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1일 금요일

금의상경ㅣ錦衣尙褧

금의상경ㅣ錦衣尙褧

금의상경ㅣ錦衣尙褧

○ 비단옷을 입고 기운 옷을 덧입는다

○ 錦(비단 금) 衣(옷 의) 尙(오히려 상) 褧(홑옷 경)

비단옷을 입고 기운 옷을 덧입는다는 뜻으로,군자(君子)는 미덕(美德)이 있어도 이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음을 비유적(比喩的)으로 이르는 말

비단옷이 너무 화려하여 비단옷을 입을 때는 그 위에 褧衣(경의)를 걸쳐 입어 지나치게 화려한 느낌이 들지 않게 함. 선비가 내면에 높은 학식과 덕망을 갖추었더라도 남 앞에서 가볍게 이를 뽐내거나 드러내서는 안 됨을 비유함.

인생조로ㅣ人生朝露

인생조로ㅣ人生朝露

인생조로ㅣ人生朝露

○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이 짧고 덧없다

○ 人(사람 인) 生(날 생) 朝(아침 조) 露(이슬 로)

인생이 헛되고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은 유독 동양에 많다. 한 지역을 30년 동안 다스리며 부귀영화를 누렸다가 깨어 보니 잠깐 동안의 잠결이었다는 南柯一夢(남가일몽)이 그렇고 낮에 노동하는 인부가 꿈속에서는 왕후가 되는 役夫夢(역부몽)이 그렇다. 모두가 一場春夢(일장춘몽)이다.

사람의 생(人生)은 덧없는 아침 이슬(朝露)과 같다는 시적인 표현은 삶의 덧없음을 잘 표현했다. 이국 땅에서도 꺾이지 않은 절개로 모두의 우러름을 받았던 중국 漢(한)나라 武帝(무제) 때의 장군 蘇武(소무, 기원전 140~80)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왕의 명을 받고 匈奴(흉노)에 사신으로 갔을 때 그들의 내분에 휘말려 우두머리 單于(선우, 홑 單은 오랑캐이름 선)의 포로가 되었다. 아무리 회유해도 복속하지 않는 소무에게 선우는 ‘숫양이 새끼를 낳으면 귀국 시키겠다’며 멀리 北海(북해, 바이칼호)로 보내 19년간 유폐시켰다. 식량도 주지 않아 들쥐와 풀뿌리로 연명했다.

소무와 절친했던 무장 李陵(이릉)은 그즈음 흉노를 정벌하러 왔다가 8만의 대군에게 포위되어 항복하고 그곳서 살고 있었다. 司馬遷(사마천)이 변호해 주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宮刑(궁형)을 받게 된 바로 그 사람이다. 투항이 부끄러워 찾지 않던 이릉이 선우의 명으로 소무에게 와서 말한다.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다고 하지 않던가, 덧없는 인생 어찌하여 자신을 이렇게 괴롭히고 있는가(人生如朝露 何久自苦如此/ 인생여조로 하구자고여차).’ 고생만 하다 죽게 될 친구를 위해 간곡히 회유했으나 소무가 꿈쩍도 않자 충절에 감동한 이릉은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後漢(후한)의 班固(반고)가 20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 ‘漢書(한서)’에 실려 있다.

소나기의 유래

소나기의 유래

소나기의 유래

옛날에 한 스님이 무더운 여름날 동냥으로 얻은 쌀을 자루에 짊어지고 가다 큰 나무 그늘에서 쉬어가게 되었는데, 때 마침 농부 한 사람이 소로 논을 갈다가 그 나무 그늘에 다가와 함께 쉬게 되었습니다.

‘곧 모를 내야 할 텐데 비가 안 와서 큰일이네요. 날이 이렇게 가물어서야, 원.‘

농부가 날씨 걱정을 하자 스님은 입고 있던 장삼을 여기저기 만져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해지기 전에 비가 내릴 겁니다.”

그러나 농부는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에이, 스님 농담도 잘 하시는군요. 아, 이렇게 쨍쨍한 날 무슨 비가 온단 말입니까?”

“두고 보시지요. 틀림없이 곧 비가 올 겁니다.”

스님은 비가 온다고 하고, 농부는 비가 오지 않는다며 서로 제 말이 옳다고 우기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럼, 어디 내기를 합시다. 스님 말씀대로 해 지기 전에 비가 오면 저 소를 드리지요.”

농부는 비와 관련된 농사일에 오랜 경험이 있는지라 날씨에 자신하며 소를 걸고 내기를 제안했습니다.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소까지 걸었으니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좋습니다. 소승은 가진 게 이 쌀밖에 없으니, 지면 이 자루에 든 쌀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스님도 스님대로 자신을 가지며 하루 종일 동냥한 쌀을 모두 내놓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고 나서 농부는 다시 논을 갈고 스님은 나무 밑에서 한참을 쉬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른 하늘에 천둥이 쳤습니다. 곧이어 시커먼 비구름이 눈 깜짝할 사이에 뭉게뭉게 모여 들더니 곧 장대 같은 빗줄기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농부는 비에 흠뻑 젖어 소를 몰고 나무 밑으로 왔습니다. 농부는 내기에서 진 것보다 농사일에 도움이 되는 비가 내려 소를 잃게 됐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좋아했습니다.

“스님, 참으로 용하십니다. 갑자기 비가 올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 예. 소승이 입고 있던 옷을 만져보고 알았지요.”

“예? 옷을 만져보고 어떻게 알지요?”

“네, 소승의 옷이 눅눅해지는 걸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소승들은 빨래를 자주 못 하니까 늘 옷이 땀에 젖어 있지요. 땀은 곧 소금이니, 물기가 닿으면 눅눅해지는 건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아까 소승의 장삼을 만져보니 몹시 눅눅했는데, 이것은 공기속에 물기가 많다는 증거이므로 곧 비가 오리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 그런 이치가 숨어 있었군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주먹구구식으로 제 경험만 믿고 큰 소리를 치다가 보기 좋게 지고 말았습니다. 약속대로 소를 드리겠습니다. 몰고 가시지요.”

농부가 아깝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스님은 껄껄 웃으면서 소고삐를 잡았다가 다시 농부에게 넘겨주며...

“소승에게 이 소는 아무 소용이 없지만 농부님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까? 농사짓는 일에 소만큼 큰일을 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이 소를 드릴 터이니 이번 일을 교훈삼아 농사나 잘 지으십시요.”

스님이 떠나자마자 장대같이 쏟아지던 비가 뚝 그치고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이 하늘도 금세 맑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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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있은 뒤로부터 여름날에 갑자기 쏟아지다가 뚝 그치는 비를 농부가 소를 걸고 내기를 해서 생겨난 비라 하여 소내기라고 불리었는데 변형되어 오늘날 소나기라고 불리게 된 것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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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에는 책이 있다‘ 중-

계륵ㅣ鷄肋

계륵ㅣ鷄肋

계륵ㅣ鷄肋

○ 먹자니 먹을 것이 별로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닭갈비

○ 鷄(닭 계) 肋(갈빗대 륵)

먹자니 먹을 것이 별로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닭갈비라는 뜻으로 ① 쓸모는 별로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사물의 비유. ② 닭갈비처럼 몸이 몹시 허약함의 비유

삼국 시대로 접어들기 1년 전(219)인 후한(後漢) 말의 일이다. 위왕(魏王) 조조(曹操)는 대군을 이끌고 한중(漢中)으로 원정을 떠났다. 익주益州:사천성(四川省)을 차지하고 한중으로 진출하여 한중왕을 일컫는 유비(劉備)를 치기 위해서였다.

유비의 군사는 제갈량(諸葛亮)의 계책에 따라 정면 대결을 피한 채 시종 보급로 차단에만 주력했다. 배가 고파 도망치는 군사가 속출하자 조조는 어느 날, 전군(全軍)에 이런 명령을 내렸다.

"계륵(鷄肋)!"\계륵?\ 모두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주부(主簿) 벼슬에 있는양수(楊修)만은 서둘러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한 장수가 그 이유를 묻자 양수는 이렇게 대답 했다."닭갈비는 먹자니 먹을 게 별로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한중 역시 그런 닭갈비 같은 땅으로 생각하고 철군(撤軍)을 결심하신 것이라오."과연 조조는 며칠 후 한중 으로부터 전군을 철수시키고 말았다.

동상이몽ㅣ同床異夢

동상이몽ㅣ同床異夢

동상이몽ㅣ同床異夢

○ 같은 침상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

○ 同(한가지 동) 床(평상 상) 異(다를 이) 夢(꿈 몽)

같은 침상(寢床)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①겉으로는 같이 행동(行動)하면서 속으로는 각기 딴 생각을 함을 이르는 말 ②비유적(比喩的)으로, 같은 입장(立場), 일인데도 목표(目標)가 저마다 다름을 일컫는 말이다.

같은 잠자리에서 다른 꿈을 꿈.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 속으로 딴생각을 가짐. 서로 같은 처지에 있으면서도 그 생각이나 이상이 다르거나 겉으로는 함께 행동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갖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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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床)은 평상 또는 잠자리를 가리킨다. 예로부터 침대를 써왔던 중국에서는 나무로 다리를 세우고 그 위에 널빤지를 대어 잠자리로 이용하였는데 이를 상(床)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처럼 온돌방 문화가 자리잡은 경우에는 방바닥 잠자리를 상(床)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기상(起床)이라 하고, 병자가 앓아 누운 자리를 가리켜 병상(病床)이라고 한다. 동상(同床)이란 잠자리를 같이 하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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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전심ㅣ以心傳心

이심전심ㅣ以心傳心

이심전심ㅣ以心傳心

○ 마음이 통하고, 말 하지 않아도 의사가 전달됨

○ 以(써 이) 心(마음 심) 傳(전할 전) 心(마음 심)

석가(釋迦)와 가섭(迦葉)이 마음으로 마음에 전한다는 뜻으로, ① 말로써 설명(說明)할 수 없는 심오(深奧)한 뜻은 마음으로 깨닫는 수밖에 없다는 말 ② 마음과 마음이 통(通)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의사(意思)가 전달(傳達)됨

어느 날 석가는 제자들을 아주 신령스러운 산으로 불러 모았다. 제자들이 모였는데도 석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다가 연꽃 한 송이를 집어 들었다. 석가는 연꽃을 손으로 살며시 비틀었다. 제자들은 말 없는 석가의 행동을 보고 눈만 껌벅였다. 석가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했는데 제자 중 한 명인 가섭은 빙긋이 미소를 지었어.

“내 뜻을 알겠느냐?”

가섭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석가가 가섭에게 말했다.

“내가 마음으로 전하는 뜻을 너만이 알고 있구나. 내 진리를 너에게 주마.”

석가는 진리란 말이나 책에만 의존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는 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석가는 이렇게 이심전심으로 제자들에게 불법을 전하곤 했다고 한다.

일일삼추ㅣ一日三秋

일일삼추ㅣ一日三秋

일일삼추ㅣ一日三秋

○ 하루가 삼 년 같다

○ (한 일) 日(날 일) 三(석 삼) 秋(가을 추)

하루가 삼 년 같다는 뜻으로, ①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사모(思慕)하는 마음이 간절(懇切)함을 이르는 말. ②뜻대로 만날 수 없는 초조(焦燥)함을 나타내는 말.

하루가 삼 년 같다. 매우 지루하거나 애를 태우며 기다림. 하루만 만나지 않아도 아홉 달이나 만나지 않은 것같이 생각된다. 사람을 사모하는 마음이 대단히 간절함. 一日千秋(일일천추).

春秋時代(춘추시대)의 민요를 모은 ‘詩經(시경)’에 이 말이 처음 등장한다. 나라 일로 멀리 타국에 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의 마음을 노래한 ‘王風(왕풍)’ 采葛(채갈)편에서다. 풍채 采(채)는 캔다는 採(채)의 뜻도 있다. 임을 기다리는 것은 하루가 마치 三秋(삼추)와 같이 세월이 더디 간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다. 삼추는 孟秋(맹추, 음력 7월), 仲秋(중추, 8월) 季秋(계추, 9월)의 석 달을 말한다고 하고, 가을이 세 번이므로 9개월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곡식은 1년에 가을에 한 번 익으므로 삼추는 3년이라고 해석한다. 어쨌든 기다리는 세월은 길게만 느껴지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전문은 짤막하다. ‘칡 캐러가세, 하루를 못 보면 석 달이나 된 듯(彼采葛兮 一日不見 如三月兮/ 피채갈혜 일일불견 여삼월혜), 쑥 캐러가세, 하루를 못 보면 아홉 달이나 된 듯(彼采蕭兮 一日不見 如三秋兮/ 피채소혜 일일불견 여삼추혜), 약쑥 캐러가세, 하루를 못 보면 삼년이나 된 듯(彼采艾兮 一日不見 如三歲兮/ 피채애혜 일일불견 여삼세혜).’

하루를 보지 못하는 것이 세 가을만 같다. 하루를 보지 못하는 것이 세 해만 같다. ‘一日三秋(일일삼추), 一日如三秋(일일여삼추), 一刻如三秋(일각여삼추), 一日千秋(일일천추)’ 등이 갈라져서 나왔다.

당국자미ㅣ當局者迷

당국자미ㅣ當局者迷

당국자미ㅣ當局者迷

○ 담당하는 사람이 더 모르다

○ 當(마땅 당) 局(판 국) 者(놈 자) 迷(미혹할 미)

요즘이야 형광등 아래가 더 밝겠지만 옛날 등잔은 받침대가 있어 그 그림자로 깜깜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도리어 대상에 대하여 잘 알기 어렵다는 비유로 ‘등잔 밑이 어둡다’란 속담이 생겼다. ‘두메 앉은 이방이 조정 일 더 잘 안다’거나 ‘도회 소식 들으려면 시골로 가라’란 말도 있다. 또 바둑이나 장기 따위를 둘 때에 구경하던 사람이 더 고수인 당사자보다 수가 잘 보여 訓手(훈수)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최고를 자부하는 사람이라도 옆에서 보면 빈틈이 있다는 성어로 當局者迷를 쓴다.

唐(당)나라 때의 元澹(원담)은 자가 行沖(행충)인데 일찍이 魏典(위전) 30편을 지어 큰 영향을 끼친 유명한 학자 다. 玄宗(현종)도 그의 학문을 아끼고 재능을 평가하여 어느 때 ‘禮記(예기)’를 유가의 경전으로 삼기위해 원담에게 상세한 교열과 주석을 가하도록 명을 내렸다.

임금의 뜻을 받은 원담은 국자감 박사들과 작업에 매달려 모두 15편으로 엮고 주석을 했다. 이것을 읽은 현종은 만족하며 반포하기 전 우승상 張說(장열, 說은 말씀 설이지만 달랠 세, 기뻐할 열도 됨)에게 의견을 구했다. 정리한 책을 읽어 본 장열은 예기는 오랜 기간 검증을 받은 판본이 있는데 새 주석본으로 대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상주했다.

현종이 이 의견을 따르자 헛고생을 하게 된 원담이 주인과 손님의 대화체로 쓴 다른 글에서 불만을 토로했다. ‘현종 황제와 장열은 모두 당사자들로서 내용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둑을 둘 때 두는 사람은 잘 모르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은 더 잘 아는 것과 같은 것이다(當局者迷, 旁觀見審/ 당국자미 방관견심).’ 이 이야기는 ‘新唐書(신당서)’ 원행충전에 나온다.

답설야중거ㅣ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ㅣ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ㅣ踏雪野中去

○ 눈 밟으며 들판을 걸어 간다

○ 踏(밟을 답) 雪(눈 설) 野(들 야) 中(가운데 중) 去(갈 거)

白凡(백범) 金九(김구) 선생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시라 하고, 1948년 남북협상 길에 38선을 넘으며 읊었다는 일화로 더욱 유명해졌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부수호란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길 걸어갈 제

함부로 흐트러지게 걷지 마라.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이

마침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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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승병장 西山大師(서산대사) 休靜(휴정)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한문학 교수들이 조사한 결과 朝鮮(조선) 순조 때 활동한 시인 臨淵(임연) 李亮淵(이양연)의 저작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서산대사로 나온 곳이 많고 시의 제목도 野雪(야설)‘이나 ’穿雪(천설)‘ 등으로 각기 나와 전문가들의 정리가 있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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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훼난파ㅣ巢毁卵破

소훼난파ㅣ巢毁卵破

소훼난파ㅣ巢毁卵破

○ 새집이 부서지면 알도 깨진다.

○ 巢(새집 소) 毁(헐 훼) 卵(알 난) 破(깨뜨릴 파)

새집이 부서지면 알도 깨진다는 뜻으로,국가(國家)나 사회(社會) 또는 조직(組織)이나 집단(集團)이 무너지면 그 구성원들도 피해(被害)를 입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엎어진 새집 밑에는 온전한 알이 없다는 覆巢無完卵(복소무완란)와 똑 같은 뜻의 이 성어는 중국 後漢(후한) 말기의 학자 孔融(공융, 153~208)과 그 자녀 이야기에서 나왔다. 孔子(공자)의 20세손이자 문필에 능하여 建安七子(건안칠자)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공융은 마지막 14대 獻帝(헌제) 때 北海(북해)에서 벼슬을 하며 학교를 세우고 유학을 가르쳤다. 당시 세력을 떨치고 있던 曹操(조조)가 일찍이 황제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야심을 간파하고 공융이 여러 번 견제하며 멀리했다. 조조도 이런 공융에게 반감을 품고 벼르고 있었다.

뒷날 조조가 劉備(유비)와 孫權(손권)을 정벌하기 위해 50만 대군을 일으키자 공융이 이를 반대하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것을 듣게 된 조조가 화가 나 조정을 비방했다는 죄목으로 그를 체포하여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공융이 잡혀가던 날 9세와 7세 된 자녀가 태연히 바둑을 두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아직 어려 큰 일이 닥칠 것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빨리 피신하라고 일렀다. 하지만 자녀들은 조금도 겁내지 않고 ‘새 둥지가 뒤집히는 판인데 어찌 알이 깨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安有巢毁而卵不破乎/ 안유소훼이란불파호)’라며 바둑을 계속했다고 한다. 조조는 공융과 함께 자녀도 둘 수 없다고 생각하고 모두 처형했다. ‘後漢書(후한서)’ 공융전에 실려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