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의 아이돌 화랑花郞 1편
■ 신라의 아이돌 화랑(花郞) 1편
‘화랑(花郞)’이라는 말은 ‘꽃처럼 아름다운 남성’이라는 뜻인데, 혹은 화판(花判)·선랑(仙郎)·국선(國仙)·풍월주(風月主)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로 조직된 ‘화랑도(花郞徒)’는 단체정신이 매우 강한 청소년 집단으로 교육적·군사적·사교 단체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화랑도’의 기능은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신라의 삼국통일 뿐만 아니라, 신라 골품제(骨品制) 사회에서의 여러 계층 간의 긴장과 갈등을 조절, 완화하는 데도 이바지하였다.
원시공동체사회에서는 촌락과 같은 지역공동체의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내부에 청소년조직과 같은 소규모 공동체가 발생해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직은 유목사회보다는 농경을 위주로 하는 농업사회에서 특히 발전하게 되는데, ‘화랑도’ 역시 신라가 고대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추어가는 과정에서 그 조직과 형태를 완성해 나갔다.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에는 이미 부족국가 단계인 삼한시대에 마을의 청소년들이 그들 고유의 집회소를 가지고 있었으며, 견디기 어려운 훈련을 통해 수련을 하고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신라는 4세기 중엽을 경계로 하여 급속히 국가체제를 정비해갔다. 따라서, 촌락 중심의 청소년조직은 그 성장·발전에 커다란 지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더욱이 중앙집권체제의 정비와 더불어 신라사회에 점차 친족을 중심으로 한 사회조직이 생성, 강화되면서 더 위축되어 갔을 것이다. 왕권이 강화되고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시행된 군현제(郡縣制)로 말미암아 점차 촌락공동체의 독자적인 청소년 조직은 중앙정부에 의해 흡수되기 시작해 이전의 청소년조직은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정부에 의해 새롭게 조직된 것이 흔히 화랑도의 전신(前身)이라 불리는 원화(源花, 原花)제도였다. 이것은 정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어여쁜 여성 두 명을 ‘원화(源花)’로 뽑아 단장(團長)을 삼고, 이를 중심으로 한 두 조직의 단체생활을 통해 뛰어난 인재를 등용하려고 한 제도였다.
처음 원화로 뽑힌 남모(南毛)와 준정(俊貞)은 무리를 3백여 명이나 모았으나, 두 여성 사이에 서로 미모를 다투며 시기하는 일이 생겨, 마침내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으로 유인해 억지로 술을 권해 취하게 한 뒤 끌어다 강물에 던져 죽여 버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결국 준정은 이 일로 인해 죽임을 당했고, 조직은 해산되고 말았다. 이처럼 원화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으니 신라정부로서는 어쨌든 인재를 양성, 확보할 다른 제도가 필요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