을 흉노 족장에게 보내 화친을 도모하기도 한 것은 알려진 이야기다. 흉노를 가리킨 부분을 인용하면 이렇다.\xa0"오랑캐들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며, 사람의 얼굴을 하였어도 마음은 짐승과 같다(夷狄之人 被髮左衽 人面獸心/ 이적지인 피발좌임 인면수심)."\xa0狄은 오랑캐 적, 衽은 옷깃 임. 옷깃을 한족과 반대쪽으로 여미는 풍습을 가리켜 미개하다 하고, 자신들을 많이 괴롭혀 흉악하다 한 것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불구언소不苟言笑 - 남을 헐뜯거나 비웃지 않는다.아닐 불一/3 진실로 구艹/5 말씀 언言/

불구언소不苟言笑 - 남을 헐뜯거나 비웃지 않는다.아닐 불一/3 진실로 구艹/5 말씀 언言/0 웃음 소竹/4

불구언소(不苟言笑) - 남을 헐뜯거나 비웃지 않는다.아닐 불(一/3) 진실로 구(艹/5) 말씀 언(言/0) 웃음 소(竹/4)

중국 儒家(유가)의 경전이라면 보통 四書五經(사서오경)을 일컫는다. 사서는 상식으로도 論語(논어), 孟子(맹자), 大學(대학), 中庸(중용)으로 줄줄이 댈 수 있게 익숙한데 오경은 그렇지 않다. 처음 삼경이라 하여 詩經(시경), 書經(서경), 易經(역경)이던 것이 禮記(예기)와 春秋(춘추)를 넣어 오경이 됐지만 아무래도 사서에 비해 일반에 덜 친숙하다. 이는 더 역사가 오랜 오경보다 성리학에서 孔子(공자)의 언행록과 직접 관련성이 있는 사서를 더 중시한데서 왔다고 본다. 민요와 법제를 다루고 길흉을 점친 삼경에서 뒤늦게 역사서인 춘추와 예의 이론을 다룬 예기를 포함시켰다고 홀대를 한 것은 아니다.

이중 예기는 의례의 해설뿐 아니라 정치, 음악, 학문 등 일상의 영역까지 언급한다. 다방면에 걸쳐 예의 근본정신에 대해 기술하고 도덕적인 면을 강조하여 실제 경서의 첫손에 꼽히기도 한다. 그래서 荀子(순자)는 자신의 책 勸學(권학)편에서 ‘학문은 시경 서경 등 경을 암송하는 데서 시작하고, 예기를 읽는 데서 끝낸다(始乎誦經 終乎讀禮/ 시호송경 종호독례)’고 할 정도였다.

공자가 편찬에 참여했다고 하고, 성리학의 朱熹(주희)가 예기에서 대학 중용을 독립시켜 사서에 포함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경솔하게 남을 헐뜯거나 비웃지 않는다는 뜻의 이 성어는 五禮(오례)를 다룬 이 책의 첫 부분 曲禮(곡례)편에 나온다.\xa0말과 행동을 바르게 하는 것이 예의 근본이고 나라를 위한 출세보다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 앞서야 한다고 곳곳에서 강조한다. 부모가 말씀하기 전에 알아듣고 보여주기 전에 깨달아야 하는 것이 사람의 자녀로서 해야 할 일이라며 이어진다.

‘높은 곳에 오르지 않으며 깊은 곳에 가지 않고(不登高 不臨深/ 부등고 불임심), 섣불리 남을 헐뜯지 않고 남을 비웃지 않는다(不茍訾 不茍笑/ 불구자 불구소).’ 위험한 곳에 가지 않는 것이 부모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길이고, 남을 험담하는 것은 어버이를 욕되게 하는 것이 되므로 삼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訾는 헐뜯을 자. 不苟笑語(불구소어), 不苟訾笑(불구자소)로 줄여 써도 같다.

곡례편에 효자가 행하는 유명한 말이 더 있다. 추울 때는 따뜻하게 보호하고 여름철에는 시원하게 해 드린다는 冬溫夏凊(동온하정, 凊은 서늘할 정), 아침저녁 잠자리와 안부를 살피는 昏定晨省(혼정신성), 그리고 나갈 때 아뢰고 들어와서 뵙는다는 出必告 反必面(출필곡 반필면) 등이다.

이러한 것은 요즘 부모도 성가실 일이고, 자녀도 바쁜 현대의 독립된 생활에서 모두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말로써 말이 많은 세상에서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남을 헐뜯어 시비를 자초하는 일은 자신뿐 아니라 부모도 욕되게 하니 꼭 실천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천택납오川澤納汚 - 하천이나 못은 오수도 받아들인다, 지도자는 결점 있는 사람도 널리 포용

천택납오川澤納汚 - 하천이나 못은 오수도 받아들인다, 지도자는 결점 있는 사람도 널리 포용해야 한다. 

천택납오(川澤納汚) - 하천이나 못은 오수도 받아들인다, 지도자는 결점 있는 사람도 널리 포용해야 한다.\xa0

내 천(巛/0) 못 택(氵/13) 들일 납(糸/4) 더러울 오(氵/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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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넓고 아량이 있으면 모두에 환영받는다. 개인 간에도 그러한데 지도자라면 크건 작건 선악의 사람들을 포용해야 크게 성공한다. 바로 떠오르는 말이 있다. 秦始皇(진시황)의 신임을 받은 이웃나라 출신 李斯(이사)가 모략으로 추방의 위기에 처하자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아 높게 되었다는 泰山不辭土壤(태산불사토양)의 諫逐客書(간축객서)로 위기를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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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사는 통일제국 확립에 큰 공헌을 했다. 이어지는 부분 하해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아 이뤄졌다는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도 알려져 있는데 이 말은 앞서 하천이나 못(川澤)은 더러운 물도 받아들인다(納汚)는 伯宗(백종)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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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의 宣公(선공) 15년 조에 일촉즉발의 전략 싸움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다. 楚(초)나라의 莊王(장왕)이 五覇(오패)에 오르기 전 한창 세력을 키울 때였다. 齊(제)나라에 사신을 보내면서 지나치게 되는 이웃 소국 宋(송)나라에 통보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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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미가 잡히면 침략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대신 華元(화원)이 주권을 지켜야 한다며 사신을 잡아 처형하고 만반의 수비태세를 갖췄다. 화가 난 초의 장왕이 대군을 일으켜 공격했으나 송나라는 여러 달 전투를 끌면서 북방의 晉(진)나라에 사신 樂嬰齊(악영제)를 보내 구원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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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景公(경공)은 형제의 나라 송나라를 구하기 위해 출병준비를 시켰다. 이때 대부 백종이 나서며 진나라가 강하다고 하나 지금은 하늘이 초나라를 돕고 있으니 출병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간언했다. 그러면서 말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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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굽히고 펴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했습니다(高下在心/ 고하재심). 하천이나 연못은 오수와 탁수를 받아들이고, 산과 늪은 독충을 숨어 살게 하며, 아름다운 옥도 흠을 가지고 있습니다(川澤納汚 山藪藏疾 瑾瑜匿瑕/ 천택납오 산수장질 근유닉하).’ 藪는 늪 수. 그러니 지금의 조그만 오점은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옳다고 여긴 경공은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곧 지원하겠다는 말만 하고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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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흠을 찾아내 서로 옳다, 그르다며 지지고 볶는다면 통합은 하세월이다. 유리한 측에서 관용을 베풀고 선의로 대해야 입장이 바뀌었을 때도 마음이 넓어진다. 높은 사람의 관용은 충성을 빼앗는 전략이라 낮춰 보는 시각도 있지만 계속 쌓이면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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菜根譚(채근담)에 있는 좋은 말도 음미해 보자.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은 마치 봄바람이 따뜻하게 하여 길러주는 것과 같아서 만물이 이를 만나면 성장한다(念頭寬厚的 如春風煦育 萬物遭之而生/ 염두관후적 여춘풍후육 만물조지이생).’ 煦는 따스할 후.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연작홍곡燕雀鴻鵠 – 제비 참새와 기러기 고니. 소견 좁은 사람이 큰 뜻 품은 사람을 알랴?

연작홍곡燕雀鴻鵠 – 제비 참새와 기러기 고니. 소견 좁은 사람이 큰 뜻 품은 사람을 알랴?제비 연灬/12 참새 작隹/3 기러기 홍鳥/6 고니 곡鳥/7

연작홍곡(燕雀鴻鵠) – 제비 참새와 기러기 고니. 소견 좁은 사람이 큰 뜻 품은 사람을 알랴?제비 연(灬/12) 참새 작(隹/3) 기러기 홍(鳥/6) 고니 곡(鳥/7)

제비와 참새를 아울러 燕雀(연작)이라 이른다. 이들 새는 해충을 잡아먹고, 처마에 집을 지으면 행운이 온다고 吉鳥(길조)로 여겨진다. 하지만 덩치가 작아서 그런지 어리석고 도량이 좁은 사람에 종종 비유된다. 처마에 불이 붙어도 위험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燕雀處堂(연작처당), 燕雀不知禍(연작부지화)라는 말이 나왔다.

큰 기러기와 고니라는 키가 우뚝한 새를 합쳐 鴻鵠(홍곡)이라 부르고 포부가 원대하고 큰 인물을 가리켰다. 네 종류의 새를 합쳐 만든 성어는 ‘제비나 참새가 어찌 기러기나 고니의 뜻을 알겠는가(燕雀安知鴻鵠之志/ 연작안지홍곡지지)’란 말을 줄여 한 말이다.

소견이 좁은 사람은 뜻이 큰 사람이나 그릇이 큰 사람의 야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의 이 말은 때로는 자신의 진심을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때 자탄하는 말로도 쓰인다. 여기서 큰 기러기와 고니를 자처한 사람은 陳勝(진승)이다.\xa0그는 秦始皇(진시황)이 죽은 뒤 실정으로 농민 봉기가 일어났을 때 吳廣(오광)과 함께 최초의 지도자였다. 진승이 젊어서 날품팔이를 할 때도 틈만 나면 난세를 탄식하며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다.

하루는 품팔이로 농사일을 하다가 잠시 쉬고 있을 때 함께 고생하던 동료들에게 말했다. ‘장래 부귀한 몸이 되더라도 서로 잊지 않도록 하자(茍富貴 無相忘/ 구부귀 무상망).’ 이 말을 들은 농사꾼들은 날품팔이 주제에 어떻게 부귀하게 되겠는가 하며 잠꼬대 그만 하라고 윽박질렀다. 진승은 이 말을 듣고 탄식했다.

‘아, 제비나 참새 따위가 어찌 큰 기러기나 고니의 뜻을 알겠는가(嗟乎 燕雀安知鴻鵠之志哉/ 차호 연작안지홍곡지지재)?’ 嗟는 탄식할 차. 진승은 큰소리친 대로 장성의 경비에 뽑혀 가다가 기간 내에 가지 못하게 되자 900여 동료들과 반란을 일으켰다. 최초의 농민군 봉기로 張楚(장초)를 세우한 뒤 각지에서 호응을 받았으나 조직력과 훈련 부족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事機(사기)’ 陳涉(진섭)세가에 나온다. 진승의 자가 涉(섭)이다.

평시에 남다른 행동을 하며 따돌림을 당하다 나중에 빛을 보는 사람이 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원망을 많이 했겠지만 성공하고 나서는 이상했던 행동이 뜻을 이루는 밑받침이었다고 칭송받는다. 훌륭한 지도자나 남보다 앞서 큰 기업을 일군 사람들 중에 많은데 평시에 사람됨을 잘 살펴 힘을 북돋울 필요가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부지지병不知知病 - 모르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 

부지지병不知知病 - 모르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 

부지지병(不知知病) - 모르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xa0

아닐 불, 부(一/3) 알 지(矢/3) 알 지(矢/3) 병 병(疒/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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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힘’이란 말이 있다. 어떤 어려운 일에 닥쳤을 때 처리할 방법을 알면 해결이 수월하다. 또 내막을 잘 알고 상대하면 어떤 난관도 뚫을 수 있다는 知彼知己(지피지기)가 병법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많이 아는 사람은 혼자 있을 때나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나 여유롭고 담담하다고 해서 大知閑閑(대지한한)이라고 莊子(장자)는 말했다. 이런 사람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속담을 실천하듯 잘 알아도 모든 일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소크라테스(Socrates)의 겸손과 닮았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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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는 것이 병이 되는 경우가 있다. 조금 아는 일에 함부로 덤볐다가 패가망신하거나, 몰랐으면 그냥 넘어갈 일을 알고선 지나칠 수가 없어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이 될 때다. 모르거나 듣지 않았으면 마음이 편안했을 것이라고 聞則是病 不聞是藥(문즉시병 불문시약)이라 한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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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큰 병이 있으니 모르면서도(不知) 아는 체 하는 병(知病)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인데 빈 깡통이 더 요란한 경우가 많아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없는 놈이 있는 체 못난 놈이 잘난 체’하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다. 老子(노자)가 ‘道德經(도덕경)’에서 이것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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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장인 知病章(지병장)에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것을 꼬집는다. ‘알면서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知不知上 不知知病/ 지부지상 부지지병). 병을 병으로 알아야만 병이 되지 않는다(夫唯病病 是以不病/ 부유병병 시이불병).’ 그러면서 성인이 병이 없는 것은 자신의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에 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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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만 모르는 체하는 것이 무슨 꿍꿍이속이 있어 그렇다면 욕먹을 짓이지만 아무데나 나서며 자랑하지 않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그렇게 되면 다양한 분야에서 실제 몰랐던 부분을 배울 수 있는 이득도 있으니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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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복잡한 일을 모두 알 수도 없고, 전부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다만 잘 알고도 곤경에 빠진 사람에 도움을 주지 않거나 모르면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나댄다면 문제다. 孔子(공자)님도 좋은 말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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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처마 끝의 제비가 이렇게 지저귄다는 그 구절이다. 부작용이 뻔히 보이는데도 옳다고 우기며 정책을 강행하는 등 제비도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데 요즘 모르는 것을 안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