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7일 금요일

토영삼굴ㅣ兎營三窟

토영삼굴ㅣ兎營三窟

토영삼굴ㅣ兎營三窟

○ 토끼가 세 개의 굴을 파다, 안전을 위해 대비하다.

○ 兎(토끼 토) 營(지을 영) 三(석 삼) 窟굴 굴

토끼가 危難(위난)을 피하기 위해 세 개의 굴을 파 놓는다. 자기의 안전을 위해 미리 몇 가지 방책을 짜 놓음. 토끼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 개의 굴을 파 놓는다는 이 성어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미리 대비책을 짜놓는 현명함도 지녔다. 狡兎三窟(교토삼굴), 狡兎三穴(교토삼혈)이라 해도 같다.

戰國四公子(전국사공자)는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말기 각 제후국에서 빈객들을 수천 명씩 거느리고 세력을 떨쳤다. 유명한 齊(제)나라의 孟嘗君(맹상군)을 비롯하여 趙(조)의 平原君(평원군), 魏(위)의 信陵君(신릉군), 楚(초)의 春申君(춘신군)이 그들이다. 닭소리 내는 사람이나 개 도둑도 받아 鷄鳴狗盜(계명구도)의 성어로 유명한 맹상군은 거지 출신의 馮驩(풍환, 驩은 기뻐할 환)도 들였다. 무위도식하는 그가 음식이나 탈것 등에 불만을 늘어놓아도 맹상군은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맹상군은 薛(설) 지역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식객을 거두었는데 때가 되어 풍환에게 해결하라고 했다. 그는 가서 채무자들을 모아놓고 주인이 면제해 준다며 차용증을 태웠다. 그리고선 돌아와 태연히 돈 대신 은혜와 의리를 갖고 왔다고 했다. 맹상군이 재상에서 밀려나자 다른 식객들은 모두 떠났으나 풍환은 설 지역으로 모셔 그곳서 대대적 환영을 받았다. 맹상군이 고마워하자 풍환은 말했다. ‘토끼는 빨라도 굴 세 개는 있어야 비로소 죽음을 면할 수 있습니다(狡兎有三窟 僅得免其死耳/ 교토유삼굴 근득면기사이).’ 풍환은 이후에도 맹상군을 복위시키고, 설 땅에 종묘를 마련하여 평안한 만년을 보내게 했다. ‘戰國策(전국책)’과 ‘史記(사기)’에 실려 전하는 이야기다.

남우충수ㅣ濫竽充數

남우충수ㅣ濫竽充數

남우충수ㅣ濫竽充數

○ 악기를 마구 불며 숫자만 채우다

○ 濫(넘칠 남) 竽(피리 우) 充(채울 충) 數(셈 수)

무능(無能)한 사람이 재능(才能)이 체하는 것이나 또는 외람되이 높은 벼슬을 차지하는 것을 말함. 악기를 마구 불며 숫자만 채우다,

사물을 분별하는 지혜나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가 分數(분수)다. 그런데 덜 떨어진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 주변에 의외로 많다. 실속 없는 자가 유난히 허세를 부리는 경우를 속담에서 ‘없는 놈이 있는 체 못난 놈이 잘난 체’라고 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모르면서도 아는 체하는 것을 아울러 ‘세 가지 체병’이라며 주의하라고 깨우친다. 실력이 없는 자가 운 좋게, 또는 높은 사람에 잘 보여서 분수에 넘치는 지위에 올랐어도 밑천은 들통 나게 마련이다. 이럴 경우에 사용하는 성어가 竽(우)라는 피리를 제멋대로 부는 南郭(남곽)이란 사람의 이야기다.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의 宣王(선왕)은 관악기의 일종인 우의 연주 듣기가 취미였다. 우를 불도록 할 때는 반드시 300명이 합주하는 것을 즐겼다. 남곽이라는 처사가 선왕을 위해 우를 연주하겠다고 간청하자 왕은 대단히 기뻐했다(南郭處士 請爲王吹竽 宣王說之/ 남곽처사 청위왕취우 선왕열지). 그러면서 남곽에게 다른 훌륭한 악사와 똑 같은 수준으로 수백 명분의 곡식을 내렸다. 남곽이란 자는 우를 전혀 불 줄 몰랐으나 다른 합주단원들의 틈에 끼여 열심히 연주하는 흉내를 내며 그럭저럭 세월을 보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선왕이 죽고 緡王(민왕, 緡은 돈꿰미 민)이 즉위했는데 그는 합주를 싫어하고 한 사람 한 사람씩 부는 것을 듣기 좋아했다. 들통 날 것이 두려웠던 남곽은 그제야 줄행랑치고 말았다.

우를 아무렇게나 불며(濫竽) 악대의 숫자만 채운다(充數)는 고사는 ‘韓非子(한비자)’의 內儲說(내저설) 상편에 나온다. 濫竽(남우)라고 줄여서 말하거나 南郭濫吹(남곽남취) 또는 南吹(남취)라 해도 같은 의미다. 한비자는 여기에서 임금이 신하를 다스리는 일곱 가지 방법 七術(칠술)을 설명했다. 남곽의 이야기를 통해 한 번 들으면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을 구분할 수 없으므로 여러 사람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반장ㅣ如反掌

여반장ㅣ如反掌

여반장ㅣ如反掌

○ 손바닥을 뒤집는 것 같다, 아주 쉬운 일

○ 如(같을 여) 反(돌이킬 반) 掌(손바닥 장)

아주 쉬운 일을 비유하는 많은 말 중에서 자주 쓰는 말은 ‘땅 짚고 헤엄치기’나 ‘누워서 떡 먹기’일 것이다. 손쉬운 것을 이를 때의 한자성어는 주머니 속 물건 꺼내는 囊中取物(낭중취물), 손바닥에 침 뱉기처럼 쉽게 얻는다는 唾手可得(타수가득), 태산으로 알 누르기 泰山壓卵(태산압란)처럼 아주 많다.

後漢(후한) 초기 역사가 班固(반고)가 지은 ‘漢書(한서)’에서 유래한 이야기를 보자. 劉邦(유방)의 조카인 유비는 6대 景帝(경제)때 吳王(오왕)에 봉해졌으나 세력을 모아 吳楚(오초)칠국의 난을 일으켰다. 이 때 저명한 문인 매승이란 사람이 성공하기 어렵다며 건의했다. ‘하고자 하는 바를 바꾼다면 이는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이며 태산처럼 안정될 것입니다(變所欲爲 易於反掌 安於泰山/ 변소욕위 이어반장 안어태산).’ 유비는 이 말을 듣지 않았다가 진압군에 피살되었다.

같은 의미를 가진 反手(반수)는 이보다 앞서 ‘孟子(맹자)’에게서 나왔다. 제자 公孫丑(공손추)가 스승에게 자리가 주어진다면 齊(제)나라의 管仲(관중)이나 晏嬰(안영)과 같은 공을 이룰 수 있겠는지 물었다. 맹자는 질문에 언짢아하면서 답한다. ‘제나라로서 왕업을 이루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다(以齊王 猶反手也/ 이제왕 유반수야).’ 맹자는 안정된 대국인 제나라에서 인정을 베풀어 통일된 나라를 이끄는 것은 아주 쉽다고 본 것이다.

경죽난서ㅣ罄竹難書

경죽난서ㅣ罄竹難書

경죽난서ㅣ罄竹難書

○ 가시나무를 헤치고 쪼개다, 어려움을 이기고 나아가다.

○ 罄(빌 경) 竹(대 죽) 難(어려울 난) 書(글 서)

서기 105년 중국 後漢(후한) 때의 蔡倫(채륜)이 종이를 발명하기 전에는 대나무를 쪼갠 竹簡(죽간)에다 글을 썼다. 나라 안의 대나무가 다하도록(罄竹) 글을 써도 다 쓰기가 어렵다(難書)는 이 말은 저지른 죄가 하도 많아서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는 뜻이다.

좋은 일을 이렇게 적을 일이 있으면 좋겠지만 오랜 관례상 죄를 열거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앞서 나왔던 머리카락을 다 뽑아 헤아려야 할 만큼 죄가 많은 것을 비유하는 擢髮難數(탁발난수)와 유사한 쓰임새다.

중국 隋(수)나의 煬帝(양제, 煬은 녹일 양)는 100만 대군으로 高句麗(고구려)를 침공했다가 乙支文德(을지문덕) 장군에 의해 크게 패한 것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양제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는 등 업적도 있지만 사치스런 생활에 정벌을 일삼아 백성들에 과중한 부담을 줬다. 왕의 폭정에 대항해서 각지에서 농민군이 들고 일어났다.

반란 세력 중에서도 가장 큰 瓦崗軍(와강군)의 우두머리 李密(이밀)은 수도를 공격하면서 양제의 죄악을 성토하는 격문을 발표했다. ‘남산의 대나무를 모두 사용해도 그의 죄를 다 적을 수가 없고 동해의 물을 다 쓴다 해도 그의 죄악을 씻어낼 수 없다.

2025년 11월 6일 목요일

광대나물

광대나물

광대나물

이 름 : 광대나물

학 명 : Lamium amplexicaule L.

과 명 : 꿀풀과

분 포 :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동남아시아, 서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

자생지 : 숲의 가장자리, 길가, 밭

크 기 : 높이 10~25cm

개 화 : 3-5월

꽃 말 : 그리운 봄

광대나물은 우리나라 각처의 밭이나 길가에서 자라는 2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비교적 햇살이 많이 드는 양지쪽에서 잘 자란다. 키는 10~30㎝가량 되며, 줄기는 네모지고, 자줏빛이 돈다. 잎은 둥근 모양을 하고 있으며, 지름은 1~2㎝ 정도이다. 꽃은 붉은색이며, 잎겨드랑이에 여러 송이의 꽃이 붙어 돌려난 것처럼 보인다. 꽃 지름은 약 0.7~1.2㎝ 정도이고 길이는 2~3㎝ 정도된다. 열매는 7~8월경에 달걀 모양으로 달린다. 이른 봄 집주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종이다. 연한 어린잎은 식용, 전초는 약용으로 쓰인다.

-사진 : 임규동의 꽃사진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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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한 켤레

구두 한 켤레

구두 한 켤레

살아간다는 것은 내 짝을 찾아 헤메는 구두 한 켤레. 구두가 낡을수록 사람이 되는 것을 세상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쉽게 구두를 갈아 신는 것은 먼저 인간이 되고 나서 산다는 아픔을 모르는 까닭이고 어떠한 길이라도 한 켤레 구두가 닳을 때 까지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걸어가라고 세상살이가 알려 주는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가도 가도 세상길은 질퍽하게 험하기만 하고 세상으로 부터 자유롭고 싶은 이 자유가 삶의 비지땀 같은 부담이 될줄 몰랐습니다.

밖을 나설 때 마다 남들 보기에 창피하고 부끄럽지 않게 구두를 닦고 살아가는 것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까마귀가 울고 있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마음의 행로는 한 켤레 구두로 부터 나를 구속하고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겉치레가 오히려 삶의 방해꾼이 되는 온전한 자유 속 한 사람의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시인의 낡은 구둣발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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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구두 한 켤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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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무쌍ㅣ國士無雙

국사무쌍ㅣ國士無雙

국사무쌍ㅣ國士無雙

○ 나라 안에 견줄 만한 자가 없는 인재

○ 國(나라 국) 士(선비 사) 無(없을 무) 雙(쌍 쌍)

나라의 인물은 둘이 있을 수 없다. 즉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인물을 가리키는 표현.

유방이 항우와 주도권을 다툴 때의 일입니다. 항우의 힘이 워낙 강해 유방 진영이 점차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유방 진영에서는 장수와 병사를 막론하고 이탈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방의 고향 친구이자 오른팔인 소하마저 사라졌습니다.

유방이 “이제 나는 끝이로구나!” 하며 낙담하고 있는데, 소하가 돌아왔습니다. 유방은 반가운 기색을 감추며 “너마저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하고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소하는 “전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인물을 찾아 나갔다 왔습니다. 다른 모든 인물을 잃는다 해도 이 사람만 있으면 천하를 손에 쥘 수 있습니다.” 하는 것이었지요. 궁금해진 유방이 “그게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고 묻자 소하는 “한신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한신은 말단 지휘관에 불과했으므로 유방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소하는 뜻을 굽히지 않고 간언하였죠. “한신을 등용하십시오. 그야말로 천하에 둘도 없는 인재입니다.” 결국 유방은 소하의 말대로 한신을 대장군에 등용하였고, 그때부터 한신은 유방이 천하통일로 가도록 길을 닦았습니다. 물론 마지막에는 한신의 능력에 불안감을 느낀 유방에 의해 버림을 받았지만 말입니다.

대우탄금ㅣ對牛彈琴

대우탄금ㅣ對牛彈琴

대우탄금ㅣ對牛彈琴

○ 소에게 거문고 소리를 들려 주는 것

○ 對대할 대 牛소 우 彈풍길 탄 琴거문고 금

소에게 거문고를 들려준다는 말로,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참된 도리를 말해 주어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

중국 양(梁)나라 때의 승려 우(祐)가 편찬한 《홍명집(弘明集)》 이혹론(理惑論)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후한 말 모융(牟融)이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불경에 밝아 많은 사람이 불경을 공부하러 그를 찾아왔다. 그런데 찾아온 사람이 유학자일 경우에는 불경을 설명하면서 늘 유학의 경서를 인용했다. 이에 대하여 유학자들이 이유를 묻자, 모융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당신들은 불경을 읽은 일이 없을 것이오. 그래서 나는 당신들이 잘 알고 있는 유교 경전을 인용하는 것이라오.” 그러고는 송(宋)나라 때 목암(睦庵)이 지은 선집 《조정사원(祖庭事苑)》에 보이는 공명의(公明儀)의 일화를 이야기하였다. “옛날 노(魯)나라에 공명의라고 하는 어진 사람이 있었소. 하루는 소를 보고 그 하는 일에 고마움을 느껴 거문고를 켜 주었다오.

그런데 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풀만 뜯고 있었다는구료. 가만히 생각하니 이건 소가 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청각(淸角)이라는 고상한 곡조가 소 귀에는 맞지 않기 때문이구나 싶더랍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모기와 등애의 울음소리, 젖을 먹고 있는 송아지 울음소리를 흉내냈답니다. 그러자 소는 발굽소리를 내며 꼬리를 흔들기도 하고, 귀를 세운 채 거문고 소리를 다소곳이 들었답니다. 그 소리가 소의 마음에 맞았기 때문이지요. 이 이야기는 바로 내가 당신들에게 유교 경전을 인용하여 불경을 설명하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니겠소?”

대우탄금은 이와 같이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말로, 오늘날에는 우이독경(牛耳讀經)과 같은 의미로도 사용된다.

대공무사ㅣ大公無私

대공무사ㅣ大公無私

대공무사ㅣ大公無私

○ 매우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다

○ 大(큰 대) 公(귀 공) 無(없을 무) 私(사사로울 사)

매우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다는 말로, 공적인 일의 처리에 있어서 개인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는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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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公)이란 글자는 본래 사(私)를 나눈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사(私)를 나눈다는 말은 바로 가난을 같이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여러 사람과 어려움을 같이하는 것이 바로 공적인 행동이라는 풀이가 나왔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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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진(晉)나라 평공(平公)이 하루는 기황양(祁黃羊)에게 물었다. "남양(南陽)에 현령(縣令) 자리가 비었는데 누구를 보내는 것이 가장 좋겠는가?" 기황양은 주저하는 기색 없이 즉시 대답하였다. "해호(解狐)를 보내면 반드시 임무를 훌륭히 수행할 것입니다." 평공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해호와 기황양은 서로가 극히 미워하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해호는 그대와 원수지간이 아닌가? 어찌하여 해호를 추천하는 것인가?" 기황양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왕께서는 현령 자리에 누가 적임자인지를 물으셨지 누가 신과 원수지간이냐를 물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후 어느 날 평공이 다시 "조정에 법을 집행할 사람이 한 명이 필요한데 누구를 임명하는 것이 좋겠소?" 하고 묻자, 기황양은 서슴없이 자기 아들을 추천하였다. 평공이 "그는 그대 아들이 아닌가?" 하고 묻자, 기황양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누가 그 일에 적임자냐고 물으셨지, 그가 내 아들인지 아닌지를 물으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신은 비록 제 아들이라도 그 자리에 적격이기에 추천한 것이지 사사로운 정으로 추천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말대로 평공은 그의 아들 기오(祁午)를 그 자리에 앉혔고, 기오는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여 칭송을 들었다.

대공무사란 이와 같이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동주공제ㅣ同舟共濟

동주공제ㅣ同舟共濟

동주공제ㅣ同舟共濟

○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 同(한가지 동) 舟(배 주) 共(한가지 공) 濟(건널 제)

같은 배를 타고 천(川)을 건넌다는 뜻으로 이해(利害)와 환란(患亂)을 같이 했다는 것을 뜻하는 성어로 吳越同舟(오월동주)라는 말이 있다. 원수 사이인 吳(오)나라 사람과 越(월)나라 사람이라도 같은 배에서 풍랑을 만나면 서로 돕기를 좌우의 손이 함께 협력하듯이 한다고 병법서인 孫子(손자)서 가르친다.

같은 배(同舟)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넌다(共濟)는 이 성어도 출처가 같은 손자라고 한 곳이 많지만 실제 뜻은 같아도 유래는 다르다. 중국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 宋(송)의 역사가 范曄(범엽)이 편찬한 ‘後漢書(후한서)’에 朱穆(주목)이 한 말로 나온다. 자가 公叔(공숙)인 後漢(후한) 말기 학자 주목은 학문을 좋아하고 성품이 강직해 바른 말을 잘해 忠諫者(충간자)의 비유가 되었다.

당시 척신 梁冀(양기)는 여동생인 태후와 함께 황제를 마음대로 폐하고 세우며 안하무인의 횡포를 부려 모두 꺼렸다. 주목은 양기와 함께 환관들의 횡포를 보다 못해 상소를 올려 처벌하기를 권했다. ‘무릇 장군과 재상, 대신은 모두 군주와 한 몸이므로 수레를 함께 타고 달려야 하고 배도 함께 타고 물을 건너야 하니 수레가 기울고 배가 뒤집히는 환난에도 함께 해야 합니다. 주목은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울분 끝에 종기가 나 죽었다.

1912년 7월 중국 상하이에서 申圭植(신규식) 등이 국권회복운동을 위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 同濟社(동제사)도 ‘한마음 한뜻으로 같은 배를 타고 피안에 도달하자’는 이 성어에서 따 온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