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폭, “나는 10년 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 학폭, “나는 10년 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10년 전 지방 대도시에서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해 학생 유서에 물고문과 구타, 금품 갈취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 몇 시간 전 엘리베이터에 쪼그려 앉아 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CCTV에 녹화됐다. 그걸 본 전국의 학부모들 가슴이 무너졌다. 몇 해 전 또 다른 도시에선 여중생 4명이 또래 여학생을 집단 구타한 사건이 터졌다. 얼마나 가혹하게 때렸는지 맞은 학생이 피눈물을 쏟았다. 10대 아이들의 일탈로 볼 수 없는 범죄행위였다.
2019년 교육부가 전국 초등4~고3 학생 372만명에게 학폭 경험을 물었다. 무려 6만명이 고통을 토로했다. 폭력 수위가 어른 뺨친다. 말로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것은 기본이고, 폭행과 금품 갈취처럼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례도 1000건당 1~2건에 이른다. 학교가 아니라 야수가 우글대는 정글 같다.
"학폭 피해가 아무리 극심해도 시간이 지나면 세상에서 잊힌다. 그러나 피해자도 잊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가해자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로 대중의 박수를 받게 되면 피해자는 불공평함과 억울함을 느끼고 심리적 2차 가해를 입을 수 있다. 과거엔 이를 토로할 수단이 없었지만 소셜 미디어가 ‘게임 체인저가 됐다. 몸의 상처는 나아도 심리적 타격은 아물지 않는다. 학폭 폭로의 시효가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10년 전, 20년 전 일이 어제 일처럼 퍼져나간다. 가해자가 유명 아이돌이나 걸그룹, 스타 운동선수라면 더욱 치명적이다. 학생 때 또래를 괴롭히려면 평생 두 발 뻗고 못 잘 것을 각오해야 한다.
",여자 배구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에 이어 남자 배구에서도 송명근·심경섭 선수가 잇따라 학폭 시비에 휘말렸다. 대략 10년 전 사건들이지만 죗값을 치르라는 여론이 비등하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수만 명이 몰려가 해당 선수들의 영구 제명을 요구하고 있다. 운동 꿈나무, 연예인 지망생이라면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야 할 것이다.
청소년기 폭력은 어른이 되어 겪는 것보다 더 깊고 오랜 상처를 남긴다. 어린 탓에 적절한 대응을 못 해 피해를 키운다. 학폭을 반드시 근절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가해 아이들만 탓해선 재발을 막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기 전두엽엔 충동 조절 세포를 연결해 주는 백질이 부족하다. 이로 인해 타인은 물론 훗날 자신까지 망가뜨리는 ‘중2병’을 앓는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사고 치지 않고 이 시기를 잘 넘기게 하려면 학교 당국과 사회가 힘을 합쳐 학폭의 심각성과 10년 뒤 닥칠 후과를 가르치라고 조언한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