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3일 수요일

◇ 베토벤의 연금술과 현악사중주 15번 3악장

◇ 베토벤의 연금술과 현악사중주 15번 3악장

◇ 베토벤의 연금술과 현악사중주 15번 3악장

고통은 인간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름다운 예술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5번은 고통이 어떻게 예술로 승화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베토벤이 이 곡을 완성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1825년이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몹시 고통스러워할 때였다. 오래전부터 청력이 떨어지던 귀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는 음악을 귀의 도움 없이 눈과 손만으로 해야 했다.

그런데 현악사중주 15번을 작곡하던 중 그를 괴롭히던 복통이 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그는 극심한 통증에 오랫동안 몸져누워 있어야 했다. 정말이지 이제는 죽는 것이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고통이 사라졌다.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나자 감사한 마음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는 그 감정의 파고를 타고 3악장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는 악장 앞에 “병에서 나은 환자가 신께 드리는 감사의 노래”라고 적어 넣었다. 음악에 스토리를 입힌 것이다. 이후로 그 악장을 누가 해석하고 누가 연주하든 그 헌사, 그 스토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터였다.

그러나 그것이 구속이라면 아름다운 구속이었다. 감사한 마음에 비례해 분량도 많아졌다. 다섯 개의 악장으로 이뤄진 40여 분의 곡에서 3악장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게 됐다. 귀가 들리지 않는 그는 신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소리를 넘어선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현악사중주 15번은 음악이라기보다 음악의 몸을 잠시 빌린 일종의 기도였다.

이보다 더 깊고 조화롭고 경건하고 위로가 되는 음악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3악장은 그렇게 고통을 통해 태어났다. ‘황무지’의 시인 T S 엘리엇의 말처럼, 베토벤이 말년에 작곡한 현악사중주는 “엄청난 고통 이후에 찾아온 화해와 위안의 열매”였다. 엘리엇이 ‘네 개의 사중주’라는 위대한 시를 후대에 남긴 것도 고통을 예술로 만든 베토벤의 연금술을 학습하고 사유한 결과였다.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