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려의 ‘형사취수제兄死取嫂制’ 3편
■ 고구려의 ‘형사취수제(兄死取嫂制)’ 3편
몇 년 후 나라의 제사에 쓸 돼지가 도망쳐서 어느 마을에 이르렀는데, 어느 예쁜 여자의 도움으로 잡게 되었다. 그 사실을 왕에게 알리자, 왕은 그 마을을 방문하여 여자와 관계를 가지고 아들을 낳으면 버리지 않기로 약조한다. (사실 짜여진 각본에 의한 것이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우왕후는 질투심에 병사를 보내 그 여자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후녀의 기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오히려 산상왕은 우왕후의 처신을 문제 삼고 정식으로 그 여인을 후궁으로 맞이했다.
그 후 돼지를 잡은 후궁(후녀)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11대 왕 동천왕이 된다. 하지만 우왕후는 당연히 후녀와 왕자를 질투했고, 시녀를 보내 후녀에게 일부러 뜨거운 국을 쏟게 하거나 후녀가 아끼는 말의 갈기를 자르는 등 갖은 수단을 동원해 괴롭혔지만, 결국 후녀을 통해 태어난 왕자는 4년 후 정식으로 태자가 되었다.
산상왕이 죽은 후, 동천왕 8년에 우왕후도 사망했다. 우왕후는 사망하기 전 유언으로 “살아서 한 짓을 돌이켜 보니 면목이 없어 고국천왕릉에는 묻힐 수 없고, 산상왕의 무덤에 장사지내 달라”고 했다. 그리하여 우왕후는 유언대로 산상왕과 함께 묻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무녀(巫女)가 말하길, 고국천왕이 아내가 동생과 합장되는 걸 보고 대노하였고, 그가 세상 사람들 보기 부끄러우니 자기 무덤을 가려달라고 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고국천왕의 무덤 주위에 소나무를 일곱 겹으로 심어서 무덤 사이를 가렸다고 한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