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7일 금요일

그대를 생각하면 할수록 

그대를 생각하면 할수록 

그대를 생각하면 할수록\x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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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생각하면 할수록

더 사랑하고 싶어집니다. \xa0

\xa0

이젠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열정적인 사랑보다 \xa0

\xa0

이슬비처럼 젖어드는

잔잔한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xa0

\xa0

우리의 삶은

동행하는 이가 있어야 행복하기에

날마다 그대가 더 보고 싶습니다. \xa0

\xa0

환하게 웃는 그대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은 금세 어둠 속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밝아집니다 \xa0

\xa0

그대와 함께 있으면

내 마음엔 꿈이 가득해지고\xa0

\xa0

내일을 힘차게 살아가고 싶은

용기와 힘이 넘쳐납니다. \xa0

\xa0

이제는 순간순간 변하는 사랑보다

언제나 변함없이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xa0

\xa0

모두 떠나가고

잊혀지는 삶속에서 \xa0

\xa0

한순간 달콤하고

감미로운 사랑을 하기보다는 \xa0

\xa0

그대만은 운명처럼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xa0

\xa0

내 가슴에 새겨두고 싶은

사랑이기에 \xa0

\xa0

날마다 바라보아도

더 보고 싶어집니다... \xa0

\xa0

"

-용혜원, 늘 보고픈 사람 중에서-

"

작은 별이지만 빛나고 있어

작은 별이지만 빛나고 있어

작은 별이지만 빛나고 있어

가끔 지치고 힘든 날

밤하늘을 보면 좋겠어 \xa0

\xa0

세상에 홀로 남아

아무도 네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고 느끼는

외로움이 뒤덮는 그런 날 \xa0

\xa0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이

작지만 나도 이렇게 빛나고 있다고

힘을 주고 있을 거야

가끔 괴롭고 울고 싶은 날

밤하늘을 보면 좋겠어 \xa0

\xa0

불안한 미래에 우울하고

어두운 걱정이 마음을

울리고 있는 날 \xa0

\xa0

수많은 작은 별들이

온 힘을 다해 은하수를 만들어

너를 위한 길을 밝히고 있을 거야 \xa0

\xa0

용기가 필요할 때

힘이 필요할 때

밤하늘을 보며 이 말을 떠올려 줘 \xa0

\xa0

사랑을 가득 품은 너처럼

꿋꿋하게 견뎌온 너처럼

작은 별이지만 빛나고 있어\xa0

\xa0

"

-책 작은 별이지만 빛나고 있어 중에서-

"

빗물 담을 그릇부터 / 고도원

빗물 담을 그릇부터 / 고도원

빗물 담을 그릇부터 / 고도원

기적은 빗물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는 시시때때로

하늘에서 내리지만

자기 그릇에 담지 않으면

모두 밖으로 흘러가 버리고 맙니다

그릇을 준비해야

빗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깨끗한 그릇이어야

담기는 빗물도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기적은 비처럼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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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와 고유함

비교와 고유함

비교와 고유함

살면서 비참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할 때입니다.

\xa0

또한 교만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때 역시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비교할 때입니다.

\xa0

즉,\xa0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면 비참하게 생각되고,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면

교만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xa0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러한 비교를 통해서는

올바른 자신의 성장을 가져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역시 항상 나쁘게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xa0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대신 그들의 고유함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xa0

"

-조명연의 방향을 바꾸면\xa0중에서-\x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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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탁마ㅣ切磋琢磨

절차탁마ㅣ切磋琢磨

절차탁마ㅣ切磋琢磨

○ 옥이나 돌을 갈고 닦다.

○ 切(끊을 절) 磋(갈 차) 자琢(다듬을 탁) 磨(갈 마)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다라는 뜻으로,학문(學問)이나 인격(人格)을 갈고 닦음

"

고대 중국서 귀한 옥을 가공하는 4개 공정을 나타내는 글자가 각각 切磋琢磨(절차탁마)라고 했다. 먼저 원석에서 옥을 모양대로 잘라내는 것이 切(절), 원하는 모양으로 옥을 잘라서 갈아내는 磋(차), 원하는 모양대로 다듬는 琢(탁), 마지막으로 완성된 옥을 갈고 닦는 磨(마)의 단계다. 琢은 옥도 쪼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다는 뜻으로, 천성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학문이나 수양을 쌓지 않으면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없음을 비유한 명구 玉不琢 不成器(옥불탁 불성기)에 나온 그 글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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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 전부터 전해지던 민요를 모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 詩經(시경)에 처음 등장한다. 衛風(위풍)편에 나오는 빛이 나는 군자는 끊는 듯 갈며 쪼는 듯 갈아 엄하고 너그럽다(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유비군자 여절여차 여탁여마 슬혜한혜)에서 땄다. 모두 如(여)가 붙어 있는데 如를 생략해 切磋琢磨, 또는 더 줄여 切磨(절마)라고 쓰기도 한다. 여기선 옥을 다듬는 것이 아니고 군자가 스스로를 수양하기 위해 갈고 닦고 연마해야 좋은 그릇(器)이 만들어지듯 힘쓰는 모양을 비유했다. 匪는 비적 비이지만 대상자 비, 빛날 비도 된다. 인품이 뛰어나 고아한 대나무 같은 군자라는 뜻으로 진정한 군자를 일컫는다.

",

"

이 구절이 더욱 유명해진 데에는 論語(논어) 學而(학이)편에서 인용했기 때문이다. 공자가 언변이 뛰어난 제자 子貢(자공)과 나눈 대화에서 나온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貧而無諂/ 빈이무첨) 부자라도 교만하지 않으면(富而無驕/ 부이무교) 훌륭하지만,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貧而樂道/ 빈이락도)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富而好禮/ 부이호례)이 더 낫다고 했는데 자공이 切磋琢磨가 바로 이 지경이라고 대답하여 칭찬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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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종극말ㅣ凶終隙末

흉종극말ㅣ凶終隙末

흉종극말ㅣ凶終隙末

○ 우정을 끝까지 잘 지켜 나가지 못함

○ 凶(흉할 흉) 終(마칠 종) 隙(틈 극) 末(끝 말)

우정(友情)을 끝까지 잘 지켜 나가지 못함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交友(교우)에 있어서, 처음에는 극히 친하다가 끝에는 나빠져서 서로 틈이 생김을 이르는 말. ‘凶終’은 중국 秦(진)나라의 張耳(장이)∙陳餘(진여)의 옛일이며, ‘隙末’은 漢(한)나라의 蕭育(소육)∙朱博(주박)의 옛일에서 온 말. 後漢書(후한서)에 나오는 말이다.

거일반삼ㅣ擧一反三

거일반삼ㅣ擧一反三

거일반삼ㅣ擧一反三

○ 하나를 들어 세 가지를 돌이킨다는 말

○ 擧(들 거) 一(한 일) 反(돌이킬 반) 三(석 삼)

하나를 들어 세 가지를 돌이킨다는 말로 스승으로부터 하나를 배우면 다른 것까지도 유추해서 아는 것을 비유한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분발하지 아니하면 열어 주지 아니하며, 애태우지 아니하면 말해 주지 아니하고, 한 모퉁이를 돌 때 세 모퉁이로써 돌아오지 아니하면 다시 일러 주지 아니한다.“ 이 글은 공자의 교육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자는 학문을 좋아하여 마음속으로부터 분발하여 의욕을 나타내는 제자들 에게 그 다음 단계를 열어서 보여주며, 하나라도 알고 싶어 애태우는 제자에게 해답을 가르쳐 주고, 하나를 들어 주어 세 가지를 이해할 만큼 무르익을 때까지는 또 다른 것을 가르쳐 주지 아니한다.

이러한 공자의 교육 방법은 지식의 일방적인 전달을 배제하고 제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안회(顔回)가 있었는데 특히 학문에 뛰어났다. 그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고 해서 문일지십(聞一知十)이라는 칭송을 공자로부터 들었다. 맹자도 군자삼락(君子三樂)에서 영재를 얻어 교육시키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으니, 어쨌든 빼어난 인재를 얻기란 힘들기도 하고 또 얻었을 때는 보람 있는 일이다.

좌회불란ㅣ坐懷不亂

좌회불란ㅣ坐懷不亂

좌회불란ㅣ坐懷不亂

○ 여자를 품에 안고도 흐트러지지 않음

○ 坐(앉을 좌) 懷(품을 회) 不(아닐 불) 亂(어지러울 란)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에 여자를 품에 안고서(坐懷) 하루 밤을 지내도록 흐트러지지 않았다(不亂)는 柳下惠(유하혜) 얘기다.

그는 魯(노)나라의 대부로 있으면서 덕행이 있고 예에 어긋나지 않게 국정을 이끌어 孔子(공자)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孟子(맹자)도 유하혜를 조화로운 성인 和聖(화성)으로 부르며 伊尹(이윤), 伯夷(백이), 공자와 함께 4대 성인으로 추앙했다고 할 정도다.

남녀가 함께 지내도 바르지 못한 행위는 없었다는 이런 스토리는 ‘荀子(순자)’ 大略(대략)편에 간단히 나온 것이 처음이다. 후대에 살을 붙여 前漢(전한) 毛亨(모형)의 주석에서 淸(청)나라 소설가 李汝珍(이여진)의 대표작 鏡花緣(경화연)에 이르기까지 수다히 인용됐다. 여기선 元(원)나라 胡炳文(호병문)의 ‘純正蒙求(순정몽구)’의 내용을 보자. ‘유하혜가 어느 때 먼 길을 다녀오느라 늦어서 성문 밖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몹시 추운 날이었다.

갑자기 한 여자가 와서 잘 곳이 없으니 같이 자게 해달라고 했다. 유하혜는 얼어 죽을 것 같은 그 여인을 품에 안고 옷으로 덮어주었다. 새벽에 이르기까지 난잡하지 않았다.

문경지교ㅣ刎頸之交

문경지교ㅣ刎頸之交

문경지교ㅣ刎頸之交

○ 생사고락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

○ 刎(목 벨 문) 頸(목 경) 之(갈 지) 交(사귈 교)

목을 베어 줄 수 있는 사귐이라는 뜻으로, 우정이 깊어 생사고락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를 말한다. 문경(刎頸)·문경교(刎頸交)·문경지계(刎頸之契)라고도 하며,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인상여(藺相如)는 원래 전국시대에 조(趙)나라 환관 우두머리인 무현(繆賢)의 부하였으나 진 소양왕(秦昭襄王)에게 빼앗길 뻔한 화씨의 구슬(和氏之璧)을 무사히 보전해 돌아온 공으로 상대부(上大夫)가 되었다. 후에 진나라 왕이 조나라 왕에게 민지(渑支)에서 회견을 하자고 제안했다. 사실 진나라의 왕은 조나라의 왕을 망신주고 굴복시킬 의도였는데, 이를 눈치 챈 인상여가 용기있게 나서 조나라 왕은 치욕을 면할 수 있었다. 회견을 마치고 돌아와 조나라 왕은 인상여의 공을 크게 치하하고 상경(上卿)으로 삼으니 대장군인 염파(廉頗)보다 지위가 높아졌다. 염파는 전장에서 직접 적과 싸우는 자신보다 겨우 입만 놀린 인상여가 높은 자리에 오른 것을 못마땅해 하며 모욕을 주리라 다짐하였다. 이를 들은 인상여가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 늘 조심하는 것을 보고 그를 따르던 이들이 말했다.

"저희는 나리의 높은 뜻을 존경하여 곁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염파가 나리에 대해 나쁜 말을 퍼뜨리고 다니는데도 나리께서는 두려워 피해만 다니십니다. 이것은 일개 평범한 사람도 부끄러워하는 일입니다. 저희는 물러나겠습니다." 떠나려는 그들을 말리며 인상여는 말했다. "그대들은 진나라 왕이 무섭소, 염파가 무섭소?" "염 장군은 진나라 왕에 못 미칩니다." "진나라 왕의 위세에도 나는 궁정에서 그를 꾸짖고 그 신하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소. 내가 아무리 어리석은들 염장군을 두려워 하겠소? 내가 생각해보니, 강한 진나라가 감히 우리 조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나와 염파 우리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지금 두 호랑이가 다투게 되면 둘 다 살아남지 못하게 될 것이오. 내가 그를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감정을 뒤로하기 때문이오."

인상여의 이 말을 들은 염파는 맨몸에 가시채찍을 짊어지고 인상여의 문 앞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했다. "비천한 제가 상경의 넓은 도량을 미처 몰랐습니다." 하고는 마침내 서로 기뻐하며 죽음도 함께할 벗(刎頸之交)이 되었다.

문경지교는 이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이밖에 막역한 친구사이를 뜻하는 성어로 교칠지교(膠漆之交)·관포지교(管鮑之交)·수어지교(水魚之交) 등이 있다.

토영삼굴ㅣ兎營三窟

토영삼굴ㅣ兎營三窟

토영삼굴ㅣ兎營三窟

○ 토끼가 세 개의 굴을 파다, 안전을 위해 대비하다.

○ 兎(토끼 토) 營(지을 영) 三(석 삼) 窟굴 굴

토끼가 危難(위난)을 피하기 위해 세 개의 굴을 파 놓는다. 자기의 안전을 위해 미리 몇 가지 방책을 짜 놓음. 토끼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 개의 굴을 파 놓는다는 이 성어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미리 대비책을 짜놓는 현명함도 지녔다. 狡兎三窟(교토삼굴), 狡兎三穴(교토삼혈)이라 해도 같다.

戰國四公子(전국사공자)는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말기 각 제후국에서 빈객들을 수천 명씩 거느리고 세력을 떨쳤다. 유명한 齊(제)나라의 孟嘗君(맹상군)을 비롯하여 趙(조)의 平原君(평원군), 魏(위)의 信陵君(신릉군), 楚(초)의 春申君(춘신군)이 그들이다. 닭소리 내는 사람이나 개 도둑도 받아 鷄鳴狗盜(계명구도)의 성어로 유명한 맹상군은 거지 출신의 馮驩(풍환, 驩은 기뻐할 환)도 들였다. 무위도식하는 그가 음식이나 탈것 등에 불만을 늘어놓아도 맹상군은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맹상군은 薛(설) 지역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식객을 거두었는데 때가 되어 풍환에게 해결하라고 했다. 그는 가서 채무자들을 모아놓고 주인이 면제해 준다며 차용증을 태웠다. 그리고선 돌아와 태연히 돈 대신 은혜와 의리를 갖고 왔다고 했다. 맹상군이 재상에서 밀려나자 다른 식객들은 모두 떠났으나 풍환은 설 지역으로 모셔 그곳서 대대적 환영을 받았다. 맹상군이 고마워하자 풍환은 말했다. ‘토끼는 빨라도 굴 세 개는 있어야 비로소 죽음을 면할 수 있습니다(狡兎有三窟 僅得免其死耳/ 교토유삼굴 근득면기사이).’ 풍환은 이후에도 맹상군을 복위시키고, 설 땅에 종묘를 마련하여 평안한 만년을 보내게 했다. ‘戰國策(전국책)’과 ‘史記(사기)’에 실려 전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