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 토요일

정희왕후 윤씨 1편

■ 정희왕후 윤씨 1편

■ 정희왕후 윤씨 1편

세종의 둘째 며느리이자 세조의 부인인 정희왕후 윤씨는 보통의 여자가 아니고 여장부다운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한다. 윤씨는 1428년 11살이 되던 해에 수양대군과 백년가약을 맺어 ‘낙랑부대부인’으로 봉해짐으로써 왕실의 일원이 되었다. 그때만 해도 많은 대군 부인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을 윤씨는 국모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윤씨의 앞날은 문종이 어린 단종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나고, 남편 수양대군이 조정의 실세로 등장함으로써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윤씨가 수양대군의 부인이 된 경위는 이기의 <송와잡설> 에 전해진다.

궁궐의 감찰 상궁과 보모상궁이 윤씨 집안에 수양대군에게 적합한 배후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는데, 원래 후보자는 윤씨의 언니였다고 한다. 궁중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말에 윤씨는 어머니 이씨 뒤에 숨어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감찰상궁의 눈에 띈다. 언니보다 윤씨의 자태가 더 비범한 것을 알아챈 감찰상궁 덕택으로 언니 대신 윤씨가 왕실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수양대군은 12살, 정희왕후는 11살이었다. 시아버지 세종 또한 생전에 싹싹하고 총명한 그녀를 무척 총애하였다고 한다. 맏며느리 휘빈 김씨(문종妃)에 질린 탓도 있었다.

남편 수양대군의 나이 35살 때 부엌에 있는 가마솥이 ‘징징’ 울리는 소리가 났다. 이에 ‘비파’ 라는 무당이 아내 윤씨를 찾아와 말했다. "수양대군이 39살에 등극할 징조요." 과연 4년 뒤, 수양대군은 정변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때 망설이는 수양대군에게 윤씨는 중문까지 나가 갑옷을 입혀주며 거사(擧事)를 독려했다고 한다. 원래 윤씨는 수양대군의 계획을 말리는 입장이었는데, 상황의 전개 과정을 보고, 여기서 중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거사를 부추기는 결단력을 보인 것이다. 평소에는 조용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과감한 결단력을 보이는 윤씨의 뛰어난 정치적 감각은 세조도 칭찬할 정도였다 한다.

정변에 성공한 수양대군이 단종을 상왕으로 내몰고, 1455년 조선의 제7대 임금으로 즉위하자 윤씨는 왕비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차지한 왕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윤씨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더욱이 궁궐 안에는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권씨의 원혼이 떠돌아다닌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었다. 윤씨의 어머니 이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도 현덕왕후 권씨의 원혼 때문이고, 이어서 맏아들 의경세자마저 죽자 사람들은 그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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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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