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5일 화요일

◇ 코로나19로 뜬 이재명

◇ 코로나19로 뜬 이재명

◇ 코로나19로 뜬 이재명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 시절에 경험했다는 얘기다. 시장이 되고 보니 어떻게 된 영문인지 매년 비슷한 개수의 가로등이 계속 고장나더라는 것이다. 가로등 유지·보수 예산도 매년 꼬박 300억원 이상이 들어갔다. 뭔가 누수가 있다고 의심한 이 지사는 가로등 예산을 25% 삭감하라고 지시했다. 그랬더니 그 이후 이상하게 25%만큼 고장이 덜 났다. 담당 공무원을 불러 예산이 줄었는데도 괜찮냐고 물었더니 “올 들어 가로등이 잘 견뎌내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시정을 꼼꼼히 들여다봤더니 곳곳에서 이런 식으로 불필요한 예산이 새어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2010년에 시장이 된 그는 전임 시 정부의 빚 6600여억원을 떠안았다. 하지만 예산을 절감하고, 각종 민영개발을 공영개발로 전환해 얻은 수익 등으로 이 빚을 다 갚았다. 빚 갚는 데 돈이 안 들자 복지로 눈을 돌려 청년배당 지급, 입영 장병 상해보험 가입, 무상교복 지급 등의 정책을 폈다. 이 청년배당이 요즘 거론되는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에 해당하는 복지정책이다. 여기에 아낀 가로등 예산 80억원이 매년 투입된다.

이제 경기지사가 된 그가 1326만 도민에게 10만원씩 재난기본소득(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광역단체에선 처음이다. 성남시에서 하던 복지를 경기도에서도 하겠다고 공약하더니 진짜로 도입한 것이다. 선별적으로 줄 것이냐, 전부 다 줄 것이냐를 놓고 논란도 크지만, 경기도는 구체적 재원 마련 방안까지 제시했고 이에 따른 증세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아껴 쓴 세금을 돌려주는 것”이라는 게 이 시장의 지론인데, 예산을 효율적으로 쓴 뒤 남은 돈을 되돌려주는 것이라면 퍼주기인들 탓할 수 있겠는가.

재난수당뿐 아니라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이 지사의 활약이 여러 차례 돋보였다. 우선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신천지 집단에 대한 강제조사를 제일 먼저 실시했다. 또 코로나19 검사를 피하던 신천지 교주 이만희의 별장까지 쫓아가 결국 검사에 응하게 만들었다. 신천지뿐 아니라 집단감염을 막기 위해 137개 종교시설에 대해 ‘밀집 이용 제한’ 행정명령을 처음 발동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PC방, 노래방, 클럽 등 3대 밀집 상업시설에 대해서도 이용 제한 조치를 내렸다. 위반할 경우 방역비에 대한 구상권까지 청구하겠다는 경고까지 내놨다. 이런 경기도의 초강수 조치들은 이후 정부와 다른 지자체들도 속속 따라했다.

이 지사는 그동안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돈키호테식 발상’이라는 비아냥을 듣곤 했다. 그랬던 그가 코로나19 국면을 계기로 ‘해결사’ 또는 ‘퍼스트 무버’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이 지사는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있어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화끈하게 내지르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그래서 늘 싸움을 몰고 다닌다는 비판도 있지만, 감염병 확산과 같은 급박한 사태에선 그런 단호함이 오히려 더 박수를 받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23일 발표된 문화일보·엠브레인퍼블릭의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이 지사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23.8%)에 이어 15.7%의 지지율로 2위를 기록했다.

이 지사는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선 무죄를 받았다가 항소심에선 당선무효형이 내려졌다. 대법원 확정 판결을 지켜봐야겠지만, 만약 결과가 좋게 나온다면 코로나19를 계기로 몸값을 키운 그가 향후 대선 국면에서 상당히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도 있으리라 본다. 나름 골수 지지층도 있고, 그동안 소원했던 친문재인계와도 간극을 좁혀가는 상태여서 언제든 치고나갈 여지가 있다. 2심 판결로 정치 인생 최악의 수렁에 빠졌던 그가 코로나19로 전혀 뜻밖의 반전을 이뤄낼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