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3일 토요일

조선의 팜므파탈, 어우동 2편

■ 조선의 팜므파탈, 어우동 2편

■ 조선의 팜므파탈, 어우동 2편

어우동은 승문원 지사 박윤창(朴允昌)의 딸로 충청북도 음성군 음죽현 출신이다. 정확한 출생년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1440년 쯤으로 보인다. 용재총화에는 어우동(於于同), 실록에는 어을우동(於乙于同)이라 하였으며, 송계만록(松溪漫錄)과 대동시선, 해동시선, 연려실기술 등에도 어우동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야사에 의하면 어우동에게는 일찍부터 마음에 둔 이웃집 남자가 있었지만, 그 남자의 집안이 한미하여 부모가 반대하였고, 그녀는 눈물의 이별을 했다. 그 뒤 집안에서 정해준 종실인 태강수 이동(泰康守 李仝)과 결혼하여 외명부의 품계인 혜인(惠人)으로 봉작되었다. 이동은 세종의 둘째 형이자 태종의 차남인 효령대군의 다섯째 아들 영천군의 서자였다. 그러나 그 후 어우동의 이름은 왕실 족보에서 삭제되었고, 역시 음행을 저질렀던 친정어머니 정씨 역시 친정과 시댁의 족보에서 삭제되었다. 어우동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 박윤창도 족보에서 삭제되어 자세한 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어우동은 태강수와의 사이에서 딸만 한명 얻었을 뿐 아들을 낳지 못하였다. 후사를 잇지 못한다는 이유로 어우동은 시댁의 무시와 냉대를 견뎌야만 했고, 결국 딸과 함께 시댁에서 쫓겨났다. 그녀가 쫓겨난 이유로 남편 태강수가 연경비라는 기생(첩)을 사랑해서 억지로 어우동의 허물을 잡아 쫓아냈다는 설과 어우동이 자기 집에 은그릇을 만들려고 찾아온 은장이와 간통을 해서 남편 태강수가 쫓아냈다는 설이 있다.

『어우동은 집안에 들인 은장이를 유혹하여 수시로 간통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태강수 이동이 분노하여 내쫓았다고 한다. 한데 종실의 사무를 관장하던 종부시(宗簿寺)에서는 사실 태강수가 종친으로서 첩을 사랑하다가 아내의 허물을 들추어 제멋대로 버렸다며 임금에게 고발했다.』 - 《조선왕조실록》 1480년(성종11년) 10월 18일 -

이로 보아 어우동이 은장이와 간통했다는 혐의는 아내를 쫓아내기 위한 무고였을 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태강수 이동은 기생에게 빠져 함부로 부인을 버린 죄로 삭탈관직을 당했다. 성종이 내린 판결에 따르면 이때 어우동의 간통사건은 무죄이고, 기생을 사랑한 남편 이동의 잘못으로 여겨져 이혼은 무효화된 것이다. 부인과 재결합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이동은 거부했다. 하지만 종친이었던 이동은 3개월 뒤 관직을 되찾았고, 어우동은 법적으로는 태강수의 부인이었지만 버림받은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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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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