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려의 ‘형사취수제兄死取嫂制’ 2편
■ 고구려의 ‘형사취수제(兄死取嫂制)’ 2편
분노한 왕후 우씨는 둘째 동생인 연우를 찾아갔다. 연우는 왕위 계승서열에서 밀렸기 때문에, 당연히 고국천왕 이후 정국을 논의하자는 우왕후의 제안에 동의했고, 우왕후는 연우에게 곧바로 고국천왕이 승하했음을 알렸다. 그러자 연우는 더욱 예를 갖추어 왕후 우씨를 대접하였고, 연우의 대접에 흡족한 우씨는 연우를 자신의 정치적 동반자로 선택했다.
고국천왕의 사후 대책을 미리 준비한 듯한 우왕후는 어쩌면 고국천왕이 죽을 것을 예감하고 연우와 사전에 어느 정도 교감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고국천왕이 죽기 이전부터 연우와 어느 정도 정치적 · 육체적으로 합의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발기는 그저 명분을 만들기 위해 형식적으로 방문했을 지도 모른다. 우왕후는 자신이 계속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형사취수제’를 이용하여 왕후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거기에 덧붙여 왕위계승 1순위인 발기에 비해 서열에서 밀려 정통성이 떨어지는 연우를 차기 국왕으로 만들어 준다면, 우왕후 자신이 권력을 행사하기 좀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왕이 돌아가셨으나 아들이 없으므로 발기가 연장자로서 마땅히 뒤를 이어야 하겠으나, 신첩에게 다른 마음이 있다고 하면서 난폭하고 거만하며 무례하여 당신을 보러 온 것입니다.』 《삼국사기》
후에 우왕후가 연우를 즉위시키자, 분노한 발기가 난을 일으켰는데도 백성들이 호응 해주지 않았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우왕후와 연우가 이미 만반의 준비를 했었음을 보여준다. 우왕후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발기가 유력했던 고구려의 왕위는 연우가 차지하여, 고구려 10대 왕인 산상왕으로 즉위했다. 왕실과 국가 그리고 백성들에게까지 버림받은 발기는 비분강개하여 자살하고 말았다.
산상왕은 왕후 우씨 덕에 왕위를 얻은지라 당연히 우씨를 왕후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문제는 우씨가 고국천왕 뿐 아니라 산상왕과의 사이에서도 아들을 낳지 못한다. 이에 후사를 걱정하던 산상왕은 꿈에 후궁을 통해 아들을 얻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우왕후의 눈치를 보느라 후궁은 엄두도 못 냈던 산상왕은 신하들에게 자신의 꿈에 대해 말했다. 을파소는 기다렸다는 듯이 왕에게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고 조언한다. 아마도 후궁을 들여서 후사를 보려는 산상왕이 꿈을 핑계로 명분을 만든 것이라 생각된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