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나니 2편
■ 망나니 2편
조선시대에는 사형을 집행하는 기관이 여럿이었다. 죄인의 신분과 죄목에 따라 의금부, 형조, 각 지방의 감영과 군영 등이 나누어 집행했다. 그에 따라 집행자도 여럿이었다. 원칙적으로는 군인의 임무였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다. 전옥서(典獄署)의 사형 집행자는 ‘행형쇄장(行刑鎖匠)’이라고 했는데, 사형수 내지 중죄인이 맡는 것이 관례였다. 사형을 면해 주는 대신 형 집행의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평소에는 다른 죄인과 똑같이 감옥에 갇힌 죄수 신세다. 강제는 아니고 자원을 받았다. 망나니가 되는 일, 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사람을 죽인다는 죄책감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행형쇄장이 형 집행을 거부한 사례도 있다. 처음에는 간신히 설득해서 형을 집행했지만, 두 번째는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요지부동이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신세인데도 끝까지 거부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도살업자를 불러 억지로 형을 집행하는 경우도 있다. 《승정원일기》에는 행형쇄장이 죽었으니 후임자를 구해야 한다는 기록이 종종 보인다. 사형 집행자라는 무거운 책임은 죽어야만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조선시대 내내 사형수만이 망나니 일을 전담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남겨진 기록들을 볼 때 적어도 조선후기 망나니의 기반은 사형수였음이 분명하다. 《육전조례(六典條例)》를 보면, 이들 망나니가 사용하는 칼을 ‘행형도자(行刑刀子)’라고 했는데, 칼날이 초승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중국 고대의 무기 언월도(偃月刀)와 모양이 비슷하였다. 한말에 망나니가 실제 사용했던 행형도자(行刑刀子)는 칼날의 길이가 두 자(한 자는 30.3CM) 자루 길이가 세 자 정도나 될 정도로 무겁고 길었다고 한다.
사형수에서 하루아침에 망나니로 둔갑한 그들은 비록 생을 연장할 수는 있었겠지만, 살기 위해서 칼을 든 그들의 삶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승정원일기》 숙종 2년 5월 6일자 기사에는 전옥서(典獄署) 소속 망나니 의종(義宗)이 탈옥한 사건이 실려 있다. 의종은 마적(馬賊)으로 체포되어 처형될 날 만을 기다리다가 망나니를 자원하여 사형 집행을 담당하던 인물이었다. 탈옥에 성공한 의종의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지만, 그는 과연 새 삶을 얻었을까?
비록 상대가 죄인이라고는 해도 살인을 직업으로 삼는 만큼 망나니는 사회에서 사람취급도 못 받고 천시되었다. 상당수가 사형 또는 그에 준하는 중죄를 짓고 형을 면하는 대신 망나니 일을 하는, 갈 때까지 간 막장 인생이었고 좋은 취급을 받지 못했다. 여기에 더해 망나니 본인들도 먹고 살자고 사람을 죽인다는 죄책감 때문에 정신병을 얻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이 그렇게 술에 절어 살던 이유가 술에 취하지 않으면 그 끔찍한 기억이 자주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