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7일 금요일

너와 함께 가고 싶은 곳

너와 함께 가고 싶은 곳

너와 함께 가고 싶은 곳

만약 어딘가에

갈매기 발자국도 찍히지 않은

작은 섬이 있다면

너와 함께 가고 싶다.

짙푸른 나무와

한번 피면 절대 지지 않는

선명한 색의 꽃들

그리고 일 년 열두 달

맑고 하얀 구름을 볼 수 있는 곳

그런 섬이라면 더욱 좋겠지

만약 이 세상 한 귀퉁이에

신도 알지 못하는

부드러운 언덕이 있다면너와 같이 집 짓고 살고 싶다.

세월이 흘러도 나이를 먹지 않아

젊고 아름다운 너를

억만 년이고 볼 수 있는 곳

한번 사랑은

그 한번 사랑으로

절대 바뀌지 않는 곳

너의 맑은 눈을 보며

언제까지나 함께 살고 싶다.

-백홍준-

삶이 버거울때

삶이 버거울때

삶이 버거울때

삶이 버거울때

뒤를

돌아보는

지혜를 가지세요

두려움이

앞서 망설였던

시간을 생각해 보세요.\xa0

자신을

믿었잖아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고...

앞이

보이지 않을때

한걸음 나아가 보는 거예요.\xa0

힘들때는..

하늘을 보세요

같은 하늘아래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세요.

어떤

오해속에도

따뜻하게 믿으며

바라보아 줄거예요.

오해가

사실이라도

그럴수 밖에는

없었을 상황을 이해해 줄거예요.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에는

그 짐을 하늘에 날려 보세요.\xa0

분명히 받아 줄거예요.

항상

그래왔듯이

말없이 지켜봐 줄거예요.

우리 서로 믿을수 있잖아요.

슬플때에는..

비를

맞으며

걸어보세요.

어깨위에

내리는 비 처럼

모두 씻어 버리세요.

하늘도

울어 주잖아요

함께 잊어 버리는 거예요.\xa0

젖은

몸을 말리며

다시 웃을수 있을거예요

외롭다

느껴질때

저녁 노을을 바라보아요

아쉬움을 남기며

화려하게 지는 저 태양처럼

아쉽지만 모두 버리는 거예요.

우리

그럴수

있잖아요

내일이란 시간이

또 다시 찾아오니까요.

기쁠때는..

사람들의

행복을 조금씩

나누어 가져도 된다는

생각이 되면 그냥 웃어주세요.

나를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맑은

웃음으로

모두에게 웃음이

묻어날수 있도록 그냥 웃는 거예요.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 잖아요.

소중한

자신을 위해

누구보다 기쁜 마음으로

행복한 표정으로 웃어버려요.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 보세요.

그대 사랑하는\xa0사람들과 함께 있잖아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옮긴 글-

지금 당장 하라!

지금 당장 하라!

지금 당장 하라!

겨울방학을 앞둔 어느 날, 심리학 교수가 칠판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당신이 3일 후에 죽는다면… 만일 사흘 후에 죽게 된다면 당장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세 가지만 순서대로 말해보세요, 자, 누가 먼저?"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평소 말 많은 한 학생이 입을 열었다.

"음… 일단 부모님께 전화하고, 애인이랑 여행 가고, 아, 작년에 싸워서 연락이 끊어진 친구에게 편지 쓰고…, 그럼 사흘이 다 가겠죠?"

학생들은 저마다 웅성웅성 하고 싶은 일을 떠들어댔다. 또 다른 학생이 입을 열었다.

"글쎄, 저라면 음… 우선 부모님과 마지막 여행을 간다. 그 다음엔…, 그 다음엔…

꼭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던 고급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는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는 마지막 일기를 쓴다."

그런데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세 가지 소망은 뜻밖에도 다들 평범했다. 여행을 가겠다,

기막히게 맛있는 걸 먹겠다, 싸우고 토라진 친구와 화해하겠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하겠다...

바로 그때 교수가 칠판으로 다가가 단 한 마디를 썼다.

"

Do It Now!

",

들뜨고 어수선했던 강의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지금 당장 그 일을 하십시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밴드에서 옮긴 글-

나를 철들게 한 나의 할머니

나를 철들게 한 나의 할머니

나를 철들게 한 나의 할머니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아버지가 남기신 빚을 갚기 위해 서울로 떠나신 후, 다섯 살이던 저와 세 살이던 남동생은 시골에 계시던 할머니 손에 맡겨 졌습니다.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시절은 할머니 손에 맡겨지고 1년이 지난 여섯 살의 봄입니다. 불행히도 제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어린시절은

지금까지도 제 가슴속에 아픈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날... 도시생활을 하고 있던 친척들이 저와 제 동생 문제로 할머니 댁을 찾았습니다. 너무 어렸기때문에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할머니와 친척들간에 언성을 높이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큰아버지는 저와 제 동생에게

새 옷을 입혀주고, 새 신을 신겨주며, 좋은 곳에 가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울먹이시던 할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큰 아버지는 저희 남매 손을 이끌고 문밖을 나섰습니다.

친척들 누구하나 따라나오는 사람이 없었지만, 할머니는 다르셨습니다.

버선발로 뛰쳐나와 저희 남매를 끌어안고 우셨습니다.

“안 된다. 절대 못 보낸다. 고아원에도, 아들없는 집에도, 나는 못 보낸다. 죽은 내 아들 불쌍해서 이것들 못 보낸다. 니들 헌티 10원 한푼 도와달라구 안 헐라니까 보내지 마라. 그냥 내가 키우게 놔둬라.”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목 놓아 우셨습니다.

그날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도, 제 남동생도 없었겠지요. 고아원에 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아들 없는 집에 보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저희 남매는 할머니께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은혜를 입은 것인데

그게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철이 들 무렵이 되어서야 그것을 알았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남의 집으로 일을 다니시며 받아오신 품삯으로 생활을 꾸려가셨습니다.

할머니가 저희 남매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셔야 했는지, 스스로 얼마나 억척스러워 지셔야 했는지,

그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습니다.

그저 배부르게 먹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고, 새 옷 한 벌없이 남의 옷만 얻어 입는 것이

불만이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학용품을 넉넉하게 쓰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고, 마음 놓고 과자 한번 사 먹을 수 없는 것이 불만이었고, 소풍에 돈 한푼 가져갈 수 없는 것이 불만이 었고, 운동회 때 할머니랑 함께 달리는 것이 불만이었고, 할머니 밑에서 자란다는 이유만으로 동네에서나 학교에서나 불쌍한 아이 취급받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비록 가난해서 봄이면 나물을 뜯어 다 장에 내다 팔고, 여름이면 고기를 잡아다 어죽집에 팔고, 가을이면 도토리를 따다 묵집에 팔고, 겨울에는 손에 마늘 독이 베이도록 마늘을 까서 돈을 벌어야 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와 함께 했던 유년의 시간들이 스물 아홉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

그때는 그게 행복이라는 걸 몰라서 할머니 가슴을 많이도 아프게 했지요. 저는 가난이 싫었습니다. 억척스러운 할머니가 싫었습니다.

할머니가 부끄럽다는 생각은 했으면서도, 고생하시는 할머니가 불쌍하거나 안쓰럽다고 생각해 본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몰래 눈물을 훔쳐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한번은 자취하는 제게 김치와 쌀을 갖다 주시겠다고 올라오신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터미널에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한참을 두리번거린 후에 찾아낸

할머니는 반갑게 제 손을 잡으시며

“아침 7시 차 타구 나왔더만, 10시두 안돼 도착허더라. 한 3시간은 이러구 서 있은 모양이여. 기다리다 배고파서 나 먼저 짜장면 한그릇 먹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게 내가 아침 드시고 천천히 출발하시라고 안 했어! 할머니 때문에 속상해 죽겄네.”

할머니는 화가 난 손녀딸의 눈치를 살피시며 들고 오신 가방 지퍼를 여셨습니다. 할머니가 들고 오신 큰 가방 속에는 김치통 두 개가 들어 있었고, 가방안은 김치통에서 흘러나온 빨간 김치국물로 한가득이었습니다.

“내가 할머니 때문에 미치겠네.

김치만 비닐봉지에 꼭 싸서 가져오셔야지, 가방에다 김치통을 통째로 넣어오면 국물이 안 넘친데?”

할머니는 금세 얼굴이 붉어지셨습니다.

“이를 워쩌까. 국물이 다 새서 못 들고 가겄다. 내가 언능 수퍼가서 봉다리 얻어 올팅께 지달려라?”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할머니는 김치 전해줬으니 그만 가 봐야겠다시며 들고 오신 가방 안쪽 작은 지퍼를 열고 꼬깃 꼬깃 접은 1만 원 짜리 두 장을 제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 건네주신 1만원짜리는 빨갛게 물들어서 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시내버스안에서 얼마나 소리내어 울었는지 모릅니다. 할머니가 젖은 가방에서 꺼내 주셨던, 빨간 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지던

1만원짜리 두 장을 손에 꼭 쥐고,

사람들이 가득한 버스 안에서

그렇게 한참을 울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무역회사에 취직한 저는 돈을 벌게 되었고, 이제 할머니를 호강시켜 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할머니가 아프시다고 하면

약재시장에 가서 좋다는 약재를 사다 보내 드리고, 할머니 생신이 다가오면 동네 할머니들과 식사라도 하시라고 용돈도 보내 드리고,

주말에 시골에 내려가면 할머니와 장으로 구경도 나가고,

명절에는 할머니를 모시고

레스토랑에 가서 돈가스도 사드렸습니다.

처음 할머니를 모시고 레스토랑에 가서 돈가스를 먹던 날, 할머니는 돈가스 한 접시에 음료로 나온 사이다 한잔까지 쭉 비우신 뒤 말씀하셨습니다.

“양두 얼마 안 되는 것이 참말로 맛나다? 이런 것이먼 몇 접시라두 먹겄다.”

저는 할머니의 그 말에 또 다시 눈물이 났습니다. 그까짓 돈가스가 얼마나 한다고 이제서야 사드리게 됐을까. 가슴이 아파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제가 먹던 접시를 할머니 앞에 내어 드렸습니다.

그날 하얗게 서리 내린 할머니 머리를 내려다보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는 맛있는 것은 무엇이든 사 드리리라.

남들 먹는 거, 맛있다고 하는 거,

한번씩은 다 맛보여 드리리라.

좋은 옷도 입혀 드리고 멋진 구경도 맘껏 시켜 드리리라.

언젠가 할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손녀딸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가고, 이쁜 새끼 낳아 사는 거 보고 죽으먼 내가 소원이 없을 것인디.”

저는 할머니의 소원대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다음달이면 돌을 맞는 예쁜 딸아이도 낳았습니다.

할머니는 올해로 팔순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우리 남매를 길러 내셨던 할머니는 이제 정말 할머니가 되셨습니다.

허리도 구부러지셨고, 검은 머리가 한가닥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너무 늙으셔서 예전처럼 맛있는 문주를 부쳐 주시지도 못하고,

개떡을 쪄 주지도 못하고, 누룽지에 설탕을 뿌려 주시지도 못합니다.

뜨거운 밥에 올려 먹던 할머니의 얼짠지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이제는 그때 그 맛을 내시지도 못합니다.

같이 봄나물을 뜯으러 다닐 수도,

도토리를 따러 다닐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고 할머니를 생각하면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할머니 하면, 낡고 닳아 헤진 고무신 한 짝이 떠오릅니다. 헌 고무신처럼 평생을 마음껏 가지지 못하고 지지리 고생만 하시며 살아오신 할머니, 이제 할머니가 제 곁에 함께하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언제일지 모를 그날까지 제가 할머니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있을까요?

꽃으로 태어났으나 들풀로 사셔야 했던 그분의 인생, 이제부터라도 화사한 꽃으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조금 불편한 것일 뿐이라는 걸

가르쳐 주신 할머니! 이제 저는 할머니의 사랑과 고생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만큼 철이 들었습니다.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 우리 할머니 손을 잡고 꽃길을 걸어 보고 싶습니다. 오래 전 눈물나게 아름다웠던 유년의 풍경들을 떠올리며 웃어 보고 싶습니다. ^~^

할머니 사랑해요 ♡♡♡

- mbc 라디오 여성시대 사연의 글 -

삶의 방정식

삶의 방정식

삶의 방정식

어느 대기업 회장이 귀한 손님을 접대하고자 고깃집에 갔다.

" 아줌마, 여기 이 집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로 주시오."

고기가 도착하자 회장은 얼굴이 찡그러져 종업원을 불렀다.

"아줌마, 고기에 기름이 왜 이리 많아요?"

이때 찬공기가 순식간에 돌기 시작했지만, 주인 아줌마가 다가오며 던진 말이 회장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아이고 회장님. 이놈의 소가 운동을 안했나 보네요."

어이가 없는 대답에 회장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초대 받은 손님은 한술 더 떳다.

"아줌마! 괜찮습니다. 우리가 먹고 운동 할께요."

살아가는 삶의 방정식은 누구나 다르고 차이가 있다.

그 모든 것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인간이기에 마음에 담았던 내용을 대화로써 풀 수 있는 사람은 현명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은 한잔 술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노력을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옮긴 글-

세상은 넓고 스승은 많다

세상은 넓고 스승은 많다

세상은 넓고 스승은 많다

최고의 스승이 누구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김응룡 감독, 김성근 감독, 이승엽 선수 등을 줄줄 말하다가 최배달 선생을 꼽을 때도 있다.

"

어떻게 하면 더 강한 타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날이었다. 라커 룸에서 스포츠신문을 읽고 있었다. 야구 기사를 쭉 읽다가 당시 인기 있던 연재만화 바람의 파이터 를 봤다.

",

눈이 번쩍 뜨였다. 만화에서 극진 가라데 창시자 최배달 선생이 자신의 격파술에 대한 비밀을 소개했다. 그분의 타격법은 발이나 주먹을 앞으로 쭉 뻗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강하게 때린 뒤 발이나 주먹을 자신의 몸, 즉 원래의 자리로 빠르게 거둬들이는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했다. 주먹으로 목표물을 가격하는 동작과 배트로 공을 치는 스윙의 근본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분명히 그의 격파술에서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배트로 공을 꽉 누르듯 때린 뒤 빠르게 거두는 스윙을 실험했다. 그렇게 하니 힘이 더 실렸다. 만세타법의 메커니즘도 여기서 나왔다.

유일한 취미인 낚시에서도 야구를 배운다. 낚시를 갈 때마다 찌를 야구공이라고 생각하고 오랫동안 집중해서 노려본다. 나와 낚시찌 사이의 거리는 타석에서 내가 공을 쳐야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할 거리와 비슷하다.

한 시간쯤 찌를 상대하다 보면 어떤 투수의 공이라도 쳐 낼 것 같은 집중력이 생긴다. 은퇴한 뒤에도 몇 차례 낚시터를 찾았는데, 무의식적으로 타격을 생각했다. 이쯤이면 직업병이다.

"

자기 중심을 꽉 잡고 있다면 그 다음 필요한 것은 영감이다. 세상은 넓고, 영감을 주는 스승은 많다. 배울 것이 있다면 초등학생이라도 붙들고 물어봐야 한다.

",

"

-프로야구 선수 양준혁 (1969-Present) 뛰어라!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런 중에서-

"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도 새로운 길이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도 새로운 길이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도 새로운 길이 있다

한 젊은 사업가가 버진아일랜드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푸에르토리코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하루에 하나뿐인 비행기를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그날 비행기를 못 타면 그날 하루가 엉망진창이 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사업이 위기에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런 큰 손해를 눈앞에 두고 흥분할 만도 했지만, 그 젊은 사업가는 공항 데스크로 가서 비행기를 전세 내는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그리고 휴대용 칠판을 빌려서 이렇게 썼다.

"버진아일랜드행 비행기 좌석 있습니다: 39달러!"

그는 공항 로비에서 이 칠판을 들고 섰다. 그리고 금세 비행기 임대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만큼 좌석을 팔았다. 그리고 제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버진 그룹의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 회장의 이야기다. 이 경험이 그가 10년 뒤 버진항공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람을 살다보면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있다.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떻게 그 상황을 타개할 것인지 방법을 찾는데 에너지를 쏟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생각이라는 걸 계속하면 뭔가 방법이 떠오르거나 그걸 해결해줄 사람이 떠오른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렇다. 차분히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오히려 여유를 부리는 게 때론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창업을 하게 되기도 한다. 버진항공 리처드 브랜슨 처럼.

-김성환 / Today Story 중에서-

낙담속에 핀 기적

낙담속에 핀 기적

낙담속에 핀 기적

아이작 뉴턴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세상을 떠난 해인 1642년 영국 동부지역 울즈소프에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나기 3달전 그의 아버지는 사망했고 그는 유복자로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충격탓인지 그는 조산아로 태어나 체구가 작았습니다.

뉴턴의 어머니는 뉴턴이 3살때 어느 성직자와 재혼을 하고 그를 떠나 버렸습니다. 그는 할머니에게 맡겨져 할머니 손에 자라게 되었습니다. 부모에게 전혀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늘 혼자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뉴턴은 항상 외톨박이로 자기만의 상상 세계에 빠져들곤 하였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도 괴상한 상상을 하며 항상 홀로 외롭게 있는 소년의 주변에는 친구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 자신과의 대화하기를 좋아했는데, 이는 평생에 걸친 뉴턴의 성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는 공부를 썩 잘하는 아이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사이가 나쁜 학교 친구에게 성적으로 업신여김을 당한 것이 분해서 공부를 시작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한 공부는 어떤 계기를 통하여 자신의 진로를 바꿔놓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살던 곳에 거대한 풍차가 들어섰습니다. 이 풍차는 뉴턴에게 엄청난 호기심과 흥미거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당시 이 풍차는 그곳의 사람들에게도 큰 흥미거리였습니다. 뉴턴도 이때 이러한 진기한 풍차에 흥미를 느끼고 그 작동 원리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연구를 하였던 것입니다. 비록 나이가 어렸지만 뉴턴은 이 움직이는 풍차의 모형을 나름 정확히 만들었고, 뉴턴이 만든 모형 풍차는 바람에 아주 잘 작동했습니다.

그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이러한 풍차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제현해 작동이 될 만큼 잘 만든 능력을 보고 뉴턴의 선생님은 크게 놀랐던 것입니다.

이때 뉴턴의 선생님은 비록 재혼한 뉴턴의 어머니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설득해 뉴턴이 대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뉴턴이 19살이 되던 1661년에 비로소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비로소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신 학문을 배울거라는 기대감을 안고 막상 입학하였지만 고전 철학과 인문학을 가르치는 대학에 너무도 실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1665년에 흑사병까지 창궐했습니다.

모든 지역의 대학은 문을 닫았고 박사학위까지 꿈꾸던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고 할 수 없이 참담한 심정으로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미 청년이 되어 대학에서 학문을 연마했던 그이지만, 그당시 자신이 아이였을 때와 똑같이 그냥 고향 사과나무 아래 주저앉아 실망하고 낙담하는 것 말고는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어렸을때 부터 하던 버릇대로 상상하기를 좋아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인류사의 흐름을 바꾸게 될 커다란 사건인 만류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키치게 된 이 만유인력은 바로 참담한 현실과 참담한 실망감이 만감으로 교차하는 그 시점에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물체와 물체사이의 힘의 원리와 물체의 운동의 원리를 발견함으로써 기계가 작동하는 운동량을 계산하는 법칙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기계쪽에서 완전히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그러한 결과로 100년이 지난뒤 영국에서는 비로소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러한 만류인력의 법칙이 발견되던 1666년 그해에는 영국에서 엎친데 겹친격으로 두번째의 참사인 대 화제가 일어났습니다. 도시의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버린 참혹한 폐허속에서 이러한 뉴턴의 만류인력의 법칙이 발견된 것입니다.

"

세계의 과학사학들은 영국에서 가장 어려움웠던 이 1666년을 기적의 해라고 명명합니다. 그것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암울한 환경속에서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을 만한 엄청난 법칙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려움과 시련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문과 같은 것입니다.

",

영국은 흑사병과 대 화제로 손실된 도시를 다시 건걸하였는데 가장 역점을 둔 점은 바로 두번 다시 흑사병이 창궐하지 않도록 위생에 철저하게 유의하여 기본적인 상.하수도의 기본적인 시설을 완비하게 됩니다. 그리고 도시를 다시 새롭게 리모델링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참사가 도리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위기에 그대로 주저 앉아 실패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위기를 도약의 발판을 삼아 새로운 기회를 만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모두가 낙담하고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적 어려움은 사람에 따라 새로운 역사를 만들게 되고 뉴턴처럼 항상 새로운 생각을 하며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그 어려움은 세상을 바꿔놓을 새로운 기적의 세상을 펼쳐주게 될 것입니다.

-스토리 메이커 박성목-

아름다운 소리

아름다운 소리

아름다운 소리

에버랜드의 동물원에 오랑우탄의 일종인 황금원숭이가 있습니다. 원래 이 황금원숭이는 중국 일부 지역에서만 생활하는 특이한 개체들로서 보호대상일 뿐아니라 아주 아주 극소수만 살아남아 있다고 합니다.

에버랜드는 한참전에 이들 황금원숭이들의 족보로는 가족들이나 다름없는 몇마리를 들여와 사육에 성공하여 자연 생태계가 아니면 극히 어려운 2세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몇개월의 시차를 두고 두 마리 씩이나 태어났습니다. 동물원에서 새끼가 태어나게 하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 원숭이들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워낙 고가인 탓도 있지만 털이 황금색을 띠고 있고 바로 서유기의 주인공인 손오공의 모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원숭이들은 어느날 먼저 태어난 새끼 원숭이 때문에 평화롭게 잘 있지를 못했습니다.

그것은 모계사회인 이들 집단에서 서열 1위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어린 원숭이가 자기보다 귀여움을 독차지한 서열 2위인 원숭이에게서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는 막내를 계속해서 괴롭히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습니다.

막내는 괴로움에 소리를 질러댔고 막내의 어미는 달려와 자신의 아이를 떼어놓기에 바빴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열 2위 원숭이는 자신의 새끼를 괴롭히는 맏형 원숭이를 응징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서열1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막내를 떼어 놓으면 맏형격인 원숭이는 자신의 어미에게 달려가 한참을 울분을 토로 하였습니다, 이럴때면 서열 2위인 원숭이는 놀라 구석에 새끼를 데리고 숨기도하고 펄쩍 펄쩍 뒤기도 하고 안절 부절을 못하였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새끼를 괴롭히는 과정을 모른체 하기도 하고 다가오는 맏형에게 도로 자신의 새끼를 내어 줄때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평화가 깨질까봐 였습니다. 이 가족들의 평화는 서열 1위인 원숭이가 만약 자신의 새끼를 위해 나선다면 이 가족 공동체들의 평화는 깨질 뿐만아니라 그야말로 험악한 사태의 연속에서 자신의 새끼를 잃을 수도 있는 일이였습니다.

이를 계속해서 지켜보던 사육사들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않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육사들은 온통 세계의 유수 동물원에 이러한 사연을 보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딱 한군데서 회신의 메일이 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자그마한 소포가 하나 날아왔습니다. 그것은 이 종족의 오랑우탄의 소리를 담은 cd 였습니다. 중국에서 이 오랑우탄을 키워 봤던 어느 젊은 사육사가 보낸 cd였습니다.

사육사들은 어린 원숭이가 막내를 괴롭힐때마다 이 소리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맏형이 갑짜기 어린 막내를 놓아주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곤 우리안에 평화가 흘러 넘쳤습니다. 놀랍게도 다른 원숭이들도 함께 빙 둘러 앉아 행복해 했습니다.

이 소리는 젊은 사육사가 원숭이들이 가장 행복할때 내는 소리만 모아 놓은 소리였습니다. 사육사들은 우리안에 스피커를 설치해 가끔씩 지속적으로 이 소리들을 들려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황금색 원숭이의 우리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으로 가득찼습니다. 사육사들은 더이상 어린 원숭이를 괴롭히지 않고 싸움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사육사들은 이러한 현상을 신기해 하면서 이 행복의 집단을 위해 보상이라도 하듯 맛있는 걸 한 상이나 차려 잔치를 벌여 주었습니다.

이 세상도 아이러니칼하게 아픔이 많고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는 곳이 참 많은것 같습니다. 하지만 늘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곳도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고 소리 내는 것을 자신이 한번 되돌아 보신적이 있나요?

-스토리 메이커 박성목-

백락일고ㅣ伯樂一顧

백락일고ㅣ伯樂一顧

백락일고ㅣ伯樂一顧

○ 사람을 알아주는 자를 만나야 출세할 수 있음

○ 伯(맏 백) 樂(즐거울 락) 一(한 일) 顧(돌아볼 고)

백락의 한번 돌아봄, 명마도 백락을 만나야 세상에 알려 지듯이 현명한 사람 또한 그 사람을 알아주는 자를 만나야 출세할 수 있음을 비유한다.

하루는 준마를 시장에 내다 팔려고 하는 자가 백락을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제에게는 준마 한 마리가 있습니다. 이 말을 팔려고 아침마다 시장에 나간 지 사흘이 되었지만, 누구 하나 관심을 보이는 자가 없습니다.

한번 와서 저의 말을 봐준다면 사례하겠습니다.” 백락은 그래서 준마를 보러 시장으로 갔다. 그 말은 백락의 생각보다 훨씬 준수했으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탄하는 표정을 짓고는 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아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이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 말이 구하기 어려운 준마라고 생각하고는 앞다투어 사려고 했다. 그래서 말의 값은 껑충 뛰었고, 결국 말 주인이 처음 생각했던 값의 열 배나 받고 팔았다. 이것이 바로 백락이 한 번 돌아봤다는 말이다.

또 한유(韓愈)는“잡설(雜說)”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옛날에 손양(孫陽)이라는 자가 말을 잘 알아봤기 때문에 그를 백락이라고 했다. 천리마가 있어도 알아볼 수 있는 백락이 없다면, 하찮은 주인을 만나 천대받고 혹사당하다가 결국에는 허름한 마구간에서 죽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세상에 이름을 떨치지 못하여 천리마라고 불러 주는 자가 없을 것이다. 천리마라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보통 말 이하의 능력 밖에는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에 훌륭한 인재가 있어도 그를 알아주는 현명한 군주나 재상을 만나지 못하면 재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천리마는 백락이 있음으로 해서 존재하게 된 것이고, 현명한 인재는 현명한 군주가 있음으로 해서 있게 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