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2일 수요일

누룽지 할머니

누룽지 할머니

누룽지 할머니

집이 시골이었던 저는 고등학교 삼 년 내내 자취를 했습니다. 월말 쯤, 집에서 보내 준 돈이 떨어지면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하곤 했어요. 그러다 지겨우면, 학교 앞에 있는 ‘밥할매집‘에서 밥을 사 먹었죠. 밥할매집에는 언제나 시커먼 가마솥에 누룽지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 하시곤 했어요.

“오늘도 밥을 태워 누룽지가 많네. 밥 먹고 배가 안 차면 실컷 퍼다 먹거래이. 이 놈의 밥은 왜 이리도 잘 타누.“

저는 돈을 아끼기 위해 늘 친구와 밥 한 공기를 달랑 시켜놓고, 누룽지 두 그릇을 거뜬히 비웠어요. 그때 어린 나이에 먹고 잠시 뒤돌아서면 또 배고플 나이잖아요.

그런데, 하루는 깜짝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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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너무 늙으신 탓인지, 거스름돈을 원래 드린 돈보다 더 많이 내 주시는 거였어요. 돈도 없는데 잘 됐다. 이번 한 번만 그냥 눈감고 넘어가는 거야. 할머니는 나보다 돈이 많으니까... 그렇게 한 번 두 번을 미루고, 할머니의 서툰 셈이 계속되자 저 역시 당연한 것처럼 주머니에 잔돈을 받아 넣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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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를 몇 달, 어느 날 밥할매 집엔 셔터가 내려졌고, 내려진 셔터는 좀처럼 다시 올라가지 않았어요. 며칠 후 조회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단상에 오르시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 하셨어요.

“모두 눈 감어라. 학교 앞 밥할매 집에서 음식 먹고, 거스름돈 잘못 받은 사람 손 들어라.“

순간 나는 뜨끔했어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다 부스럭거리며 손을 들었습니다. “많기도 많다. 반이 훨씬 넘네.“ 선생님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죠. “밥할매집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 아들에게 남기신 유언장에 의하면 할머니 전 재산을 학교 장학금에 쓰시겠다고 하셨단다. 그리고...“

선생님은 잠시 뜸을 들이셨어요.

“그 아들한테 들은 얘긴데, 거스름돈은 자취를 하거나 돈이 없어 보이는 학생들에게 일부러 더 주셨다더라. 그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그날 끓일 누룽지를 위해 밥을 일부러 태우셨다는구나. 그래야 어린 애들이 마음 편히 먹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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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데, 유난히 밥할매 집이라는 간판이 크게 들어왔어요. 나는 굳게 닫힌 셔터 앞에서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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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할머니가 만드신 누룽지가 세상에서 최고였어요.

-Twitter 글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