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8일 일요일

여행

여행

여행

떠나면 만난다

그것이 무엇이건

떠나면 만나게 된다

잔뜩 찌푸린 날씨이거나

속잎을 열고 나오는 새벽 파도이거나

내가 있건 없건 스쳐갈

스카프 두른 바람이거나

모래톱에 떠밀려온 조개껍질이거나

조개껍질처럼 뽀얀 낱말이거나

아직은 만나지 못한 무언가를

떠나면 만난다

섬 마을을 찾아가는 뱃고동 소리이거나

흘러간 유행가 가락이거나

여가수의 목에 달라붙은

애절한 슬픔이거나

사각봉투에 담아 보낸 연정이거나

소주 한 잔 건넬 줄 아는

텁텁한 인정이거나

머리카락 쓸어 넘기는 여인이야

못 만나더라도

떠나면 만난다

방구석에서 결코 만날 수 없는 무언가를

떠나면 만나게 된다

산허리에 뭉게구름 피어오르고

은사시나무 잎새들

배를 뒤집는 여름날

혼자면 어떻고

여럿이면 또 어떤가?

배낭 매고 기차 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볼 일이다

-손광세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