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9일 화요일

세시풍속歲時風俗

■ 세시풍속歲時風俗

■ 세시풍속(歲時風俗)

연말에 행하는 대표적인 궁중 풍습으로는 섣달그믐인 제석(除夕) 때의 풍습이 있다. 섣달그믐날 낮에 궁중에서는 대궐 안을 청소하고 정돈하여 왕과 왕비, 종친, 궁중 관료, 외국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나례의식을 거행하였다. 나례란 궁중과 한양 각처에 귀신을 잡아먹는 사자들을 보내 축귀(逐鬼)하는 가면놀이였다.

구나(驅儺)·대나(大儺)·나희(儺戱)라고도 한다. 섣달 그믐날의 궁중 나례는 보통 편전의 뜰에서 공연되었고, 이것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한양과 경기도 지역에서 징발된 자들이었다. 나례를 관장하는 기관으로 나례청(儺禮廳)이 있었으며, 후에는 관상감에서 이를 담당하였다.

나례 후에는 처용놀이 또는 잡희(雜戱)라는 가면놀이를 공연하였다. 처용놀이는 처용의 탈을 쓰고 귀신을 쫓는 놀이였다. 잡희는 일종의 마당극으로 사설과 노래, 연기를 함께 하였으며, 편전의 월대 위에서 공연하였다. 배우들은 시세를 풍자하는 가면과 복장을 하고, 춤과 함께 사설을 늘어놓았다. 사설은 대부분 양반 관료의 비리와 부패를 풍자하는 내용으로, 관람자들은 잡희를 보면서 재미를 느낄 뿐 아니라 백성들의 여론을 알 수 있었다. 섣달그믐의 절정은 대궐 후원에서 시행하는 불꽃놀이였다.

불꽃놀이는 1년간 쌓인 잡귀를 모두 몰아내고 새해에는 만복을 맞이하겠다는 주술적 의미와 여진이나 일본 등의 주변 민족에게 무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불꽃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폭죽을 만들고 이를 쏘아 올리는 포대도 설치해야 했다. 당시로서는 화약과 포대 모두가 첨단 무기에 해당하였으므로 이 날의 불꽃놀이는 병조와 군기시(軍器寺)의 전문가들이 준비하였다.

불꽃놀이가 끝난 후에는 종정도(從政圖), 작성도(作聖圖) 등의 주사위놀이나 격구(擊毬)를 하며 밤을 새웠는데, 왕은 주사위놀이를 하면서 돈을 내걸어 분위기를 돋우기도 하였다. 각 가정에서는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밤중에는 마당에 불을 피우고 폭죽을 터뜨린다. 집안에 있는 잡귀·사귀(邪鬼)를 모조리 몰아내고 정(淨:깨끗)하게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이다.

정월 대보름은 설날, 추석과 더불어 3대 명절로 쳤다. 민간에서는 대보름날에 부럼을 깨고 더위를 팔았고, 보름달이 떠오르면 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고 쥐불놀이를 하였다. 궁중에서도 일곱 가지 나물과 5곡 밥 그리고 원소병(元宵餠)이라 일컫는 달떡과 약밥, 부름 및 약과를 먹는다. 이 날 궁궐 후원에서는 승정원이 주관하는 내농작(內農作:궐내에서 행하는 농사놀이) 행사를 하였다.

이 행사는 한 해의 풍요를 기원하며 농사의 전 과정을 풀과 볏짚 또는 나무를 이용하여 조각, 형상화해야 하므로 수많은 기술자가 동원되었다. 내농작은 보통 <시경>의 ‘빈풍칠월’(豳風七月) 편을 대본으로 하여 그 내용을 형상화하였다. ‘빈풍칠월’에는 새와 짐승, 밭갈이하는 지아비, 들밥을 나르는 지어미, 누에치는 여자, 베 짜는 할멈 등이 등장한다, 내농작에서는 좌우로 편을 나누어 어느 쪽이 더 정교하게 이들의 모양을 제작했는지 경쟁한 후 이기는 쪽에 왕이 상을 내렸다.

농업에 관련된 또 다른 궐내 풍습으로는 기우제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수년씩 계속되는 가뭄 피해 때문에 비를 기원하는 각종 기우제를 지냈다. 궐내 기우제는 경복궁의 경회루, 또는 창덕궁의 후원 등에서 행하였다. 도롱뇽을 단지에 담아 놓고 아이들로 하여금 나무로 두드리면서 비를 내리면 풀어 주겠다는 합창을 하게 하였다. 이를 ‘석척기우제(蜥蜴祈雨祭)’라 하는데, 도롱뇽을 비바람을 일으키는 용의 일종으로 여기고 있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