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5일 토요일

개구리소년 사건

개구리소년 사건

개구리소년 사건

1991년 대구에 거주하는 5명의 초등학생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후, 11년 6개월 만인 2002년 9월 유골로 발견된 사건이다.

1991년 3월 26일 당시 대구성서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우철원(당시 13세) 군을 비롯한 조호연(당시 12세)·김영규(당시 11세)·박찬인(당시 10세)·김종식(당시 9세) 등 다섯 어린이가 집 뒷편인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와룡산에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 아이들이 실종된 날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 중단됐던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해 기초의원을 선출하는 투표가 있던 날이다.

임시공휴일인 이유로 학교에 가지 않았던 어린이들은 와룡산에 오르기 전 인근 마을에 사는 학교 친구와 마을주민들에게 목격된 것을 마지막으로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실종되자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한 채 전국을 헤맸고, 개구리소년들을 주제로 한 영화와 노래가 제작되기도 했으며, 전국 초등학생들은 ‘대구 개구리친구 찾기 운동’을 펼치는 등 전 국가적인 사건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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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을 본부장으로 한 수사본부를 구성, 와룡산 일대는 물론 전국을 수색했다. 전국 새마을중앙회 등 각종 사회단체들은 700여 만 장의 전단을 전국에 뿌렸고 한국담배인삼공사와 기업체들도 담배갑과 상품에 실종 어린이들 사진을 인쇄, 수색 작업에 동참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특별지시와 현상금 4200만 원, 단일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연인원 35만 명의 수사인력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행적은 찾지 못했다. 실종 5년째인 1996년 1월에는 다섯 어린이 중 한 명이 자신의 집에 암매장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굴착기와 곡괭이 등으로 집안 화장실과 부엌 바닥을 파는 소동이 벌어졌으나, 아무런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처럼 개구리 소년들의 실종사건이 장기화되자 한때 외계인 납치설, 북한공작원 유괴설, 불치병 치료용 희생설 등 갖가지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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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실종 11년 6개월 만인 2002년 9월 26일, 4구의 유골과 신발 5켤레가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성산고교 신축공사장 뒷편 500m 떨어진 와룡산 중턱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경찰은 아이들이 길을 잃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 반면, 부검을 맡았던 법의학팀은 감정 결과 명백한 타살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이후 수사는 진척이 없었고, 범인은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사건 초기에는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을 수사본부장으로 70여 명의 수사인력이 가동됐으나,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2006년 3월에는 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1개팀, 성서경찰서 강력팀 등 18명만이 사건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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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때까지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으로 되어 있어서(현재는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개구리소년실종사건은 2006년 3월 25일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이에 개구리소년 유족들은 2005년 말부터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공소시효 연장 및 폐지를 촉구해 왔지만 공소시효 연장을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이 사건의 시효 만료 전에 통과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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