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 토요일

정희왕후 윤씨 2편

■ 정희왕후 윤씨 2편

■ 정희왕후 윤씨 2편

아들과 어머니가 연달아 죽자 윤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세조의 피부병도 좀처럼 낫지 않았다. 궁궐의 뒤숭숭한 분위기를 몰아내기 위해 윤씨는 사정전에서 효도잔치를 열기도 하고, 세자의 묘 근처에 정인사를 짓고 불공을 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 조카를 죽이고 안평대군 등 시동생을 죽였다는 죄책감은 내내 윤씨를 괴롭혔다.

윤씨가 세조의 유일한 후궁인 근빈 박씨를 박해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도, 박씨가 사육신 중 한사람인 박팽년의 누이였기 때문이었다. 근빈 박씨는 남동생이 세조에 의해 원혼이 되었으나 끝까지 세조를 섬겼고, 슬하에 덕원군과 창원군을 두었다.

1468년 9월 세조가 피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세자 광(둘째아들)이 19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예종이다. 정희왕후가 예종 때부터 섭정(攝政)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즉위할 당시 예종은 섭정이 필요한 나이가 아닌데다가, 8살 때 세자로 책봉된 후 국왕 수업을 충분히 받았기에 굳이 수렴청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예종은 신하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원만한 인물로 알려졌으나, 재위 1년 3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남으로써 별다른 치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만큼 조선시대의 왕들 중에서 우리에게 존재감이 거의 없다.

예종은 두 명의 아내와 2남 1녀의 자녀를 두었다. 첫 왕비 장순왕후 한씨는 당대의 실권자 한명회의 딸로 16살이 되던 해에 세자인 예종과 혼인하여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첫아들 인성대군을 낳은 후 곧 세상을 떠났고, 인성대군 역시 어린 나이에 죽고 말았다.

첫 부인 한씨가 죽은 후 두 번째로 맞이한 아내가 안순왕후 한씨다. 한씨는 우의정 한백륜의 딸인데, 처음부터 정비(正妃)로 간택된 것이 아니라 예종이 세자일 때 맞이한 후궁이었다. 새로 왕비가 된 한씨는 예종과의 사이에 제안군과 현숙공주를 두었지만, 예종의 요절(夭折)로 25세의 나이로 청상과부가 되고 말았다.

예종 다음의 왕위는 마땅히 예종의 둘째부인 한씨가 낳은 제안군에게 돌아가야 하지만, 대비 윤씨는 당시 4살인 제안군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리고는 죽은 의경세자(세조의 큰아들)의 맏아들 월산군은 몸이 허약하다는 이유로 제치고, 13살이 된 자산군(잘살군:성종)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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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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