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나니 1편
■ 망나니 1편
TV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역사극(歷史劇)을 보면, 사형수의 목을 내리치기 전에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뿜어내면서 긴 칼을 휘두르며 한바탕 칼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그 눈에서는 한껏 살기가 번득이고, 고개를 떨군 사형수의 혼을 빼놓는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형수의 목을 단칼에 내리치는 사형집행인이 ‘망나니’이다. 이를 ‘살수(殺手)’라는 조금은 점잖은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사형은 목을 매는 교수형(絞刑)과 함께 목을 베는 참수형(斬刑)도 있었다. 그나마 신체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는 교수형에 비해 참수형이 훨씬 더 무거운 형벌이었다. 물론, 사형 집행 방식은 이 외에도 능지처사(陵遲處死), 군문효시(軍門梟示), 오살(五殺), 육시(戮屍) 등 듣기에도 섬뜩한 여러 방법이 있다. 당시 참수형을 집행하는 장소로는 지금의 노량진 건너편 노들강변의 새남터, 삼각지로터리에서 공덕동로터리 쪽으로 가면 나오는 당고개, 서소문 밖 네거리, 무교동 일대였다. 사형수라 하더라도 사형 집행은 대개 추분부터 춘분 사이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죄가 매우 중한 사형수는 ‘부대시(不待時)’라 하여 때를 기다리지 않고 판결 즉시 처형했다.
감옥에서부터 사형장까지 소달구지 적재 칸에 죄수의 양팔과 머리카락을 매단 채 압송해 온다. 죄수가 형장에 도착하면 사형집행인, 즉 망나니는 죄수의 옷을 벗기고 죄인의 두 손을 뒤로 묶은 뒤 그의 턱 밑에 나무토막을 받쳐 놓고 길다란 자루가 달린 무시무시한 칼로 목을 자른다. 때로는 상투에 줄을 매어 목을 베었는데, 이는 잘린 목을 나무에 매달아 효시(梟示)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참수를 맡은 망나니는 대개 술에 취한 채(아무래도 맨 정신으로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칼을 머리 위로 쳐들고 정신없이 춤을 추다가 흥분 상태에서 그 여세로 칼을 내리쳐 목을 벤다. 사형수의 가족이 사형 집행 당일 망나니에게 뇌물을 주지 않을 경우에 망나니는 사형수를 단칼에 죽이지 않고 일부러 여러 차례 칼을 내리쳐 죄수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반드시 그랬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고, 술에 취해 있으니 단칼에 조준해서 내려치는 것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망나니’가 되었을까? 망나니는 도부수(刀斧手) ‘회자수(劊子手)’라고도 불렸는데, 사람들의 목을 단 칼에 베어야 하는 조선시대의 망나니는 원래 사형수들이었다고 한다. 사형수가 사형수의 목을 벤다고 하니 다소 의아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18세기에 만들어진 《신보수교집록(新補受敎輯錄)》이라는 법전의 형전(刑典) 추단(推斷) 조문 중에는 행형쇄장(行刑鎖匠), 즉 참형 집행을 맡은 망나니는 사형수 중에서 자원하는 자가 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는 숙종 임금의 수교(受敎:임금이 내리는 명령)가 실려 있다. 이보다 100여 년 뒤인 고종 초기의 법률서 《육전조례(六典條例)》에도 지금의 서울구치소에 해당하는 관청인 전옥서(典獄署) 소속 행형쇄장(行刑鎖匠) 1명을 사형수 중 원하는 자를 국왕께 아뢰어 결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