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1일 화요일

새옹지마ㅣ塞翁之馬

새옹지마ㅣ塞翁之馬

새옹지마ㅣ塞翁之馬

○ 변방(邊方)에 사는 노인(老人) 새옹의 말

○ 塞(변방 새) 翁(늙은이 옹) 之(갈 지) 馬(말 마)

변방(邊方)에 사는 노인(老人)의 말이라는 뜻으로,①세상만사(世上萬事)는 변화(變化)가 많아 어느 것이 화(禍)가 되고, 어느 것이 복(福)이 될지 예측(豫測)하기 어려워 재앙(災殃)도 슬퍼할 게 못되고 복도 기뻐할 것이 아님을 이르는 말\u3000②인생(人生)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늘 바뀌어 변화(變化)가 많음을 이르는 말

중국 국경 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이 기르던 말이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도망쳤습니다. 이에 이웃 주민들이 위로의 말을 전하자 노인은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 하며 태연자약(泰然自若)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도망쳤던 말이 암말 한 필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주민들은 “노인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하며 축하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이게 화가 될지 누가 압니까?” 하며 기쁜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낙마하여 그만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다시 위로를 하자 노인은 역시 “이게 복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오.” 하며 표정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북방 오랑캐가 침략해 왔습니다. 나라에서는 징집령을 내려 젊은이들이 모두 전장에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진 까닭에 전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귀마방우ㅣ歸馬放牛

귀마방우ㅣ歸馬放牛

귀마방우ㅣ歸馬放牛

○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왔음

○ 歸(돌려 보낼 귀) 馬(말 마) 放(놓을 방) 牛(소 우)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왔음. 전쟁에 사용할 말과 소를 숲이나 들로 돌려 보내어 다시 쟁기나 수레를 끌게 하는 것을 이르는 말

상서(尙書) 무성(武成)편은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상(商)나라의 주임금을 쳐부수고 나라를 잘 다스리게 된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임금은 아침에 주(周)나라로부터 출발하여 상(商)나라를 치러 갔었다. 그 네쨋달 초사흗날 왕은 상나라로부터 와서 풍(豊)에 이르러 무력(武力)을 거두고 문교(文敎)를 닦아, 말은 화산의 남쪽 기슭으로 돌려 보내고 소는 도림의 들에 풀어놓아(歸馬于華山之陽, 放牛于桃林之野), 천하에 다시 쓰지 않을 것을 보이었다.

귤화위지ㅣ橘化爲枳

귤화위지ㅣ橘化爲枳

귤화위지ㅣ橘化爲枳

○ 귤이 변하여 탱자가 되었다

○ 橘(귤 귤) 化(화할 화) 爲(될 위) 枳(탱자 지)

귤이 변하여 탱자가 되었다. 경우에 따라서 사람의 성질도 변함을 뜻한다.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안영(晏嬰:晏子는 경칭)은 중국 역사상 드물게 보는 명 재상(宰相)이다. 세 명의 왕(靈公·莊公·景公) 밑에서 재상을 지냈지만 절검(節儉)과 역행(力行)으로 일관하였다. 그는 재상이 된 뒤에도 밥상에는 고기 반찬을 올리지 않았고 아내에게는 비단옷을 입히지 않았고, 조정에 들어가면 임금께서 묻는 말에 대답하되 묻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았으며, 스스로의 품행을 조심하였다. 또한 유창(流暢)한 달변(達辯)과 임기응변(臨機應變)으로도 유명하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해, 초(楚)나라의 영왕(靈王)이 그를 초청하였다. 초(楚)나라 영왕은 인사말을 끝내기가 바쁘게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소? 하필 경(卿)과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낸 이유가 뭐요?" 안영의 키가 작은 것을 비웃는 말이었다. 초나라 왕은 당시 제나라를 우습게 보았기 때문에 이런 심한 농담을 함부로 해댔다. 안영은 서슴지 않고 태연히 대답하였다. "그 까닭은 이러하옵니다. 우리 나라에선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 골라서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즉,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고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데, 신(臣)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초나라로 오게 된 것이옵니다."

안영의 능수능란(能手能爛)한 말솜씨에 기세가 꺾인 영왕은 은근히 부아가 끓어올랐는데, 마침 그 앞으로 포리(捕吏)가 제나라 사람인 죄인을 끌고 가자 영왕은 안영에게 들으라고 큰소리로 죄인의 죄명을 밝힌 다음, "제나라 사람은 도둑질을 잘하는군." 안영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가 듣기로는 귤이 회남(淮南)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淮北)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고 들었습니다嬰聞之 橘生淮南則爲橘 生于淮北爲枳(영문지 귤생회남즉위귤 생우회북위지).

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과실의 맛은 다릅니다葉徒相似 其實味不同(엽도상사 기실미부동). 그러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물과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所以然者何 水土異也(소이연자하 수토이야). 지금 백성들 중 제나라에서 나고 성장한 자는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나라로 들어오면 도둑질을 합니다. 초나라의 물과 땅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잘하게 하는 것입니다." 왕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성인(聖人)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하오. 과인(寡人)이 오히려 부끄럽군요." 제나라 출신의 죄수를 안영에게 보여 줌으로써 안영의 명성을 눌러 보려던 초왕의 계획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언중유골ㅣ言中有骨

언중유골ㅣ言中有骨

언중유골ㅣ言中有骨

○ 말 속에 뼈가 있다, 드러나지 않는 속뜻이 있다.

○ 言(말씀 언) 中(가운데 중) 有(있을 유) 骨(뼈 골)

말이 나오는 입이 모든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라고 口禍之門(구화지문)이라 했다. 말조심을 하라는 대표성어로 잘 알려졌다. 항상 몸가짐을 바로 해서 다섯 왕조의 재상을 지낸 馮道(풍도)의 舌詩(설시)에서 유래했다. 우리의 속담은 혀를 대상으로 가르친다. ‘사람의 혀는 뼈가 없어도 사람의 뼈를 부순다’는 말랑한 혀에서 내뱉은 말이 다른 사람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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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의 뜻을 그대로 옮겨 속담처럼 말 속에 뼈가 있다는 표현으로도 많이 쓰인다. 상대방의 허물이나 과실을 명백하게 지적하지 않고 에둘러 말하는 표현방식으로, 명백하게 지적할 때보다 효과가 크다. 이처럼 언중유골의 표현을 써서 상대방의 급소를 찌르는 말을 담언미중(談言微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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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으므로 항상 조심은 하되 직설적이 아니고 속에 담는 경우가 있다. ‘말 속(言中)에 뜻이 있고 뼈가 있다(有骨)‘고 겉에 드러나지 않는 숨은 뜻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속담을 한역한 것으로 보이지만, 번역서에 나타나지 않고 고전에서도 쓰임새가 적어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달걀에도 뼈가 있다는 鷄卵有骨(계란유골)은 비슷한 형식이라도 뜻은 다르다. 일이 안 풀리는 사람에게는 순조로운 일을 할 때에도 뜻밖의 장애가 생긴다는 黃喜(황희) 정승의 고사에서 왔다.

말 속에 뼈가 있어도 또 악의가 있어도 해칠 정도까지는 아니다. 이보다 심한 정도의 성어도 많다. 唐(당)나라 간신들의 행위에서 비롯됐다.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다가 돌아서서는 눈치 못 채게 공격하는 李林甫(이임보)의 口蜜腹劍(구밀복검)이다. 부드러운 솜 안에 날카로운 바늘을 감춘 綿裏藏針(면리장침)도 마찬가지다. 이보다 앞서 李義府(이의부)는 겉으로는 온화하게 웃으면서 태도가 겸손했지만 속으로는 해칠 칼을 숨기는 笑裏藏刀(소리장도)의 재주가 있었다.

무계지언ㅣ無稽之言

무계지언ㅣ無稽之言

무계지언ㅣ無稽之言

○ 전혀 근거가 없는 엉터리 이야기

○ 無(없을 무) 稽(상고할 계) 之(갈 지) 言(말씀 언)

말이나 행동 따위가 참되지 않고 터무니없을 때는 莊子(장자)에 나오는 荒唐無稽(황당무계)란 말을 쓴다. 이처럼 유례를 찾을 수 없고 황당한 이야기를 할 때 이 성어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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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의 기록 書經(서경)에 이 말이 등장한다. 항상 숭상해야 한다고 尙書(상서)라고도 하는 서경은 三經(삼경)이나 五經(오경)에 꼭 들어갈 정도로 중요시했다. 제일 먼저 나오는 虞書(우서)의 大禹謨(대우모) 편에 舜(순)임금이 禹(우)에게 임금을 맡기를 바라면서 대담하는 내용에서 유래한다. 大禹(대우)는 우가 순의 신하로 있을 때 높여서 부른 말이라 한다. 순임금이 믿음을 이루고 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우가 홍수를 다스린 공적에 힘입은 것이라 치하했다. 그러면서 나라일은 부지런하고 집안에서는 검약하며 스스로 만족하거나 뽐내지 않았고 교만하지 않으니 천하에 공을 겨룰 자가 없어 왕을 맡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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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부한다.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기만 하고 도를 지키려는 마음은 극히 미약한 것이니 정신을 집중하여 그 중심을 진실하게 잡아야 하오. 근거 없는 말은 듣지 말며, 상의하지 않은 계책은 쓰지 말아야 하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無稽之言勿聽 弗詢之謀勿庸/ 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 윤집궐중, 무계지언물청 불순지모물용).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가 근거 없는 말을 믿고 그대로 따르면 큰 피해가 따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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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토중래ㅣ捲土重來

권토중래ㅣ捲土重來

권토중래ㅣ捲土重來

○ 흙먼지를 말아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온다

○ 捲(걷을 권) 土(흙 토) 重(무거울 중) 來(올 래)

흙먼지를 말아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온다. 한 번 실패한 사람이 세력을 회복해서 다시 공격(도전)해 온다는 말

항우는 키가 8척이고 힘이 장사이며 재주가 뛰어나 사람들이 그를 모두 존경하며 두려워했다. 처음에 항우는 군사 8천 명을 일으켜 서쪽 진나라로 진격했다. 그러면서 점차 세력을 키워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천하 주인이 되었다. 유방과의 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듭했지만 마지막 해하 전투에서 한나라 군사에게 겹겹이 포위된 채, 곤경에 빠졌다. 그는 죽을힘을 다해 포위망을 뚫고 남쪽 오강으로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군사들이 모두 죽고 남은 건 오직 스물여덟 명뿐이었다. 이때 오강 정장이 배를 강변에 대고 항우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어서 배에 오르십시오! 강동 지방이 땅은 작으나 사방 천 리나 되고 수십만 명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서 왕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끌면 한나라 군사들이 쫓아와 강을 건널 수 없으니 서두르십시오!”

항우는 이를 거절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늘이 나를 보살피지 않고 멸하고자 하는데 강은 건너 무엇 하오? 강동 젊은이 8천 명과 함께 서쪽으로 왔으나 지금은 거의 돌아오지 못했소. 강동의 부모 형제 들이 나를 가엾게 여겨 왕으로 섬긴들 무슨 낯으로 그들을 대하겠소? 또 그들이 탓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 마음이 부끄럽지 않겠는가?”

그러고는 남은 군사들과 끝까지 용맹스럽게 싸우다 자결했다. 그때 항우 나이는 서른한 살이었다. 훗날, 당나라 말기 유명한 시인 두목이 항우의 장렬한 최후를 안타깝게 여겨 시로 읊었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으니

勝敗兵家事不期

수치를 안고 치욕을 참는 것이 대장부이건만

包羞忍耻是男兒

강동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으니

江東子弟多才俊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왔을지 어찌 알겠소

捲土重來未可知

여기에서 마지막 구절 ‘권토(捲土)’는 군대가 말을 달려 전진할 때, 땅을 말면서 올라가는 듯 보이는 흙먼지를 말한다. 따라서 ‘권토중래(捲土重來)’는 “한 번 졌다가 세력을 회복하여 다시 쳐들어온다”라는 뜻으로,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을 빗대는 말이다.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내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 당신의 사랑이 쓰러지는 나를 일으킵니다.

내게 용기, 위로, 소망을 주는 당신. 내가 나를 버려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당신.

내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는지, 나는 정말 당신과 함께 할 자격이 없는데, 내 옆에 당신을 두신 신에게 감사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커다란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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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생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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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각괘서ㅣ牛角掛書

우각괘서ㅣ牛角掛書

우각괘서ㅣ牛角掛書

○ 쇠뿔에 책을 걸다, 열심히 공부하다.

○ 牛(소 우) 角(뿔 각) 掛(걸 괘) 書(글 서)

소의 뿔에 책을 걸어 놓는다는 뜻으로,소를 타고 독서(讀書)함을 이르는 말. 즉, 시간(時間)을 아껴 오로지 공부하는 데 힘쓰는 태도(態度)를 비유(比喩ㆍ譬喩)함

반딧불과 눈빛으로 책을 읽었다는 螢窓雪案(형창설안)이나 잠을 쫓기 위해 머리카락을 매달고 넓적다리를 찌르는 懸頭刺股(현두자고), 마당에 널어놓은 보리가 소나기에 떠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었다는 高鳳流麥(고봉유맥)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성어에 못지않게 쇠뿔(牛角)에 책을 건다(掛書)는 이 말은 길을 가면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李密(이밀, 582~618)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이밀은 隋(수)나라 때의 명문가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포부가 커 천하를 구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처음 음덕으로 煬帝(양제, 煬은 녹일 양)의 하급관리로 있다가 병으로 사직하고 고향에서 독서에 전념했다. 어느 때 평소 존경하던 학자 包愷(포개)가 살고 있는 곳을 알아내고 먼 길을 가면서도 책을 읽을 방법을 찾다가 묘안을 떠올렸다.

먼저 갯버들을 뜯어 안장을 엮은 뒤 소의 등에 얹고, 양 뿔에 읽던 한서 책을 걸고서는 가면서 책을 읽었다(以蒲韉乘牛 掛漢書一帙角上 行且讀/ 이포천승우 괘한서일질각상 행차독). 蒲는 부들 포, 韉은 언치 천. 한 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책을 읽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 때 길을 지나던 재상 楊素(양소)가 보고 기이하게 여겨 무슨 책을 보고 있느냐고 물은 뒤 자신의 아들과 교유하도록 했다. 歐陽修(구양수) 등이 엮은 ‘新唐書(신당서)’의 이밀전에 실려 전한다.

이밀의 후일은 그러나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양소의 아들 밑에 모사로 들어갔다가 계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반란 집단에 가담하게 되었고, 唐(당)나라에 귀순한 뒤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가 결국 36세 되는 해 살해되고 말았다. 시간을 아껴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한 결과가 허무하다. 학문 외의 세상 흐름에 너무 무심하고 자기 길만 옳다고 여긴 결과가 아니었을까.

십양구목ㅣ十羊九牧

십양구목ㅣ十羊九牧

십양구목ㅣ十羊九牧

○ 양 열 마리에 목동이 아홉

○ 十(열 십) 羊(양 양) 九(아홉 구) 牧(칠 목)

양 열 마리에 목자(牧者)는 아홉 사람이나 된다는 뜻으로, 국민(國民)에 비해 공무원(公務員)이 많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하여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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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어는 隋(수)나라 초기 楊尙希(양상희)라는 신하가 왕에게 말한 내용에서 나왔다. 중국은 천하를 통일한 秦(진)나라 때부터 지방 행정조직이 州郡縣(주군현)의 삼단계로 되어 있었다. 이것이 너무 많다면서 양상희가 文帝(문제)에게 상주했다. 지금의 정부조직은 옛날보다 배가 늘어나 백리가 안 되는데도 여러 현이 병존하고, 천호가 되지 않는 곳도 2개 군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러니 관리가 배가 되어 세금을 축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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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은 적은데 벼슬아치는 많은 것이 바로 양은 열 마리인데 목동이 아홉 명이나 되는 격입니다(所謂民少官多 十羊九牧/ 소위민소관다 십양구목). 唐(당)나라 때 魏徵(위징) 등이 편찬한 隋書(수서) 양상희 열전에 실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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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루담제ㅣ上樓擔梯

상루담제ㅣ上樓擔梯

상루담제ㅣ上樓擔梯

○ 다락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우다.

○ 上(윗 상) 樓(다락 루) 擔(멜 담) 梯(사다리 제)

南朝(남조) 송나라의 문학가 劉義慶(유의경)이 쓴 일화집 ‘世說新語(세설신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東晋(동진)의 8대 왕 簡文帝(간문제) 때의 일이다. 정치가이자 장군인 桓溫(환온)이란 사람이 蜀(촉)을 평정한 뒤로 더욱 세가 막강해지자 왕이 견제하기 위해 학식이 뛰어난 殷浩(은호)에 중책을 맡겼다. 둘은 죽마고우였으나 왕의 의도대로 사사건건 대립하는 정적이 됐다.

은호가 호족을 막기 위해 출병했다가 말에서 떨어져 참패하자 환온이 규탄상소를 올려 귀양가게 되었다. 은호가 왕을 원망하며 말했다. ‘사람을 백 척 다락에 올라가게 해놓고 사다리를 치워버리는구나(上人箸百尺樓上 儋梯將去/ 상인착백척루상 담제장거).’ 우리 속담을 모은 ‘松南雜識(송남잡지)’에는 같은 뜻으로 登樓去梯(등루거제)라 쓰고 있다.

적을 유인하여 사지에 몰아넣은 뒤 주도권을 잡는 上屋抽梯(상옥추제)는 三十六計(삼십육계) 중의 계책이지만 실제 諸葛亮(제갈량)을 다락에 올려놓고 계책을 구하는 劉琦(유기)의 이야기가 ‘三國志(삼국지)’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