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중회화 3편
■ 궁중회화 3편
궁중회화 중 또 중요한 하나는 회화식 지도(地圖)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지도는 현대 서양식 지도, 즉 기호식 지도와 달리 지형이나 지리적인 지식 전달과 함께 그 지역의 인문 지리적인 지식을 포함하는 지도였다. 궁중 화원화가에 의하여 그려진 전통적인 지도는 통치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궁중에서는 지리를 잘 아는 풍수가와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문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파견하여 한 지역을 조사하고 지도로 그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최고의 화원들에 의하여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성을 겸비하는 높은 수준의 지도가 그려졌다.
궁중은 가장 중요한 소장가이며 회화 후원자로서 많은 소장품을 가지고 있었다. 또, 여러 화원 또는 문인화가들에게 그림을 감식(鑑識)하고 제작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왕이 궁중에 소장된 그림을 꺼내놓고 문신들에게 그림에 관한 시문을 짓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또 조선 초 유명한 수장가였던 안평대군은 고려시대 왕실에서 전해져 오던 수장품을 그대로 이어받아 희귀한 중국그림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선조의 <묵죽도>나 정조의 <파초도>에서 확인되듯이 왕들은 스스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고, 때로는 화원들에게 명하여 특정한 주제를 주고 그림으로 표현하게 하기도 하였다. 궁중에서 그려진 이러한 그림들은 민간의 문인이나 직업 화가들의 그림에 비하여 더 교훈적인 주제나 고답(高踏:속세에 초월함)적인 양식을 추구하는 독특한 화풍을 유지하였다. 그림을 나타내는 화(畵)와 회(繪)의 구별은 확실치는 않으나, 화(畵)는 채색보다는 윤곽을 잡는 것을 지칭하는 것 같고, 회(繪)는 채색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도화서는 신라시대의 전채서(典彩署)와 고려시대의 화국(畵局)에서 유래한 것이다. 도화서는 태조 때 설치되어 세조 9년(1463년)까지는 도화원(圖畵院)으로 불리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도화서는 도화(圖畵)를 관장하며 제조(提調) 1인, 별제(別提) 1인을 둔다고 되어 있다. 별제는 화원(畫員)이 진급할 수 있는 최고의 직위였으나, 도화서의 화원들은 신분적으로 천시되었기 때문에 화원에서 진급하여 올라가기보다는 그림을 이해하는 사대부가 임명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화원은 일반적으로 왕실 직속의 어용화가(御用畵家)라 할 수 있는데, 그림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직업화가인 셈이다. 화원(畵員)은 가계(家系)를 이어 가면서 직업화되고 있었다. 화원들이 실제로 맡아서 한 일은 주로 교민화(敎民畵), 장식화(裝飾畵), 세화(歲畵), 경직도(耕織圖), 지도(地圖), 불화(佛畵), 초상화(肖像畵), 지형실경도(地形實景圖), 실경산수사생도(實景山水寫生圖), 모사도(模寫圖), 감상화(鑑賞畵) 등이다. 이 중에 화원들이 주로 하였던 일은 의례, 제례, 의장 등을 그린 의궤화(儀軌畵)였다. 이 밖에 화원들은 병사(兵事), 농업(農業), 의학(醫學), 건축(建築), 지리(地理), 천문(天文) 등 실생활에 관계된 도설(圖說), 삽화(揷畵), 실측도, 단청 등 다양한 일을 맡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