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종과 환국換局 1편
■ 숙종과 환국(換局) 1편
숙종이 조선 19대 왕으로 즉위했을 때 조선은 당쟁(黨爭)이 절정에 오른 시기였고, 그만큼 신하(臣下)의 위상이 높았다. 숙종은 왕으로서 미약했던 단종이나 명종보다 불과 2살 많은 14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그럼에도 숙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사실은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다. 숙종 하면 장희빈이나 인현왕후가 먼저 떠오른다. 이 때문에 숙종에게 아마도 성숙한 왕의 이미지가 씌워졌을 수도 있다.
숙종은 어렸지만 즉위 직후부터 서인 정권의 판세를 뒤엎고 남인을 등용했다. 14세의 어린 나이였지만 숙종은 결코 신권에 휘둘리지 않았다. 오히려 정통성을 바탕으로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는 카리스마를 보였다. 어린 나이가 무색할 만큼 탁월한 정치 역량을 발휘한 것이다.
숙종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의 당쟁으로 파생된 환국(換局:정국이 바뀜)이다. 이제까지 환국은 서인과 남인의 당쟁이란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숙종의 강한 카리스마와 대담함을 보면 환국의 실질적인 주역은 숙종이었는지도 모른다. 숙종의 카리스마에는 현종의 적장자라는 정통성에서 오는 자신감도 한몫 했다.
조선시대 27명의 임금 중에서 적장자(嫡長子)가 왕위에 오른 이는 7명(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뿐이었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숙종이다. 더군다나 다른 왕들이 대부분 재위기간도 짧고 단명(短命)한 것에 비해 약 46년 동안 재위한 숙종은 정통 코스를 밟아 왕위에 오른 뒤 안정된 입지를 확보하고 많은 업적을 남겼다.
모친 명성왕후(明聖王后:현종비) 또한 청풍 김씨 명문가의 피를 이은 인물이었다. 조선시대 여러 왕비 중에는 세자빈을 지냈으나 왕후에 오르지 못한 경우나 왕후에 올랐으나 왕대비가 되지 못한 경우, 그리고 왕대비는 되었으나 세자빈은 아니었던 경우도 많았다. 그에 비해 명성왕후는 세자빈-왕비-왕대비라는 정통 코스를 밟은 유일한 왕비(王妃)였다.
이처럼 혈통 상(上) 하자도 없고 별다른 경쟁자 없이 왕세자 교육을 받으며 왕권 강화를 준비하고 있던 숙종 눈에 가장 큰 걸림돌은 당쟁(黨爭)이었다. 특히 부친 현종 재위 마지막 해에 일어난 1674년의 예송논쟁은 숙종에게 당쟁의 문제점을 확실히 인식하게 해 주었다. 숙종대의 정치는 유독 당파 간의 대립과 정치 세력의 교체, 정치적 거물의 희생 등이 난무했다. 그런데 그 중심에 당파가 아닌 숙종이 있었다.
1661년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 사이에 태어난 숙종 이순(李淳)은 외아들이었다. 누나 셋 이외에 형제가 없었다. 아버지가 후궁을 들이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유는 한 성질 하는 어머니 명성왕후 때문이었다. 숙종 이순은 어렸을 때부터 영민했으나 병약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