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8일 토요일

관포지교ㅣ管鮑之交

관포지교ㅣ管鮑之交

관포지교ㅣ管鮑之交

○ 시대를 떠나 친구를 위하는 두터운 우정

○ 管(대롱 관) 鮑(절인 고기 포) 之(갈 지) 交(사귈 교)

옛날 중국(中國)의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처럼 친구(親舊) 사이가 다정(多情)함을 이르는 말로 ①친구(親舊) 사이의 매우 다정(多情)하고 허물없는 교제(交際) ②우정(友情)이 아주 돈독(敦篤)한 친구(親舊) 관계(關係), 허물없는 친구(親舊) 사이를 이르는 말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은 죽마고우로 둘도 없는 친구(親舊) 사이였다. 어려서부터 포숙아(鮑叔牙)는 관중(管仲)의 범상(凡常)치 않은 재능을 간파(看破)하고 있었으며, 관중(管仲)은 포숙아(鮑叔牙)를 이해(理解)하고 불평(不平) 한마디 없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벼슬길에 올랐으나, 본의 아니게 적이 되었다. 규의 아우 소백(小白)은 제(齊)나라의 새 군주(君主)가 되어 환공(桓公)이라 일컫고, 형 규(糾)를 죽이고 그 측근이었던 관중(管仲)도 죽이려 했다. 그때 포숙아(鮑叔牙)가 환공(桓公)에게 진언(盡言)했다. 「관중(管仲)의 재능은 신보다 몇 갑절 낫습니다. 제(齊)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滿足)하신다면 신으로도 충분합니다만 천하(天下)를 다스리고자 하신다면 관중(管仲)을 기용하셔야 하옵니다.」

환공(桓公)은 포숙아(鮑叔牙)의 진언(盡言)을 받아들여 관중(管仲)을 대부(大夫)로 중용하고 정사(政事)를 맡겼다. 재상(宰相)이 된 관중(管仲)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마음껏 수완을 발휘해 환공(桓公)으로 하여금 춘추(春秋)의 패자(覇者)로 군림하게 했다. 성공(成功)한 후 관중(管仲)은 포숙(鮑叔)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다음과 같이 회고(回顧)하고 있다. 「내가 젊고 가난했을 때 포숙(鮑叔)과 함께 장사를 하면서 언제나 그보다 더 많은 이득(利得)을 취했다.

그러나 포숙(鮑叔)은 나에게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몇 번씩 벼슬에 나갔으나 그때마다 쫓겨났다. 그래도 그는 나를 무능(無能)하다고 흉보지 않았다. 내게 아직 운이 안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싸움터에서 도망(逃亡)쳐 온 적도 있으나 그는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공자 규가 후계자 싸움에서 패하여 동료 소홀(召忽)은 싸움에서 죽고 나는 묶이는 치욕(恥辱)을 당했지만 그는 나를 염치(廉恥)없다고 비웃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 부끄러워하기 보다 공명을 천하(天下)에 알리지 못함을 부끄러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父母)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鮑叔牙)다.

동여탈토ㅣ動如脫兎

동여탈토ㅣ動如脫兎

동여탈토ㅣ動如脫兎

○ 덫에서 달아나는 토끼처럼 움직이다, 동작이 신속하다.

○ 動(움직일 동) 如(같을 여) 脫(벗을 탈) 兎(토끼 토)

토끼란 동물은 커다란 눈으로 껌벅이며 주위에 두려움을 많이 탄다. 토끼가 나오는 성어 중에서 여우와 같이 교활한 면이 있다고 한 狡兎三窟(교토삼굴)은 앞날을 대비한 지혜를 말한다, 나무에 부딪쳐 죽는 토끼를 어리석다고 한 守株待兎(수주대토)도 농부가 더 어리석다. 이러한 말보다 더 와 닿는 것이 재빠른 토끼다. 犬兎之爭(견토지쟁)에서 천하에서 제일 빠른 사냥개를 산기슭을 세 바퀴나 돌고 산꼭대기를 다섯 번이나 오르내리며 대등하게 달렸다. 결국 둘 다 농부에 잡히는 신세가 되지만 달리기엔 이름을 남겼다.

토끼의 이런 속성을 春秋戰國(춘추전국) 시대의 전략가 孫武(손무)가 병사들의 임전태세에 대해 말하면서 인용했다. 중국 고대의 여러 병법서 중에서도 가장 걸출하다고 평가되는 ‘孫子兵法(손자병법)’의 제11 九地篇(구지편)에서다. 지형지세에 따른 아홉 가지 공격과 방어 전술을 기록하고 있는 장이다. 전장에 나가서는 속임수도 사양하지 않는 계책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대로 여기서도 교묘하게 작전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했다. 원정에 나섰을 때 관문을 봉쇄하고 적진 깊숙이 잠입했다가 결전의 날을 기다린다. 이럴 때 움직이는 것을 마치(動如) 토끼처럼 재빨리 하라(脫兎)고 표현했다.

비유하면서 처녀도 등장하는 부분을 보자. ‘처음에는 마치 처녀처럼 조용히 행동하지만, 적군들이 문을 열면 토끼가 덫에서 벗어나듯 공격하여 상대가 항거할 수 없게 만든다(始如處女 敵人開戶 後如脫兎 敵不及拒/ 시여처녀 적인개호 후여탈토 적불급거).’ 처음에는 처녀처럼 준비태세를 갖추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다가 적이 틈을 보이면 도망치는 토끼처럼 신속하게 덮쳐야 승리한다. 여기서도 기만술과 속도전이 그대로 드러난다. 같은 말로 處女脫兎(처녀탈토), 脫兎之勢(탈토지세)가 있고 靜如處女(정여처녀)는 물론 반대의 뜻이다.

배중사영ㅣ杯中蛇影

배중사영ㅣ杯中蛇影

배중사영ㅣ杯中蛇影

○ 술잔 속에 비친 뱀의 그림

○ 杯(술잔 배) 中(가운데 중) 蛇(뱀 사) 影(그림자 영)

술잔 속에 비친 뱀의 그림자, 쓸데없는 의심을 품고 스스로 고민함의 비유

진(晉:265∼316) 나라에 악광(樂廣)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집이 가난하여 독학을 했지만 영리하고 신중해서 늘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자랐다. 훗날 수재(秀才)로 천거되어 벼슬길에 나아가서도 역시 매사에 신중했다. 악광이 하남 태수(河南太守)로 있을 때의 일이다. 자주 놀러 오던 친구가 웬일인지 발을 딱 끊고 찾아오지 않았다. 악광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찾아가 물어 보았다. "아니, 자네 웬일인가? 요샌 통 얼굴도 안 비치니……."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저번에 우리가 술을 마실 때 얘길세. 그때 술을 막 마시려는데 잔 속에 뱀이 보이는 게 아니겠나. 기분이 언짢았지만 그냥 마셨지. 그런데 그 후로 몸이 좋지 않다네. "악광은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번 술자리는 관가(官家)의 자기 방이었고, 그 방 벽에는 활이 걸려 있었지? 그렇다. 그 활에는 옻칠로 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안광은 그 친구를 다시 초대해서 저번에 앉았던 그 자리에 앉히고 술잔에 술을 따랐다. "어떤가? 뭐가 보이나?" "응, 전번과 마찬가지네." "그건 저 활에 그려져 있는 뱀 그림자일세. "그 친구는 그제서야 깨닫고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임연선어ㅣ臨淵羨魚

임연선어ㅣ臨淵羨魚

임연선어ㅣ臨淵羨魚

○ 연못 가까이서 고기를 부러워하다

○ 臨(임할 임) 淵(못 연) 羨(부러워할 선) 魚(물고기 어)

물고기가 많이 뛰노는 연못가에서(臨淵) 하염없이 앉아 입맛을 다시며 부러워해도(羨魚) 헛물만 켠다. 조금 천천히 잡더라도 집에 돌아가서 그물을 짜는 것이 물고기를 더 빨리 잡는 길이다. 바라기만 하고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무엇이 이루어질까. 헛된 욕심을 부리는 것보다는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실천하는 것이 유익하다. 우리 속담을 인용하면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거나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등등이 들어맞는다.

아무리 좋은 조건이 마련되었거나 손쉬운 일이라도 힘을 들여 이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란 뜻이다. 부러워할 羨(선)은 군침을 흘린다는 본뜻이 있는데 羨望(선망)으로 많이 쓴다. 이 성어는 약간씩 다른 표현으로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중국 前漢(전한)의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저술한 책 ‘淮南子(회남자)’ 說林訓(설림훈)에는 ‘물의 근원을 막는 사람은 목이 마를 것이고, 근본을 등지는 사람은 몸이 마를 것이다.

강가에 서서 고기를 부러워하는 것보다는 집으로 돌아가 그물을 짜는 것만 못하다(塞其源者竭 背其本者枯.. 臨淵羨魚 不如歸家結網/ 색기원자갈 배기본자고.. 임연선어 불여귀가결망).’前漢(전한)의 유학자 董仲舒(동중서)가 武帝(무제)에게 올린 ‘賢良對策(현량대책)’에서는 똑같은 뜻으로 ‘옛사람의 말에 연못가에 앉아 물고기를 부러워하는 것은 물러나서 그물을 짜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古人有言曰 臨淵羨魚 不如退而結網/ 고인유언왈 임연선어 불여퇴이결망)’라고 했다.또 春秋時代(춘추시대) 老子(노자)의 제자 文子(문자)가 쓴 ‘문자’에서 ’강가에 앉아 물고기를 탐하는 것은 집으로 돌아가 그물을 짜는 것만 못하다(臨河而羨魚 不如歸家結網/ 임하이선어 불여귀가결망)‘라고 표현했다. 어느 것이나 목적을 이루려면 헛된 욕심을 버리고 그만한 노력의 과정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유월비상ㅣ六月飛霜

유월비상ㅣ六月飛霜

유월비상ㅣ六月飛霜

○ 유월에 내리는 서리, 여자의 깊은 원한

○ 六(여섯 육) 月(달 월) 飛(날 비) 霜(서리 상)

억울(抑鬱)한 일을 당(當)한 사람이 있으면 오뉴월(五六月)의 더운 날씨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다. 속담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것이 있다. 여자의 한이 얼마나 사무쳤는지 음력으로 5월이나 6월은 한여름인데 서리가 내린다고 했을까. 여자가 한 번 마음이 틀어져 미워하거나 원한을 품으면 그만큼 매섭고 독하다는 비유의 말이다. 一婦含怨 五月飛霜(일부함원 오월비상)이란 말대로 오뉴월인 만큼 5월, 6월은 함께 쓴다.

이 말이 유래한 고사는 여럿이지만 먼저 ‘漢書(한서)’의 于定國(우정국)전의 내용을 보자. 後漢(후한)의 우정국이란 사람은 송사를 처리하는 것이 공정하기로 이름났다. 東海(동해)군의 태수로 갔을 때 그 지역은 3년 동안 큰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정을 알아보니 한 효부가 자식도 없이 일찍 과부가 되었는데 개가도 않고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했다. 누를 끼치기 싫었던 시어머니가 자결하자 시누이가 무고하여 효부는 관아에서 고문을 받고 사형 당했다. 진상을 파악한 우정국이 소를 잡아서 효부의 무덤에 제사를 지내고 비석을 세우니 비로소 큰비가 내려 풍년이 들었다.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 사람이었던 鄒衍(추연)은 燕(연)나라 惠王(혜왕)에게 중용되어 벼슬하면서 충성을 바쳤다. 그럼에도 혜왕은 주변에서 참소하는 말만 듣고 그를 옥에 가두었다. 추연이 ‘하늘을 우러러 크게 통곡하자 여름인데 하늘에서 서리가 내렸다(仰天而哭 盛夏天爲之降霜/ 앙천이곡 성하천위지강상)’. 중국 아동용 교재 ‘蒙求(몽구)’의 鄒衍降霜(추연강상) 이야기다. 元(원)나라 희곡작가 關漢卿(관한경)의 ‘竇娥寃(두아원)’에선 두아가 누명을 쓰고 망나니에 의해 목이 잘릴 때 유월 한여름인데도 눈이 내려 자신을 덮어줄 것이라 말한 것이 그대로 실현됐다.

내가 사랑을 비처럼 해야 한다면 / 양광모

내가 사랑을 비처럼 해야 한다면 / 양광모

내가 사랑을 비처럼 해야 한다면 / 양광모

내가 사랑을 비처럼 해야 한다면

한여름 폭우 되어 너를 만나리

번쩍 번쩍 손길에 번개 이끌고

우르릉 우르릉 발길에 심장 울리며

그치지 않는 장마 되어 너를 찾으리

밤이고 낮이고 쉬임 없어서

잠깐은 멈췄으면 싶어도 질 때까지

사랑이란

가슴을 적시는 게 아니라

가슴이 잠겨버리는 것이다

사랑이란 또 한 가슴

잠겨버려야 하는 것이다

♨ 좋은 글 더보기 : iusan.com

기패기마ㅣ碁敗寄馬

기패기마ㅣ碁敗寄馬

기패기마ㅣ碁敗寄馬

○ 바둑에 져서 말을 맡기다.

○ 碁(바둑 기) 敗(패할 패) 寄(부칠 기) 馬(말 마)

바둑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실하게 전하는 문헌은 없어도 중국 고대부터 존재했다는 기록은 많다. 堯(요)임금이 아들 丹朱(단주)를, 舜(순)임금이 아들 商均(상균)을 가르치기 위해 바둑을 이용했다고 전한다. 바둑은 두는 것 못지않게 관전하는 재미도 넘쳐 신선들의 대국을 구경하던 나무꾼이 도낏자루 썩는 줄도 모르고 빠져 있다 정신 차려보니 아득히 세월이 지났더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

내기 바둑에 져서(碁敗) 말을 맡긴다(寄馬)는 이 성어는 조선시대 야담집 五百年奇譚(오백년기담)에 나온다고 하는데 한국고사성어(임종대 편저)에 잘 정리돼 있다. 바둑의 고수가 어떤 목적을 위해서 일부러 져준다는 이야기에서 아득한 고수의 작전이나 작전상 후퇴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장기에서 수가 차·포를 더한 것과 같이 높다는 手加車包(수가차포)란 말과 통한다. 이야기를 간추려본다.

",

세조의 아들 德源君(덕원군)은 잡기도 능해 바둑 두기를 좋아했다. 실력이 뛰어나서 주위에는 그를 상대할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한 군졸이 찾아 와서 한 수 가르쳐주십사하며 도전해 왔다. 덕원군이 허락하자 군졸이 한 수 더 뜬다. 그냥 두면 바둑이 재미가 없으니 내기를 하자고 하며 자기가 지면 끌고 온 말을 드리겠다고 한다. 덕원군이 맹랑하다고 생각하며 그러라고 했다. 시종 팽팽하던 대국의 결과, 덕원군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재미있게 시간 보냈으니 내기를 지킬 필요 없다고 해도 군졸은 약속대로 드리겠다고 하며 말을 두고 떠났다.

군졸이 번을 서고 석 달 뒤에 다시 덕원군을 찾아 와 이번에도 말을 걸고 바둑을 두자고 제의했다. 반갑게 마주 앉으며 바둑을 두던 덕원군은 초반부터 이전과 다른 군졸의 실력에 쩔쩔 매다가 패하고 말았다. 말을 되돌려주며 지난번에는 어찌하여 졌느냐고 물으니 말을 재우고 먹일 방법이 없어서 맡겨두기 위해 그랬다고 대답했다. 덕원군이 껄껄 웃으며 군졸의 기지와 기력에 감탄했다.

六不合육불합과 七不交칠불교

六不合육불합과 七不交칠불교

六不合(육불합)과 七不交(칠불교)

홍콩에 이가성(李嘉诚)이라는 부호가 있습니다. 순위는 의미 없지만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그리고 아시아에선 최고의 갑부입니다.

"홍콩에서 1달러를 쓰면 5센트는 이가성에게 돌아간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특히 홍콩 경제, 더 나아가 전 중화권 경제와 아시아 경제에까지 영향력이 가장 큰 사람입니다.

개인 재산이 약 30조 원인데 세탁소 점원으로 시작해서 엄청난 부를 이루었다는 게 첫 번째 배울 점이고, 지금도 5만 원 이하의 구두와 10만 원 이하의 양복을 입고 비행기는 꼭 이코노미를 타면서 검소하다는 게 두번째 배울 점이며, 그 절약한 돈으로 아시아에서 기부를 제일 많이 한다는 게 세번째 배울 점이지요.

그것도 회사 명의가 아닌 본인의 재산을 팔아서 한다는 점이며, 기부금 중엔 매년 장학금으로 3000억 원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분의 어록중 교우관계에 관한 유명한 말이 있는데 "六不合七不交(육불합, 칠불교)" 가 그것입니다. 여섯 종류의 사람과 동업하지 말고, 일곱 종류의 사람과 사귀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 칠불교(七不交)

1. 불효하는 놈과 사귀지 마라

2. 사람에게 각박하게 구는 사람과는 사귀지 마라.

3. 시시콜콜 따지는 사람과는 사귀지 마라

4.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사람과는 사귀지 마라·

5. 아부를 잘하는 사람과는 사귀지 마라

6. 권력자 앞에 원칙없이 구는 자 사귀지 마라.

7. 동정심이 없는 사람과 사귀지 마라.

○ 육불합(六不合)

1. 개인적 욕심이 너무 강한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2. 사명감이 없는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3. 인간미가 없는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4. 부정적인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5. 인생의 원칙이 없는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6.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이가성 회장과 운전기사의 일화가 있습니다.

홍콩 이가성 회장의 운전기사는 30여년간 그의 차를 몰다가 마침내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이가성 회장은 운전기사의 노고를 위로하고, 노년을 편히 보내게 하기 위해 200만 위엔 (3억 6천만원)의 수표를 건냈습니다.

그랬더니, 운전기사는 필요없다 사양하며, 저도 이천만 위엔(36억 원) 정도의 돈을 모아 놓았습니다. 하더랍니다.

이가성 회장은 기이하게 여겨 물었습니다. "월급이 5~6천 위엔 (100만원) 밖에 안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거액의 돈을 저축해 놓았지?"

운전사는 "제가 차를 몰 때 회장님이 뒷자리에서 전화하는 것을 듣고 땅을 사실 때마다 저도 조금씩 사 놓았고요. 주식을 살 때, 저도 따라서 약간씩 구입해 놓아 지금 자산이 이천만 위엔(36억) 이상에 이르고 있어요!"

우리네 인생에 누구를 만났느냐는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파리의 뒤를 쫒으면 변소주위만 돌아다닐 것이고. 꿀벌의 뒤를 쫒으면 꽃밭을 함께 노닐게 될 것이다."

"물은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서 모양이 달라 지지만 사람은 어떤 사람을 사귀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내 서재에는 책이 있다‘ 중-

군맹무상ㅣ群盲撫象

군맹무상ㅣ群盲撫象

군맹무상ㅣ群盲撫象

○ 여러 맹인이 코끼리를 만지다, 식견이 좁다.

○ 群(무리 군) 盲(소경 맹) 撫(어루만질 무) 象(코끼리 상)

여러 맹인(盲人)이 코끼리를 더듬는다는 뜻으로,즉 자기(自己)의 좁은 소견(所見)과 주관(主觀)으로 사물(事物)을 그릇 판단(判斷)함. 범인(凡人)은 모든 사물을 자기 주관대로 판단하거나 그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보통 사람들의 좁은 식견을 비웃는 말은 우물 속 개구리 井底之蛙(정저지와)나 대롱으로 하늘을 본다는 管中窺天(관중규천) 등 숱하다. 표주박으로 바닷물을 재는 管窺蠡測(관규려측). 여러 맹인(群盲)이 모여 큰 코끼리를 어루만져보게 한다(撫象)는 이 성어도 모든 사물을 자기 주관대로 그릇 판단하거나 일부밖에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유로 자주 쓰인다.

불교 경전 ‘涅槃經(열반경, 涅은 열반 녈, 槃은 쟁반 반)’의 獅子吼菩薩品(사자후보살품)에 수록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옛날 인도의 어떤 왕이 신하들에게 진리를 말하다가 대신에게 코끼리를 한 마리 몰고 오도록 했다. 그러고는 맹인 여러 명을 불러 코끼리를 만져보게 하고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장님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이었고 서로 자기가 만져본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상아를 만진 사람은 무와 같다고 했고, 귀를 만진 이는 키(箕)처럼 생겼다고 했다. 머리를 만진 사람은 돌, 코를 만진 사람은 절굿공이, 등을 만진 이는 평상같이 생겼다고 했다. 또 배를 만졌던 장님은 장독, 꼬리를 만진 이는 새끼줄처럼 생겼다고 대답했다.

맹인들을 물러가게 한 뒤 신하들에게 말했다. ‘코끼리는 하나인데 저 장님들은 제각기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이 옳다고 여기고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구나. 진리를 아는 것 또한 이러하다.’ ‘群盲評象(군맹평상)’, ‘群盲象評(군맹상평)’이라고도 한다.

백룡어복ㅣ白龍魚服

백룡어복ㅣ白龍魚服

백룡어복ㅣ白龍魚服

○ 흰 용이 물고기의 옷을 입는다

○ 白(흰 백) 龍(용 룡) 魚(물고기 어) 服(입을 복)

흰 용이 물고기의 옷을 입는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서민의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고 미행하는 것을 비유한다.

오나라 왕이 백성들을 따라 술을 마시려고 했다. 이때 오자서(伍子胥)가 간언하여 말했다. “마셔서는 안 됩니다. 옛날에 흰 용이 차가운 연못으로 내려와 물고기로 변한 일이 있습니다. 어부 예저는 그 눈을 쏘아 맞추었습니다. 흰 용은 하늘 위로 올라가 하느님에게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이에 하느님은,‘그 당시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흰 용은 대답하기를,‘저는 차가운 연못으로 내려가 물고기로 변해 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이 말하기를,‘물고기는 진실로 사람들이 쏘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다면 예저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라고 했습니다. 무릇 흰 용은 하느님의 귀한 가축이고, 예저는 송나라의 미천한 신하입니다. 흰 용이 모습을 바꾸지 않았다면 예저 또한 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만승(萬乘)의 지위를 버리고 포의(布衣)의 선비들을 따라 술을 마시려고 하십니까? 신은 예저의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왕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또한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장자(莊子) “잡편(雜篇)”‘외물(外物)’에도 있다.

송나라의 원군(元君)이 밤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한 남자가 쪽문으로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재로(宰路)의 못에서 왔습니다. 청강(淸江)의 사자로 하백(河伯)에게 가다가 어부 예저에게 사로잡혔습니다.”

원군이 꿈에서 깨어나 사람을 시켜 이 꿈을 점치게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건 신귀(神龜)입니다.” 그래서 원군이 어부 중에 예저라는 자가 있는지 물으니 과연 있었다.

원군은 예저를 조정으로 불러들여 물었다. “무슨 고기를 잡았느냐? ” “흰 거북이가 제 그물에 걸렸습니다. 크기가 사방 다섯 자나 됩니다.” 원군이 그 거북을 바치라고 했다. 어부로부터 받은 거북을 죽여야 할지 살려 주어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점을 쳐 보니 거북을 죽여 점을 치면 길하다고 했다.

그리하여 거북을 가르고 귀갑(龜甲)을 지져 일흔두 번이나 점을 치니 길흉이 모두 들어맞았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신귀는 원군의 꿈에 나타날 수 있었지만, 예저의 그물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의 지력은 일흔두 번의 점에 어긋남이 없을 정도였지만 창자가 도려내지는 재앙을 피할 수는 없었다.” 고대 우리 나라 임금들도 화려한 곤룡포 대신 평민들의 옷으로 갈아입고 미행을 했었다.

임금의 미행 목적은 무엇보다도 민심을 살펴 정사에 반영하려는 것이었다. 신하들이 보고하는 것만으로써는 백성들이 어떠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