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8일 토요일

내가 사랑을 비처럼 해야 한다면 / 양광모

내가 사랑을 비처럼 해야 한다면 / 양광모

내가 사랑을 비처럼 해야 한다면 / 양광모

내가 사랑을 비처럼 해야 한다면

한여름 폭우 되어 너를 만나리

번쩍 번쩍 손길에 번개 이끌고

우르릉 우르릉 발길에 심장 울리며

그치지 않는 장마 되어 너를 찾으리

밤이고 낮이고 쉬임 없어서

잠깐은 멈췄으면 싶어도 질 때까지

사랑이란

가슴을 적시는 게 아니라

가슴이 잠겨버리는 것이다

사랑이란 또 한 가슴

잠겨버려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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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패기마ㅣ碁敗寄馬

기패기마ㅣ碁敗寄馬

기패기마ㅣ碁敗寄馬

○ 바둑에 져서 말을 맡기다.

○ 碁(바둑 기) 敗(패할 패) 寄(부칠 기) 馬(말 마)

바둑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실하게 전하는 문헌은 없어도 중국 고대부터 존재했다는 기록은 많다. 堯(요)임금이 아들 丹朱(단주)를, 舜(순)임금이 아들 商均(상균)을 가르치기 위해 바둑을 이용했다고 전한다. 바둑은 두는 것 못지않게 관전하는 재미도 넘쳐 신선들의 대국을 구경하던 나무꾼이 도낏자루 썩는 줄도 모르고 빠져 있다 정신 차려보니 아득히 세월이 지났더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

내기 바둑에 져서(碁敗) 말을 맡긴다(寄馬)는 이 성어는 조선시대 야담집 五百年奇譚(오백년기담)에 나온다고 하는데 한국고사성어(임종대 편저)에 잘 정리돼 있다. 바둑의 고수가 어떤 목적을 위해서 일부러 져준다는 이야기에서 아득한 고수의 작전이나 작전상 후퇴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장기에서 수가 차·포를 더한 것과 같이 높다는 手加車包(수가차포)란 말과 통한다. 이야기를 간추려본다.

",

세조의 아들 德源君(덕원군)은 잡기도 능해 바둑 두기를 좋아했다. 실력이 뛰어나서 주위에는 그를 상대할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한 군졸이 찾아 와서 한 수 가르쳐주십사하며 도전해 왔다. 덕원군이 허락하자 군졸이 한 수 더 뜬다. 그냥 두면 바둑이 재미가 없으니 내기를 하자고 하며 자기가 지면 끌고 온 말을 드리겠다고 한다. 덕원군이 맹랑하다고 생각하며 그러라고 했다. 시종 팽팽하던 대국의 결과, 덕원군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재미있게 시간 보냈으니 내기를 지킬 필요 없다고 해도 군졸은 약속대로 드리겠다고 하며 말을 두고 떠났다.

군졸이 번을 서고 석 달 뒤에 다시 덕원군을 찾아 와 이번에도 말을 걸고 바둑을 두자고 제의했다. 반갑게 마주 앉으며 바둑을 두던 덕원군은 초반부터 이전과 다른 군졸의 실력에 쩔쩔 매다가 패하고 말았다. 말을 되돌려주며 지난번에는 어찌하여 졌느냐고 물으니 말을 재우고 먹일 방법이 없어서 맡겨두기 위해 그랬다고 대답했다. 덕원군이 껄껄 웃으며 군졸의 기지와 기력에 감탄했다.

六不合육불합과 七不交칠불교

六不合육불합과 七不交칠불교

六不合(육불합)과 七不交(칠불교)

홍콩에 이가성(李嘉诚)이라는 부호가 있습니다. 순위는 의미 없지만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그리고 아시아에선 최고의 갑부입니다.

"홍콩에서 1달러를 쓰면 5센트는 이가성에게 돌아간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특히 홍콩 경제, 더 나아가 전 중화권 경제와 아시아 경제에까지 영향력이 가장 큰 사람입니다.

개인 재산이 약 30조 원인데 세탁소 점원으로 시작해서 엄청난 부를 이루었다는 게 첫 번째 배울 점이고, 지금도 5만 원 이하의 구두와 10만 원 이하의 양복을 입고 비행기는 꼭 이코노미를 타면서 검소하다는 게 두번째 배울 점이며, 그 절약한 돈으로 아시아에서 기부를 제일 많이 한다는 게 세번째 배울 점이지요.

그것도 회사 명의가 아닌 본인의 재산을 팔아서 한다는 점이며, 기부금 중엔 매년 장학금으로 3000억 원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분의 어록중 교우관계에 관한 유명한 말이 있는데 "六不合七不交(육불합, 칠불교)" 가 그것입니다. 여섯 종류의 사람과 동업하지 말고, 일곱 종류의 사람과 사귀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 칠불교(七不交)

1. 불효하는 놈과 사귀지 마라

2. 사람에게 각박하게 구는 사람과는 사귀지 마라.

3. 시시콜콜 따지는 사람과는 사귀지 마라

4.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사람과는 사귀지 마라·

5. 아부를 잘하는 사람과는 사귀지 마라

6. 권력자 앞에 원칙없이 구는 자 사귀지 마라.

7. 동정심이 없는 사람과 사귀지 마라.

○ 육불합(六不合)

1. 개인적 욕심이 너무 강한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2. 사명감이 없는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3. 인간미가 없는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4. 부정적인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5. 인생의 원칙이 없는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6.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이가성 회장과 운전기사의 일화가 있습니다.

홍콩 이가성 회장의 운전기사는 30여년간 그의 차를 몰다가 마침내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이가성 회장은 운전기사의 노고를 위로하고, 노년을 편히 보내게 하기 위해 200만 위엔 (3억 6천만원)의 수표를 건냈습니다.

그랬더니, 운전기사는 필요없다 사양하며, 저도 이천만 위엔(36억 원) 정도의 돈을 모아 놓았습니다. 하더랍니다.

이가성 회장은 기이하게 여겨 물었습니다. "월급이 5~6천 위엔 (100만원) 밖에 안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거액의 돈을 저축해 놓았지?"

운전사는 "제가 차를 몰 때 회장님이 뒷자리에서 전화하는 것을 듣고 땅을 사실 때마다 저도 조금씩 사 놓았고요. 주식을 살 때, 저도 따라서 약간씩 구입해 놓아 지금 자산이 이천만 위엔(36억) 이상에 이르고 있어요!"

우리네 인생에 누구를 만났느냐는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파리의 뒤를 쫒으면 변소주위만 돌아다닐 것이고. 꿀벌의 뒤를 쫒으면 꽃밭을 함께 노닐게 될 것이다."

"물은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서 모양이 달라 지지만 사람은 어떤 사람을 사귀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내 서재에는 책이 있다‘ 중-

군맹무상ㅣ群盲撫象

군맹무상ㅣ群盲撫象

군맹무상ㅣ群盲撫象

○ 여러 맹인이 코끼리를 만지다, 식견이 좁다.

○ 群(무리 군) 盲(소경 맹) 撫(어루만질 무) 象(코끼리 상)

여러 맹인(盲人)이 코끼리를 더듬는다는 뜻으로,즉 자기(自己)의 좁은 소견(所見)과 주관(主觀)으로 사물(事物)을 그릇 판단(判斷)함. 범인(凡人)은 모든 사물을 자기 주관대로 판단하거나 그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보통 사람들의 좁은 식견을 비웃는 말은 우물 속 개구리 井底之蛙(정저지와)나 대롱으로 하늘을 본다는 管中窺天(관중규천) 등 숱하다. 표주박으로 바닷물을 재는 管窺蠡測(관규려측). 여러 맹인(群盲)이 모여 큰 코끼리를 어루만져보게 한다(撫象)는 이 성어도 모든 사물을 자기 주관대로 그릇 판단하거나 일부밖에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유로 자주 쓰인다.

불교 경전 ‘涅槃經(열반경, 涅은 열반 녈, 槃은 쟁반 반)’의 獅子吼菩薩品(사자후보살품)에 수록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옛날 인도의 어떤 왕이 신하들에게 진리를 말하다가 대신에게 코끼리를 한 마리 몰고 오도록 했다. 그러고는 맹인 여러 명을 불러 코끼리를 만져보게 하고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장님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이었고 서로 자기가 만져본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상아를 만진 사람은 무와 같다고 했고, 귀를 만진 이는 키(箕)처럼 생겼다고 했다. 머리를 만진 사람은 돌, 코를 만진 사람은 절굿공이, 등을 만진 이는 평상같이 생겼다고 했다. 또 배를 만졌던 장님은 장독, 꼬리를 만진 이는 새끼줄처럼 생겼다고 대답했다.

맹인들을 물러가게 한 뒤 신하들에게 말했다. ‘코끼리는 하나인데 저 장님들은 제각기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이 옳다고 여기고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구나. 진리를 아는 것 또한 이러하다.’ ‘群盲評象(군맹평상)’, ‘群盲象評(군맹상평)’이라고도 한다.

백룡어복ㅣ白龍魚服

백룡어복ㅣ白龍魚服

백룡어복ㅣ白龍魚服

○ 흰 용이 물고기의 옷을 입는다

○ 白(흰 백) 龍(용 룡) 魚(물고기 어) 服(입을 복)

흰 용이 물고기의 옷을 입는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서민의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고 미행하는 것을 비유한다.

오나라 왕이 백성들을 따라 술을 마시려고 했다. 이때 오자서(伍子胥)가 간언하여 말했다. “마셔서는 안 됩니다. 옛날에 흰 용이 차가운 연못으로 내려와 물고기로 변한 일이 있습니다. 어부 예저는 그 눈을 쏘아 맞추었습니다. 흰 용은 하늘 위로 올라가 하느님에게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이에 하느님은,‘그 당시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흰 용은 대답하기를,‘저는 차가운 연못으로 내려가 물고기로 변해 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이 말하기를,‘물고기는 진실로 사람들이 쏘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다면 예저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라고 했습니다. 무릇 흰 용은 하느님의 귀한 가축이고, 예저는 송나라의 미천한 신하입니다. 흰 용이 모습을 바꾸지 않았다면 예저 또한 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만승(萬乘)의 지위를 버리고 포의(布衣)의 선비들을 따라 술을 마시려고 하십니까? 신은 예저의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왕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또한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장자(莊子) “잡편(雜篇)”‘외물(外物)’에도 있다.

송나라의 원군(元君)이 밤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한 남자가 쪽문으로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재로(宰路)의 못에서 왔습니다. 청강(淸江)의 사자로 하백(河伯)에게 가다가 어부 예저에게 사로잡혔습니다.”

원군이 꿈에서 깨어나 사람을 시켜 이 꿈을 점치게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건 신귀(神龜)입니다.” 그래서 원군이 어부 중에 예저라는 자가 있는지 물으니 과연 있었다.

원군은 예저를 조정으로 불러들여 물었다. “무슨 고기를 잡았느냐? ” “흰 거북이가 제 그물에 걸렸습니다. 크기가 사방 다섯 자나 됩니다.” 원군이 그 거북을 바치라고 했다. 어부로부터 받은 거북을 죽여야 할지 살려 주어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점을 쳐 보니 거북을 죽여 점을 치면 길하다고 했다.

그리하여 거북을 가르고 귀갑(龜甲)을 지져 일흔두 번이나 점을 치니 길흉이 모두 들어맞았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신귀는 원군의 꿈에 나타날 수 있었지만, 예저의 그물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의 지력은 일흔두 번의 점에 어긋남이 없을 정도였지만 창자가 도려내지는 재앙을 피할 수는 없었다.” 고대 우리 나라 임금들도 화려한 곤룡포 대신 평민들의 옷으로 갈아입고 미행을 했었다.

임금의 미행 목적은 무엇보다도 민심을 살펴 정사에 반영하려는 것이었다. 신하들이 보고하는 것만으로써는 백성들이 어떠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촌이란ㅣ方寸已亂

방촌이란ㅣ方寸已亂

방촌이란ㅣ方寸已亂

○ 마음이 이미 혼란스러워졌다

○ 方(모 방) 寸(마디 촌) 已(이미 이) 亂(어지러울 란)

마음이 이미 혼란스러워졌다. 마음이 흔들린 상태에서는 어떠한 일도 계속할 수 없음을 비유한다.

삼국시대(三國時代) 때, 유비(劉備)를 보좌하던 사람 가운데 서서(徐庶)라는 자가 있었다. 서서는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종의 병서를 독파하여 진영을 구축하는 일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냈다.

그 당시 유비와 적대 관계에 있던 조조(曹操)는 서서의 이와 같은 재능이 탐이 났다. 서서의 재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도록 할 수만 있다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자기 사람이 되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유비에게 충성하던 서서는 단호히 거절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조조의 모사 정욱(程昱)은 꾀를 하나 냈다.

서서가 지극한 효자라는 점을 이용하여 위(魏)나라로 오도록 한 것이었다. 그래서 조조는 먼저 서서의 어머니를 속여 위나라로 데려온 후에 서서에게 투항하도록 종용하는 편지를 쓰도록 하였다. 그렇지만 서서의 어머니 역시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는 여장부였으므로 조조의 요구를 거부하였다.

그러자 정욱은 서서 어머니의 필적을 흉내 내어 서서에게 편지를 보냈다. 마침 군사 문제를 계획하던 서서는 이 편지를 받고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유비에게 가서 말했다. “저는 본래 당신이 한(漢)나라를 부흥시키고 반란군을 토벌하는 일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조조가 저의 어머니를 포로로 잡고 있어 제 마음이 혼란스러워져(方寸亂矣) 당신을 위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신을 떠나 어머니를 만나러 가야 합니다.”

고어지사ㅣ枯魚之肆

고어지사ㅣ枯魚之肆

고어지사ㅣ枯魚之肆

○ 매우 곤궁한 처지를 비유한다

○ 枯(마를 고) 魚(고기 어) 之(어조사 지) 肆(마구간 사)

목마른 고기의 어물전(魚物廛)이라는 뜻으로,매우 곤궁(困窮)한 처지를 비유(比喩ㆍ譬喩)한다.

장자(莊子)는 가정 형편이 매우 어려웠다. 하루는 식량이 떨어져 감 하후라는 자에게 꾸러 갔다. 감 하후는 말했다."알았습니다.그러나 지금 저의 형편 역시 어렵습니다. 조세를 거둬들인 후에 은자 3백 냥을 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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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먹을 것이 없는 장자는 그의 말에 화를 벌컥 내며 말했다. “어제 나는 길을 가다가 길가의 마른 구덩이 속에 있는 물고기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그 물고기는 나를 보고는, 저는 본래 동해에 있었는데 불행히 물이 말라 버린 구덩이에 떨어져 죽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물 한 통만 가져다 주어 구해 주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이 상황이 매우 곤궁한 처지를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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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불염사ㅣ兵不厭詐

병불염사ㅣ兵不厭詐

병불염사ㅣ兵不厭詐

○ 전쟁에서는 적군을 속여서라도 적을 이겨야 함

○ 兵(군사 병) 不(아닐 불) 厭(싫을 염) 詐(속일 사)

전쟁에서는 모든 방법으로 적군을 속여서라도 적을 이겨야 함을 말한다.

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에는 진(晉)나라 문공(文公)이 초(楚)나라와 전쟁을 하고자 구범(舅犯)에게 견해를 묻는 대목이 기록되어 있다. 초나라는 수가 많고 우리는 적으니, 이 일을 성취하려면 어찌해야 되겠는가?라는 진 문공의 물음에 구범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제가 듣건대, 번다한 예의를 지키는 군자는 충성과 신의를 꺼리지 않지만, 전쟁에 임해서는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고 합니다(戰陣之間, 不厭詐僞). 그러니 적을 속이는 술책을 써야 할 것입니다.

진 문공은 구범의 계책에 따라, 초나라의 가장 약한 우익(右翼)을 선택하였다. 우세한 병력을 집중하여 신속하게 그곳을 공격함과 동시에 주력부대는 후퇴하는 것으로 위장하여 초나라 군대의 좌익(左翼)을 유인해냈다. 진 문공은 곧 좌우에서 협공하여 초나라 군대를 쳐부술 수 있었다.

조조(曹操)도 삼국연의(三國演義) 23회에서 兵不厭詐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兵不厭詐는 군불염사(軍不厭詐)라고도 하는데, 이는 전쟁에서는 모든 방법으로 적군을 속여야 함을 말한다.

일국삼공ㅣ一國三公

일국삼공ㅣ一國三公

일국삼공ㅣ一國三公

○ 한 나라에 군주가 세 명, 명령 내리는 사람이 많음

○ 一(한 일) 國(나라 국) 三(석 삼) 公(공평할 공)

한 나라에 삼공이 있다는 뜻으로,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구구한 의견을 제시하여 누구의 말을 좇아야 할지 모르는 경우(境遇)를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한 조직에 우두머리가 여럿 있다면 누구의 뜻에 따를까 부하 직원들은 우왕좌왕한다. 서로 실권을 많이 차지하려고 세력다툼을 할 테니 결국 支離滅裂(지리멸렬)될 수밖에 없다. 이 성어에 나오는 公(공)은 周(주)나라 때의 다섯 등급 직위 중 가장 높은 자리다.

天子(천자)의 아래 제후국의 군주를 말했는데 春秋戰國(춘추전국)시대에 와선 너도나도 왕으로 칭했다. 한 나라(一國)에 왕이 3명이나 있다면(三公) 아랫사람이 누구의 명을 따라야 할지 어리둥절할 것이다. 지시하는 윗사람이 많아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경우나 저마다 자기의 의견이 옳다고 고집할 때 비유하는 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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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 이 말이 실려 있다. 晉(진)의 獻公(헌공) 말년에 맞이한 驪姬(여희, 驪는 검은말 려)가 아들을 낳자 왕의 총애를 이용해 태자로 삼으려 했다. 헌공은 세 아들이 있었는데 모함에 의해 태자 申生(신생)은 자살하고 重耳(중이)와 夷吾(이오)에게는 蒲(포)와 屈(굴)이라는 작은 지역을 다스리도록 명을 내렸다. 그 땅은 허허벌판으로 대부 士蔿(사위, 蔿는 애기풀 위)에 명해서 성을 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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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는 풀을 섞은 진흙으로 대충 성을 쌓았다가 보고를 받은 왕에게서 문책을 당했다. 그는 상을 당하지 않았는데 슬퍼하면 반드시 근심거리가 생기고, 전쟁이 없는데 성을 쌓으면 반드시 원수의 아성이 된다면서 왕께서 덕을 닦고 적장자를 굳건히 하시면 어떤 성보다 튼튼하다고 간했다. 그러고선 왕에서 물러나와 여우가죽 옷이 너덜너덜 해어지듯, 한 나라에 세 임금 있으니, 내 누구를 따라야 하리(狐裘尨茸 一國三公 吾誰適從/ 호구방용 일국삼공 오수적종)하며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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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여신ㅣ白頭如新

백두여신ㅣ白頭如新

백두여신ㅣ白頭如新

○ 서로 마음이 안 통하면 새로 사귀기 시작한 사람과 같다

○ 白(흰 백) 頭(머리 두) 如(같을 여) 新(새로울 신)

추양(鄒陽)은 전한(前漢) 초기의 사람이다. 그는 양(梁)나라에서 무고한 죄로 사형을 선고 받았는데, 옥중에서 양나라의 왕에게 글월을 올려 사람을 아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말했다.

형가(荊軻)는 연(燕)나라 태자 단(丹)의 의협심을 존경하여, 그를 위해 진(秦)나라 시황제를 암살하러 갔었다. 그러나 태자 단도 형가를 겁쟁이라고 의심한 일이 한 번 있었다.

또 변화(卞和)는 보옥의 원석을 발견하여 초나라 왕에게 바쳤는데, 왕이 신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임금을 기만하는 자라 하여 옥에 가두었을 뿐만 아니라 발을 베는 형에 처했다.

이사(李斯)는 전력을 기울려 지나라 시황제를 위해 활동하고 진나라를 부강하게 했으나 마지막에 2세 황제로부터 극형에 처해졌다. 정말 백두여신(白頭如新) 말대로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제하더라도 서로 이해하지 못함은 새로 사귄 벗과 같다.

양나라 왕은 이 글을 읽고 감동하여 그를 석방했을 뿐만 아니라, 상객으로 맞이해 후히 대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