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2일 수요일

성동격서ㅣ聲東擊西

성동격서ㅣ聲東擊西

성동격서ㅣ聲東擊西

○ 동쪽을 칠 듯이 말하고 실제로는 서쪽을 친다

○ 聲(소리낼 성) 東(동녘 동) 擊(칠 격) 西(서녘 서)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뜻으로,동쪽을 치는 듯이 하면서 실제(實際)로는 서쪽을 치는 병법(兵法)의 하나. 상대(相對)를 기만(欺瞞)하여 공격(攻擊)함의 비유.

초(楚)나라와 한(漢)나라가 서로 다투던 시기, 위왕(魏王) 표(豹)의 투항으로 한나라 유방(劉邦)은 항우(項羽)와 위왕 표의 협공을 당하는 국면이 되어 매우 위험한 형세에 처하였습니다. 그는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한신(韓信)을 보내어 정벌에 나섰습니다.

이에 위왕 표는 백직(柏直)을 대장으로 임명하여, 황하의 동쪽 포판(蒲坂)에 진을 치고, 한나라 군대의 도하(渡河)를 저지하였습니다. 한신은 포판의 공격이 어렵다고 판단하였으나, 사병들로 하여금 낮에는 큰 소리로 훈련하게 하고 밤에는 불을 밝혀 강공의 의사를 나타내도록 하였습니다.

백직은 한나라 군대의 동태를 살펴보고 그들의 어리석은 작전을 비웃었습니다. 한편으로 한신은 비밀리에 군대를 이끌고 하양에 도착하여, 강을 건널 뗏목을 만들었습니다. 뗏목으로 황하를 건넌 한나라 군사들은 신속하게 진군하여 위왕 표의 후방 요지인 안읍(安邑)을 점령하고, 그를 사로 잡았습니다.

꽃이 피기까지

꽃이 피기까지

꽃이 피기까지

사랑은 그냥 오지 않는다

반드시 장애물을 가지고 온다

행복도 그냥 오지 않는다

반드시 훼방꾼들을 거느리고 온다

꽃이 그냥 피는 줄 아는가

한 잎 꽃송이를 피워내기 위해선

온몸으로 뜨거운 볕을 받아낸

저 잎새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음을

꽃샘추위를 무사히 겪어내고서야

따스한 봄볕 또한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랑은 그냥 오지 않는다

행복도 그냥 오지 않는다

저 무수한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저 무수한 훼방꾼들을 몰아내어야

비로소 우리 손에 거머쥘 수 있는 것

"

-이정하 著 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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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불아연ㅣ歲不我延

세불아연ㅣ歲不我延

세불아연ㅣ歲不我延

○ 세월은 날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다

○ 歲(해 세) 不(아닐 불) 我(나 아) 延(늘일 연)

배움과 공부의 시간은 많고 긴 것 같아도 금세 사라질 만큼 짧고 적다. 어제가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섬돌 앞 오동나무에는 벌써 가을 소리가 깊다. 주희(朱熹·1130~1200)의 권학시 ‘우성(偶成)’을 읽어본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못가에 돋은 풀이 봄꿈에서 깨기도 전에/섬돌 앞 오동나무 잎 벌써 가을 소리로구나.”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

옛날 학생들이 암송했던 시이다. 제목은 우연히 지었다는 뜻이지만 짧은 네 구절에 주희의 평생 공부가 들어 있다. 1900년대 초 우리나라에 등장한 ‘학도가’는 가사가 제각각이다. 그중 작사자, 작곡자가 미상인 노래에도 ‘소년은 이노하고 학난성이니 일촌의 광음인들 불가경이라’ 하는 대목이 나온다.

주희의 권학문(勸學文)도 세월이 빠르다고 알려준다.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금년에 배우지 않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세월은 흐르고 나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아, 늙으면 이 누구를 탓할 것인가?”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日月逝矣 歲不我延 嗚呼老矣 是誰之愆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이런 말이 있다. “증자가 말했다.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것은 어버이요, 왔다 해도 더 보탤 수 없는 것은 세월이로다.’”曾子曰 往而不可還者 親也 至而不可加者 也 이 글은 ‘그러니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취지이지만 효도든 공부든 세월은 언제나 짧다.

선즉제인ㅣ先則制人

선즉제인ㅣ先則制人

선즉제인ㅣ先則制人

○ 앞서 일을 도모하면 능히 남을 누를 수 있다

○ 先(먼저 선) 則(곧 즉) 制(억제할 제) 人(사람 인)

남보다 앞서 일을 도모(圖謀)하면 능히 남을 누를 수 있다는 뜻으로,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남보다 앞서 하면 유리(有利)함을 이르는 말이다.

진(秦)나라 2세 황제 원년(元年:B.C. 209)의 일이다. 진시황(秦始皇) 이래 계속되는 폭정에 항거하여 대택향大澤鄕:안휘성 기현(安徽省 縣)에서 900여 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궐기한 날품팔이꾼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은 단숨에 기현을 석권하고 진秦:하남성 회양(河南省淮陽)에 입성했다.

이어 이곳에 장초(張楚)라는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오른 진승은 옛 6개국의 귀족들과 그 밖의 반진(反秦) 세력을 규합하여 진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을 향해 진격했다.이에 자극을 받은 강동(江東)의 회계군수(會稽君守) 은통(殷通)은 군도(郡都) 오중吳中:강소성 오현(江蘇省吳縣)의 유력자인 항량(項梁)을 불러 거병을 의논했다

항량은 진나라 군사에게 패사(敗死)한 옛 초(楚)나라 명장이었던 항연(項燕)의 아들인데, 고향에서 살인을 하고 조카인 적籍:항우(項羽)의 이름과 함께 오중으로 도망온 뒤 타고난 통솔력을 십분 발휘하여 곧 오중의 실력자가 된 젊은이다."지금 강서(江西:안휘성 하남성) 지방에서는 모두들 진나라에 반기를 들었는데, 이는 하늘이 진나라를 멸망코자 하는 시운(時運)이 되었기 때문이오, 내가 듣건대 \선손을 쓰면 남을 제압할 수 있고先則制人\ 뒤지면 남에게 제압당한다고後則人制 했소. 그래서 나는 그대와 환초를 장군으로 삼아 군사를 일으킬까 하오."

은통은 오중의 실력자일 뿐 아니라 병법에도 조예가 깊은 항량을 이용, 출세의 실마리를 잡아볼 속셈이었으나 항량은 그보다 한 수 위였다."거병하려면 우선 환초부터 찾아야 하는데, 그의 행방을 알고 있는 자는 오직 제 조카인 적뿐입니다. 그러니 지금 밖에 와 있는 그에게 환초를 불러오라고 하명하시지요.""그럽시다. 그럼, 그를 들라 하시오."항량은 뜰 아래에 대기하고 있는 항우에게 다가가 귀엣말로 이렇게 일렀다."

내가 눈짓을 하거든 지체 없이 은통의 목을 치도록 하라."항우를 데리고 방에 들어온 항량은 항우가 은통에게 인사를 마치고 자기를 쳐다보는 순간 눈짓을 했다. 항우는 칼을 빼자마자 비호같이 달려들어 은통의 목을 쳤다. 항량과 항우가 은통에 앞서 \선즉제인\을 몸소 실행한 것이다.

항량은 곧바로 관아를 점거한 뒤 스스로 회계 군수가 되어 8000여 군사를 이끌고 함양으로 진격하던 중 전사하고 말앆다. 뒤이어 회계군의 총수가 된 항우는 훗날 한왕조(漢王朝)를 이룩한 유방(劉邦)과 더불어 진니라를 멸망시켰다(B.C. 206). 그러나 그후 유방과 5년간에 걸쳐 천하의 패권을 다투다가 패하여 자결하고 말았다.

묘항현령ㅣ猫項懸鈴

묘항현령ㅣ猫項懸鈴

묘항현령ㅣ猫項懸鈴

○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실행하지 못할 공론

○ 猫(고양이 묘) 項(항목 항) 懸(달 현) 鈴(방울 령)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뜻으로,실행(實行)하지 못할 일을 공연(公然)히 의논(議論)만 한다는 말이다.

쥐들은 사람들은 문제없이 눈을 피하며 먹을 것을 조달할 수 있는데 고양이는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오그라든다. 쥐들은 어느 날 모두 모여 대책회의를 했다. ‘곳집을 뚫고 쌀광 속에 들어가 살면 기름지게 살 수 있을 텐데 단지 고양이 때문에 두렵다’며 이래서야 되겠는가 하고 울분을 토했다.

한 마리 쥐가 나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면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하자 모두 좋은 의견이라며 박수를 쳤다. 어른 쥐가 점잖게 말했다. ‘옳은 이야기이나 누가 우리를 위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느냐?’ 모든 쥐들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조선 중기 宋世琳(송세림)이 편찬한 한문 소화집 ‘禦眠楯(어면순)’에 실린 이야기다. ‘잠을 쫓는 방패’라는 뜻으로 육담도 많이 있어 古今笑叢(고금소총)을 이루는 책이기도 하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란 속담을 번역하여 旬五志(순오지)와 松南雜識(송남잡지) 등에도 나온다. 猫頭懸鈴(묘두현령)이라고도 한다.

성하지맹ㅣ城下之盟

성하지맹ㅣ城下之盟

성하지맹ㅣ城下之盟

○ 성 밑에서 강화의 맹약을 체결한다

○ 城(성 성) 下(아래 하) 之(어조사 지) 盟(맹서할 맹)

성 밑에서 강화의 맹약을 체결한다는 뜻으로 대단히 굴욕적인 항복이나 강화를 의미한다. 수도(首都)의 성 밑까지 적군(敵軍)의 공격(攻擊)을 받아 할 수 없이 강화(講和)를 맹세(盟誓)하고 굳게 약속(約束)한다는 뜻으로,대단히 굴욕적(屈辱的)인 강화(講和)나 항복(降伏)을 이르는 말

초(楚)나라가 교(絞)를 침략하여 성 남문에 진을 치고 있을 때 막오라는 벼슬에 있던 굴하라는 자가 한가지 계책을 내놓았다. "교의 사람들은 매우 경솔하고 성격이 편협하므로 땔나무를 하는 인부를 내보내어 이것을 미끼로 그들을 유인하여 공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계략에 따라 30명의 나무꾼을 산속으로 내보내자 교의 군사들이 그들을 추격하여 모두 잡아갔다. 다음날은 더 많은 수의 인원을 산으로 내보냈는데 교의 사람들은 성문을 열고 앞을 다투어 산속의 인부들을 뒤쫓기에 바빴다. 이 틈에 산아래 매복하고 있던 초(楚)의 군사들이 북문을 점령하여 교의 군사들을 패배시켰으므로 초는 성문 아래에서 맹약을 체결하고(城下之盟) 돌아갔다

비육지탄ㅣ脾肉之嘆

비육지탄ㅣ脾肉之嘆

비육지탄ㅣ脾肉之嘆

○ 안일하게 있어 공명을 이룰 수 없음

○ 脾(넓적다리 비) 肉(고기 육) 之(갈 지) 嘆(탄식할 탄)

유비는 한나라 황족으로서 황건적을 토벌하기 위한 의용군에 가담한 것을 첫 출발로 하여, 차츰 세력을 얻어 마침내는 한나라 정통을 계승한 것으로 자처하는 촉한의 첫 황제가 되었었다. 그는 한때 조조와 협력하여 여포를 하비에서 깨뜨리고 임시 수도였던 허창으로 올라와 조조의 주선으로 헌제를 배알하고 좌장군에 임명된다. 그러나 조조 밑에 있는 것이 싫어 허창을 탈출하여 같은 황족인 형주의 유표에게 몸을 의지하게 된다.

그리하여 신야라는 작은 성을 얻어 사 년 동안을 그곳에서 보내게 되는데, 이 사이 북쪽에서는 조조와 원소가 맞붙어 불 튀기는 싸움을 되풀이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비가 있는 남쪽지방은 소강상태에 놓여 있었다. 어느 날 유비는 유표의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다. 술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변소를 가게 된 그는 우연히 전에 느끼지 못했던 넓적다리의 살이 유난히 뒤룩뒤룩한 것을 보게 되었다. 순간 그는 슬픈 생각이 치밀어 눈물이 주르르 쏟아졌다.

자리로 돌아온 그는 눈물 자국을 완전히 감출 숭 없어 유표의 캐물음을 당하게 되었다. 유비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언제나 몸이 말 안장을 떠날 겨를이 없어 넓적다리 살이 붙은 일이 없었는데, 요즘은 말을 타는 일이 없어 넓적다리 안쪽에 살이 다시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세월은 달려가 머지 않아 늙음이 닥쳐올 텐데 공도 일도 이룬 것이 없어 그래서 슬퍼했던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연미지급ㅣ燃眉之急

연미지급ㅣ燃眉之急

연미지급ㅣ燃眉之急

○ 눈썹에 불붙은 듯이 위급하다.

○ 燃(탈 연) 眉(눈썹 미) 之(갈 지) 急(급할 급)

‘눈썹에 불이 붙는다’는 표현이 있다. 예기치 않은 큰 걱정거리가 닥쳐 매우 위급하게 된 것을 이른다. 눈과 가장 가까운 눈썹까지 위험을 느끼게 되면 막다른 곳에 몰린 것으로 이에 비유한 성어가 많다. 禪(선)의 대의를 밝힌 입문서라 하는 五燈會元(오등회원)에서는 불이 눈썹을 태우는 것이 가장 화급하다며 火燒眉毛(화소미모)라 했다. 눈썹에 불이 붙은(燃眉) 듯이 위급하다(之急)는 이 성어도 여기에서 나와 燒眉之急(소미지급)이나 焦眉之急(초미지급) 등의 비슷한 말이 더 만들어졌다. 落眉之厄(낙미지액)이나 焦眉之厄(초미지액)에도 눈썹이 들어간다.

중국 삼국시대의 吳(오)나라에 張昭(장소)라는 모사가 있었다. 그는 赤壁大戰(적벽대전)에서 魏(위)의 대군을 물리치게 되는 周瑜(주유)의 추천으로 오왕 孫策(손책)의 막하에 들어간 이후 문무의 모든 일을 처결할 정도로 신임을 얻었다. 손책이 유명을 달리 하면서 장소에게 동생 孫權(손권)을 보좌하도록 특명을 내렸다. 장소는 성품이 강직하여 자주 직간을 했는데 손권은 張公(장공)이라 높여 부르면서도 무척 어려워했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장소의 불같은 성격을 나타내는 대목이 나온다. 위나라의 曹操(조조)가 승상이 되어 천자를 끼고 전횡을 일삼자 각 지역의 세력들은 반항하기 시작했다. 蜀(촉)의 劉備(유비)와 오왕 손권도 조조의 대군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에 오나라와 연합하기 위해 원병을 청하러 온 諸葛亮(제갈량)에게 장소가 논쟁을 벌인다.

자신을 戰國時代(전국시대)의 명신 管仲(관중)이나 樂毅(악의)와 비교한다고 들었는데 유비의 휘하에 들어간 지 오래인데도 계속 땅을 내주고 달아난다고 비난하며 말한다. ‘이는 마치 눈썹에 불이 붙은 꼴로서 어찌 관중과 악의의 만분의 일이나 되겠소(有燃眉之急 豈有管樂萬分之一耶/ 유연미지급 기유관악만분지일야)?’

장소는 제갈량과 같은 徐州(서주) 출신으로 흥미를 위해서 설정한 허구라고 한다. 실제로는 이렇게 험담을 하지 않고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고 정사에는 나온다. 이들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위험한 일을 눈썹까지 불이 붙을 때라야 알게 되는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

비방지목ㅣ誹謗之木

비방지목ㅣ誹謗之木

비방지목ㅣ誹謗之木

○ 헐뜯는 나무, 소원을 고하는 나무기둥

○ 誹(헐뜯을 비) 謗(헐뜯을 방) 之(어조사 지) 木(나무 목)

헐뜯는 나무라는 뜻으로,백성(百姓)이 임금에게 고통(苦痛)을 호소(呼訴)하고 소원(所願)을 고하는 나무기둥을 말한다.

고대 요(堯)임금은 백성들을 자식처럼 여기고 어진 정치를 실행하여 태평성대를 구가한 천자이다. 그는 부유하였으나 교만하지 않았고, 존귀했으나 거드름을 피거나 오만하지 않았으며, 황색 모자를 쓰고 검은색 옷을 입고서 흰 말이 끄는 붉은 마치를 탔다.

그는 큰 덕을 밝혀 구족(九族;같은 종족 9대의 사람들을 말함)들이 화목하게 지내도록 하였으며, 백관들을 공명정대하게 다스렸기 때문에 오든 제후국이 화합했다.

요 임금이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했음은 만년에 자신을 대신하여 정사를 계승할 수 있는 사람을 물색하던 일에서 엿볼 수 있다. 이때 방제(放齊)라는 신하가 요임금의 아들 단주(丹州)가 총명하다며 추천했지만, 덕이 없고 싸움을 좋아하여 쓸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사악(四嶽)이 순(舜)을 추천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장님의 아들입니다. 아비는 도덕이란 전혀 모르는 자이고, 어미는 남을 잘 헐뜯는 자이며, 동생은 교만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효성을 다하여 가정을 화목하게 했으며, 가족들이 나쁜 일을 하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임금은 자신의 두 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그에게 시집 보내어 딸들에게 대하는 그의 덕행을 관찰하였다.

순은 요의 두 딸을 신분을 낮추어 자기가 살고 있는 곳으로 맞이하여 부인의 예절을 지키게 하였다. 요는 순의 이러한 행동이 마음에 들어, 먼저 그에게 백성들에게 오전(五典;다섯 가지 도덕 윤리로, 아비는 위엄이 있고, 어미는 자애로우며, 형은 우애롭고, 동생을 공경하며, 자식은 효성스러워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도록 하자 널리 시행되었고, 다시 백관의 일을 총괄하도록 하자 그 일이 모두 질서 있게 행해졌다.

또 순 에게 사문(四門)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일을 맡기니 그곳에서 일을 보는 사람들이 빈객에게 정중하게 대하였고, 깊은 산림과 하천, 연못에 관한 일을 맡기자 폭풍과 우레 속에서도 일을 그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요는 순을 성인으로 보고 천자의 자리를 그에게 주었다. 사실 요임금은 일찍이 자신이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행여라도 잘못이 있을까 항상 걱정하고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궁리 끝에 궁궐 문 앞에 아주 큰 북을 하나 달아‘감간의 북(敢諫之북)’이라고 했다. 그것은 감히 간언하는 북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여 요 임금이 정치를 하면서 범하는 잘못을 발견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그 북을 쳐서 말하도록 했다. 그리고 또 궁궐 다리에는 나무 네 개를 엮어 기둥을 세워‘비방지목(誹謗之木)’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은 헐뜯는 나무라는 뜻이다. 요임금의 정치에 불만이 있는 자가 그 나무 기둥에 불평을 적어 알리는 것이다.

사기(史記) 효문기(孝文紀)”에서는 요임금이 ‘감간의 북’대신‘진선의 기(進善之기)’와비방지목을 세웠다고 하고, <회남자(淮南子)>“주술훈(主術訓)”에서는 ‘감간의 북’은 요 임금이 만든 것이지만,‘비방지목’은 순(舜)임금이 세운 것이라고 했다. ‘비방지목’이란 요 임금이 백성들의 마음을 파악해서 올바른 정치를 하려고 한 데서 비롯된다.

삼일천하ㅣ三日天下

삼일천하ㅣ三日天下

삼일천하ㅣ三日天下

○ 사흘 간의 천하, 권세의 허무

○ 三(석 삼) 日(날 일) 天(하늘 천) 下(아래 하)

사흘 간의 천하(天下)라는 뜻으로, ①권세(權勢)의 허무(虛無)를 일컫는 말. 극(極)히 짧은 동안 정권(政權)을 잡았다가 실권(失權)함의 비유(比喩ㆍ譬喩). ②발탁(拔擢)되어 어떤 지위(地位)에 기용(起用)되었다가 며칠 못 가서 떨어지는 일의 비유(比喩ㆍ譬喩). ③갑신정변(甲申政變)이 3일 만에 실패(失敗)했으므로 이를 달리 일컫는 말.

조선(朝鮮) 인조 때, 이괄이 평안병사로 있다가 영변에서 군을 일으켜 조정(朝廷)에 모반(謀反)하고 서울을 함락한 다음 선조의 왕자(王子) 홍안군으로 왕위(王位)에 올라 그 경축으로 과거까지 보았음. 그러나 이괄의 군사(軍士)가 정충신에게 패함으로써 사흘만에 잡혀 대역부도라는 죄명으로 죽으니, 그 때 사람들이 그 사흘 동안 정권 잡았던 것을 조롱하여 이르게 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