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8일 화요일

나이가 들수록 꼭 필요한 사람

나이가 들수록 꼭 필요한 사람

나이가 들수록 꼭 필요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좋은 친구가 더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만나기 전부터 벌써 가슴이 뛰고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그런 사람보다는...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편안하게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 더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길을 걸을 때,

옷깃 스칠 것이 염려되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어야하는

그런 사람보다는...

어깨에 손 하나 아무렇지 않게 걸치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더 간절해질 때가 있습니다.

너무 커서,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서

자신을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보다는...

자신과 비록 어울리지는 않지만

부드러운 미소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더 절실해질 때가 있습니다.

말 할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지고,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아도 상처받으며 아파 할까봐

차라리 혼자 삼키고 말없이 웃음만을 건네주어야 하는

그런 사람보다는...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더 절실해질 때가 있습니다

괴로울 때 찻잔을 앞에 놓고 마주할 수 있는사람..

밤새껏 투정을 해도 다음날 웃으며

편하게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더 의미 있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비위 맞추며 사는 게 버거워

내 속내를 맘 편히 털어놓고 받아 주는

친구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램 탓이겠지요

\xa0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옮긴글-

속 터진 만두

속 터진 만두

속 터진 만두

60년대 겨울 인왕산 자락엔 세칸 초가들이 다닥다닥 붙어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목숨을 이어간다. 이 빈촌 어귀 길갓집 툇마루 앞에 찜솥을 걸어 놓고 만두를 쪄서 파는\xa0조그만 가게가 있다. 쪄낸 만두는 솥뚜껑위에 얹어 둔다.\xa0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피를 빚고 손님에게 만두를 파는 일을 혼자서 다 하는 만두가게 주인은 순덕 아지매다. 입동이 지나자 날씨가 제법 싸늘해 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어린 남매가 보따리를 들고 만두가게 앞을 지나다 추위에 곱은 손을 솥뚜껑에 붙여 녹이고 가곤 한다.\xa0

어느날 순덕 아지매가 부엌에서 만두소와 피를 장만해 나갔더니 어린 남매는 떠나고 얼핏 기억에 솥뚜껑 위에 만두 하나가 없어진 것 같아 남매가 가는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꼬부랑 골목길을 오르는데 아이들 울음소리가 났다.\xa0

그 남매였다. 흐느끼며 울던 누나가 목이 멘 소리로 말했다. "나는 도둑놈 동생을 둔적 없다.이제부터 나를 누나라고 부르지도 말아라". 예닐곱 살쯤 되는 남동생이 답했다. "누나야 내가 잘못 했다. 다시는 안 그럴게".담 옆에 몸을 숨긴 순덕 아지매가 남매를 달랠까\xa0 하다가 더 무안해 할 것 같아 가게로 내려와 버렸다.\xa0

이튿날도 보따리를 든 남매가 골목을 내려와#만두가게 앞에서 걸음을멈추더니 누나가 동전 한닢을 툇마루에 놓으며 중얼거렸다."어제 아주머니가 안계셔서 외상으로 만두 한 개를 가지고 갔구먼요. 죄송합니다". 어느날 저녁 나절 보따리를 들고 올라가던 남매가 손을 안 녹이고 지나치길래 순덕 아지매가 남매를 불렀다.\xa0

"얘들아 속이 터진 만두는 팔 수가 없으니 우리 셋이서 먹자꾸나". 누나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맙습니다만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을래요" 하고는, 남동생 손을 끌고 올라 가더니 "얻어 먹는 버릇들면 진짜 거지가 되는거야" 한다. 어린 동생을 달래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찬바람에 실려 내려와 순덕 아지매 귀에 닿았다.

어느날 보따리를 들고 내려가 남매에게 물었다."그 보따리는 무엇이며어디 가는 거냐?" 누나 되는 여자 아이는 땅만 보고 걸으며 "할머니 심부름가는 거예요". 메마른 대답 한마디 뿐이다. 궁금해진 순덕 아지매는 이리저리 물어봐서 그 남매의 집사정을 알아냈다. 얼마 전에 서촌에서 거의 앉은뱅이에 가까운 할머니와 어린 남매 세 식구가 이리로 이사와 궁핍속에 산다는 것이다.\xa0

그래도 할머니 바느질 솜씨가 워낙 좋아 종로통 포목 점에서 바느질 꺼리를 맡기면 어린 남매가 타박타박 걸어서 자하문을 지나 종로 통까지 바느질 보따리를 들고 오간다는 것이다. 남매의 아버지가 죽고 나서 바로 이듬해 어머니도 유복자인 동생을 낳다가 이승을 하직했다는 것이다.\xa0

응달진 인왕산 자락 빈촌에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남동생이 만두 하나를 훔친 이후로 남매는 여전히 만두가게 앞을 오가지만 솥뚜껑에 손을 녹이기는 고사하고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고 지나간다."너희 엄마 이름이 봉임이지, 신봉임 맞지?" 어느날 순덕 아지매가 가게앞을 지나가는\xa0

남매에게 묻자 깜짝 놀란 남매가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본다."아이고 봉임이 아들딸을 이렇게 만나다니 천지 신명님 고맙습니다 ."남매를 껴안은 아지매 눈에 눈물이 고였다.\xa0

"너희 엄마와 나는 어릴 때 둘도 없는 친구였단다".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너희 집은 잘살아 인정 많은 너희 엄마는 우리집에 쌀도 퍼담아 주고 콩도 한 자루씩 갖다 주었단다". 그날 이후 남매는 저녁 나절 올라갈 때는 꼭 만두가게에 들려서 속 터진 만두를 먹고 순덕 아지매가 싸주는 만두를 들고 할머니께 가져다 드렸다.\xa0

순덕 아지매는 관청에 가서 호적부를 뒤져 남매의 죽은 어머니 이름이 신봉임 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 이후로 만두를 빚을 때는 꼭 몇개는 아예 만두피를 찢어 놓았었다. 인왕산 달동내 만두솥 속 터진 만두가 익어갈 때 만두 솥은 눈물을 흘렸다.\xa0

30여 년 후 어느날 만두가게 앞에 승용차 한 대가 서고 중년신사가 내렸다.신사는 가게 안에 꾸부리고 만두를 빗는 노파의 손을 덥석 잡는다. 신사는 눈물을 흘리고 할머니를 쳐다본다. 할머니는 신사를 보며 "봉임이 아들이 ..." 하고 말끝을 흐린다. 그렇다. 그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와 병원 원장이 된 봉임이 아들 최낙원 강남제일병원 원장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옮긴 글-

스며드는 사랑 / 김양선

스며드는 사랑 / 김양선

스며드는 사랑 / 김양선

오는 줄도 몰랐네요

조용히 스며들길래

들어온 줄도 몰랐네요

너무도 자연스럽게 들어 온 그대

그저 바라만 본 듯 한데

어느 새 내게 들어와 앉으셨네요

언제 그렇게 자리를 잡으셨나요

나도 모르게 심장을 고장 내셨네요

그렇게 스며드시면

사랑인지도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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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란지계ㅣ金蘭之契

금란지계ㅣ金蘭之契

금란지계ㅣ金蘭之契

○ 금과 난초 같은 맺음. 다정한 친구 사이의 정의

○ 金(쇠 금) 蘭(난초 란) 之(갈 지) 契(맺을 계)

쇠처럼 단단하고 난초(蘭草) 향기(香氣)처럼 그윽한 사귐의 의리를 맺는다는 뜻으로,사이 좋은 벗끼리 마음을 합치면 단단한 쇠도 자를 수 있고, 우정(友情)의 아름다움은 난의 향기(香氣)와 같이 아주 친밀(親密)한 친구(親舊) 사이를 이름. 금과 난초 같은 맺음. 다정한 친구 사이의 정의(情誼). 두 사람의 마음이 합치면 단단한 금도 쪼갤 수 있고, 두 사람의 진정에서 우러난 말은 난초같이 향기로움에 비유한 말임.

역경(易經) 계사전(繫辭傳)에 “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두 사람의 마음이 같으니 그 예리함이 金石을 자를 수 있고, 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그 향기가 蘭과 같다)”이라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금란지교·금석지교(金石之交)·금석지계·단금지계(斷金之契)·단금지교 등 여러 말이 있다.

맹모단기ㅣ孟母斷機

맹모단기ㅣ孟母斷機

맹모단기ㅣ孟母斷機

○ 맹자의 어머니가 베를 끊었다

○ 孟(맏 맹) 母(어미 모) 斷(끊을 단) 機(베틀 기)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베를 끊었다는 뜻으로,학업(學業)을 중도(中途)에서 그만둠을 훈계(訓戒)하는 말, 문을 중도에 그만두는 것은 짜고 있던 베의 날실을 끊어 버리는 것과 같다는 말

전국 시대를 살다 간 맹자의 어머니의 훈육 일화이다. 집을 떠나 타향에서 공부하던遊學 어린 맹자가 어느 날 느닷없이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때 맹자의 어머니는 베틀에 앉은 채 맹자에게 물었다. "그래, 글은 얼마나 배웠느냐?" "별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어머님." 맹자가 대답하자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의 날실을 끊어 버리고 이렇게 타일렀다.

"네가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고 돌아온 것은 지금 내가 짜고 있던 이 베의 날실을 끊어 버린 것과 다를 게 없다."크게 깨달은 맹자는 다시 스승에게로 돌아가 전보다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 공자(孔子)에 버금가는 명유(名儒)가 되었다고 한다.

각의교혁ㅣ刻意矯革

각의교혁ㅣ刻意矯革

각의교혁ㅣ刻意矯革

○ 굳은 의지로 고치려 노력하다.

○ 刻(새길 각) 意(뜻 의) 矯(바로잡을 교) 革(가죽 혁)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는 것이 淸廉(청렴)이라고 쉽게 말한다. 하늘과 신과 나와 그대가 안다며 황금을 거절한 楊震(양진)과 뇌물로 가져온 물고기를 매달아놓은 羊續(양속)이 유명하고, 백성의 생활에 피해를 준다며 아욱을 뽑고 베틀을 버리기까지 한 公儀休(공의휴)가 압권이다. 성어가 된 중국의 청렴관리는 이처럼 손에 꼽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선 어떨까? 조선시대에 淸白吏(청백리)는 217명이 배출되었다는데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청렴이라고 하는 것은 목민관의 기본 임무이고, 모든 선의 근원이며, 모든 덕의 근원이니 청렴하지 않고서 목민관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廉者 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 不廉而能牧者 未之有也/ 염자 목지본무 만선지원 제덕지근 불렴이능목자 미지유야).’ 茶山(다산) 선생의 ‘牧民心書(목민심서)’ 중 律己(율기) 편 淸心(청심)조의 첫 대목이다. 백성을 다스릴 벼슬아치 牧民(목민)이 지켜야 할 도리와 지방관의 폐해를 들어 깨우치는 내용으로 시대를 넘어 공직자의 필독서로 꼽히기도 하는 책이다. 같은 조의 중간에 굳은 의지(刻意)를 가지고 고쳐 나가라(矯革)는 말은 잘못된 관례라도 공직자는 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무릇 그릇된 관례가 내려오는 것은 굳은 의지로 이를 고쳐 나아가되, 간혹 고치기 어려운 것이 있거든 나 하나만이라도 범하지 말아야 한다(凡謬例之沿襲者 刻意矯革 或其難革者 我則勿犯/ 범유례지연습자 각의교혁 혹기난혁자 아즉물범).’ 沿襲(연습)은 전례를 답습하거나 이어받는 일이고 刻意(각의)는 마음을 졸인다는 뜻이지만 굳은 의지로 해석한다. 공무원들이 손쉽게 관행이라며 이어져 온 비리를 벌써부터 근절하라고 가르쳤다

집중무권ㅣ執中無權

집중무권ㅣ執中無權

집중무권ㅣ執中無權

○ 가운데를 취해도 저울이 없다

○ 執(잡을 집) 中(가운데 중) 無(없을 무) 權(권세 권)

가운데를 취해도 저울이 없다, 중용의 의미가 없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도리에 맞는 것이 中(중)이고, 떳떳하며 변함이 없어 도리에 맞는 것이 庸(용)이라 하니 맞추기가 어려울 듯하다. 그런데 중용을 취한다고 취했더라도(執中) 그것을 판단할 저울이 없다면(無權) 중용이 아니라 또 하나의 고집이 된다는 것이 이 성어다. 권세 權은 여기서 저울이란 뜻이다.

孔子(공자)의 손자인 자사에게 배운 孟子(맹자)는 王道(왕도)를 주창하며 유교를 굳건히 전한 사람인데 후세의 제자들이 행적을 엮어 만든 책 ‘맹자’에 이 말이 전한다. 盡心(진심) 상편에 이기적 쾌락설을 주장한 楊子(양자)와 무차별의 사랑 兼愛說(겸애설)을 주장한 墨子(묵자), 그리고 魯(노)나라의 현인 子莫(자막)을 비판하면서 말한다. ‘천하를 이롭게 하는데 도움 된다 해도 양자는 자신의 털 하나라도 뽑지 않았고, 묵자는 자신의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다 닳는다 해도 희생하고 행했다.

자막은 도에 가까운 양 극단의 중간을 잡았지만 저울추가 없었으니 한 가지를 고집하는 것과 같다(子莫執中 執中爲近之 執中無權 猶執一也/ 자막집중 집중위근지 집중무권 유집일야).’ 章句(장구)를 만들어 널리 읽히게 한 朱子(주자)는 이에 대해 양자는 仁(인)에 해롭고, 묵자는 義(의)에 해로우며 자막은 알맞은 時(시)에 해롭다고 해석한다. 그러니 중용을 취하는 데는 저울추와 같은 중심을 잡지 못하면 또 다른 고집이 된다는 것이다.

맥수지탄ㅣ麥秀之歎

맥수지탄ㅣ麥秀之歎

맥수지탄ㅣ麥秀之歎

○ 보리 이삭이 무성함을 탄식한다

○ 麥(보리 맥) 秀(빼어날 수) 之(갈 지) 歎(탄식할 탄)

보리 이삭이 무성함을 탄식한다는 뜻으로, 곧 고국이 멸망한 탄식함을 이른다.

중국 고대 3왕조의 하나인 은(殷)나라 주왕이 음락에 빠져 폭정을 일삼자 이를 지성으로 간한 신하 중 삼인(三仁)으로 불리던 세 왕족이 있었다.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이 그들이다. 미자는 주왕의 형으로서 누차 간했으나 듣지 않자 국외로 망명했다. 기자도 망명했다. 그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거짓 미치광이가 되고 또 노예로까지 전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왕자 비간은 끝까지 간하다가 결국 가슴을 찢기는 극형을 당하고 말았다.

이윽고 주왕은 삼공(三公:왕을 보좌하던 세 제후)의 한 사람이었던 서백西伯: 훗날의 주문왕(周文王)의 아들 발(發)에게 주살(誅殺)당하고 천하는 주왕조(周王朝)로 바뀌었다. 주나라의 시조가 된 무왕(武王) 발은 은왕조의 봉제사(奉祭祀)를 위해 미자를 송왕(宋王)으로 봉했다. 그리고 기자도 무왕을 보좌하다가 조선왕(朝鮮王)으로 책봉되었다.

이에 앞서 기자가 망명지에서 무왕의 부름을 받고 주나라의 도읍으로 가던 도중 은나라의 옛 도읍지를 지나게 되었다. 번화하던 옛 모습은 간데 없고 궁궐터엔 보리와 기장만이 무성했다. 금석지감(今昔之感)을 금치 못한 기자는 시 한 수를 읊었다.

보리 이삭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麥秀漸漸兮(맥수점점혜)벼와 기장도 윤기가 흐르는구나 禾黍油油兮(화서유유혜)교활한 저 철부지(주왕)가 彼狡童兮(피교동해)내 말을 듣지 않았음이 슬프구나 與我好兮(불여아호혜)

화광동진ㅣ和光同塵

화광동진ㅣ和光同塵

화광동진ㅣ和光同塵

○ 빛을 감추고 세속을 따르다, 내세우지 않고 어울리다.

○ 和(화할 화) 光(빛 광) 同(한가지 동) 塵(티끌 진)

화광(和光)은 빛을 늦추는 일이고, 동진(同塵)은 속세(俗世)의 티끌에 같이 한다는 뜻으로,자기(自己)의 지혜(智慧ㆍ知慧)를 자랑함 없이 오히려 그 지혜(智慧ㆍ知慧)를 부드럽게 하여 속세(俗世)의 티끌에 동화(同化)함을 말함.

빛을 온화하게 조화시켜(和光) 속세의 티끌과 같이 한다(同塵)는 이 성어는 자기의 지혜를 내세움이 없이 오히려 그 빛남을 줄여 세속과 함께 한다는 위의 가르침을 응축하고 있다. 불교에선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지덕과 재기를 감추고 속세에 나타나 불법으로 인도하는 것을 말할 때 이 말을 쓴다고 한다. 더 상세한 것은 老子(노자)의 ‘道德經(도덕경)’에서 찾을 수 있다.

제4장 無源章(무원장)에서 道(도)는 비어 있어 아무리 쓴다고 해도 넘치지 않는다면서 이어진다.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어지러움을 풀어준다. 그 빛을 부드럽게 하며 티끌과도 어울리게 만든다(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挫는 꺾을 좌.

제56장 玄德章(현덕장)에는 유명한 말이 앞선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知者不言 言者不知/ 지자불언 언자부지), 감각기관을 막고 욕망의 문을 닫으며(塞其兌 閉其門/ 색기태 폐기문), 날카로움을 꺾고 어지러움을 풀며(挫其銳 解其紛/ 좌기예 해기분), 빛을 부드럽게 하여 티끌과 한 몸이 되어라(和其光 同其塵/ 화기광 동기진).’ 그렇게 하면 현묘한 한 몸 되기, 즉 玄同(현동)이 된다고 했다.

중구난방ㅣ衆口難防

중구난방ㅣ衆口難防

중구난방ㅣ衆口難防

○ 여러 사람의 입은 막기가 어렵다

○ 衆(무리 중) 口(입 구) 難(어려울 난) 防(막을 방)

여러 사람의 입을 막기 어렵다는 뜻으로,막기 어려울 정도(程度)로 여럿이 마구 지껄임을 이르는 말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이 일치되긴 어렵다. 더군다나 이해가 갈린 경우라면 사람마다 각각의 처방을 낸다. 조금씩 양보를 하고 합리적인 차선책을 찾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교육은 받아왔지만 막상 자신이 관련되면 싹 무시한다. 여러 사람이 입을 모아 주장하면(衆口) 막기 어렵다(難防)는 성어는 처음엔 이같이 支離滅裂(지리멸렬)을 뜻하지 않았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앞의 周(주, 기원전 1046년∼771년)나라 때 있었던 이야기가 ‘十八史略(십팔사략)’에 실려 전해오는 이야기는 이렇다. 이 책은 元(원)나라의 曾先之(증선지)가 편찬한 중국의 역사서로 초학자들의 교과서 구실을 했다.

주의 厲王(여왕)은 국정을 비방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차 없이 벌을 줬다. 백성들은 불만이 있어도 밀고가 두려워 입을 닫았다. 여왕은 반대하는 백성들이 사라지자 정치를 잘 하는 줄 알고 기고만장했다. 이 때 召公(소공)이 탄압정책에 반대하며 이렇게 간했다.

‘나라가 조용한 것은 비방을 억지로 막은 것에 불과합니다. 백성들의 입을 막는 것은 개천을 막는 것보다 어렵습니다(防民之口 甚於防川/ 방민지구 심어방천)’라며 개천이 막혔다가 터지면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백성들 또한 이와 같으니 다스리는 사람은 그들이 생각하는 말길을 틔워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여왕은 이런 충언을 무시했다가 백성들이 난을 일으키자 달아나 평생 숨어 살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