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으로 산다는 것 11편
■ 왕으로 산다는 것 11편
조선시대 왕에 관련된 언어는 다양하다. 우선 왕이 자신을 지칭하는 언어가 있고, 신료들이 왕을 지칭하는 용어가 있다. 반대로 신료가 왕 앞에서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경우가 있고 왕이 신료들을 지칭하는 경우가 있다. 왕이 신료들을 상대로 자신을 나타내는 말은, 주로 나란 뜻으로 ‘여(余)’라는 말이었다.
왕이 신료를 부를 때는 너라는 뜻의 ‘이(爾)’를 많이 사용했다. 여와 이는 신료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대화할 때 주로 사용하였는데, 다만 대신과 2품 이상의 고위 관료들에게는 ‘경(卿)’이라는 말로 존중해주기도 했다. ‘여’ 이외에 왕이 자칭하는 용어로, ‘과인(寡人)’이나 ‘과궁(寡躬)’은 덕이 부족하다는 뜻이고, ‘과매(寡昧)’는 덕이 부족하고 사리에 어둡다는 뜻이며, ‘불체(不逮)’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왕은 군사훈련, 온천행, 선왕의 무덤 참배, 칙사 영접 등을 위해 수시로 궐 밖으로 행차하게 되는데, 이 왕의 행차에 딸리는 호위 병사들과 수행원, 그리고 의장물의 규모는 행차 목적에 따라 대가(大駕), 법가(法駕), 소가(小駕) 세 가지로 구별되었다. 대가는 왕이 중국의 칙사를 맞이하거나 종묘 사직에 친히 제사드릴 때의 행차로 가장 성대하였다.
대가 행차 때 왕은 면류관과 구장복을 착용하고 대략 1만 명 정도의 인원이 동원되었다. 대가에 비해 규모가 약간 적은 법가는 왕이 선농단, 성균관, 무과 전시 등에 임할 때의 행차였다. 이 때 왕의 복장은 원유관과 강사포였다. 소가는 가장 규모가 작은 행차였다. 주로 능에 참배하거나 평상시의 대궐 밖 행차, 또는 활쏘기를 관람할 때에 이용되었다. 이때 왕의 복장은 군사 훈련과 관련된 융복 차림이 많았다.
왕의 행차에 동원되는 의장물은 노부라고 하는데, 행차의 종류에 따라 대가노부, 법가노부, 소가노부라 하였다. 왕이 행차할 때는 반차도(班次圖)를 그려 수많은 사람들과 의장물의 자리와 순서를 미리 정하였다.
행렬의 맨 앞에는 완전 무장한 수백 명의 군사들이 행진하였다. 갑옷과 무기를 갖추고 위풍당당하게 행진하는 군사들은 왕의 행차를 보호할 뿐 아니라 국왕의 힘을 과시하는 효과를 나타냈다. 행렬의 두 번째는 화려한 깃발과 의장용 창검을 든 의장 행렬이었다. 왕권을 상징하는 옥새와 중국 천자에게서 받은 고명(誥命)을 의장 행렬에 포함시킴으로써 행차의 권위를 더욱 높였다.
행렬의 세 번째는 수십 명이 메는 수레를 탄 왕이 있었다. 왕의 수레 앞뒤에는 커다란 해가리개와 부채, 군악대를 배치하였다. 그 뒤로 종친과 문무백관이 왕을 수행하고, 행렬의 맨 뒤에는 선두와 마찬가지로 군사들이 따랐다.
행렬에서 행진하는 군사 외에 왕의 행차를 보호하기 위해 궁궐부터 목적지까지 곳곳에 매복병을 두었고 연락병들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궁궐과 왕 사이에 수시로 연락을 담당하였다. 왕은 궐 밖에서도 중요한 국정 사안을 직접 지시하고 결과를 보고받았다. 공식 행차를 마치고 환궁하면, 왕은 행차준비로 고생한 관련자들에게 상을 내리는 한편, 행차 도중 직접들은 민원들을 해결하였다. 조선시대 왕의 행차는 나라의 절대 권력자와 현장의 백성들이 직접 만나는 장이었다.
- 1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