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금요일

수양대군과 계유정난 3편

■ 수양대군과 계유정난 3편

■ 수양대군과 계유정난 3편

실록에 나타난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에 대한 결정적 명분은 안평대군과 김종서 등의 역모였다. 그러나 정말로 이들이 역모를 꾀했을까?

단종실록에서 안평대군과 김종서의 역모 증거로 제시되는 것은, 김종서의 측근 이징옥이 북방의 무기를 한양으로 빼돌렸다는 것인데, 안평대군과 김종서 등이 힘을 합쳤다면 역모사건을 조작한 후 한양의 군대를 동원해서 수양대군을 치고 단종을 압박하면 될 일이지, 칼과 창 같은 무기를 굳이 북방에서 한양으로 옮길 이유는 없었다.

또한 영의정 황보인의 노비 아무개가 황보인 등의 구체적 역모계획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갖바치가 등장하는데, 어떻게 일개 종이 거사계획의 내밀한 부분까지 샅샅이 알게 되었는지는 고사하고 그 아무개 종의 이름조차 실록은 밝히지 못하고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이는 수양대군과 한명회가 만든 억지 명분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어쨌든, 수양대군은 거사일을 정하고 활쏘기를 명목으로 군사를 모은 후, 가노(家奴)인 임어을운, 양정 등 소수의 무사들만 데리고 직접 김종서의 집으로 갔다. 임어을운이 방심한 김종서를 철퇴로 내리쳐 북방의 대호라고 불리우던 천하의 명장 김종서는 허망하게 꼬꾸라지고 말았다. 김종서만 해치우면 걱정할 것이 없다던 한명회의 장담대로 김종서가 쓰러지자 수양대군의 행보를 막을 그 어떤 방해도 없었다. 수양대군과 한명회는 그동안 규합한 군졸들을 몰고 그날 밤 입궐해 안평대군이 김종서 등과 공모하여 불경한 짓을 도모하였기에 먼저 김종서 부자를 베었다고 하면서 대신들을 모두 대궐로 불러들이게 하였다.

그날 밤 입궐한 대신들은 문 너머의 책임자 한명회의 손짓 여하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었는데, 야사(野史)에는 한명회가 직접 살생부(殺生簿)를 작성한 후 문을 열고 들어오는 대신들을 죽일지 말지를 고개 짓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 날로 안평대군과 그의 아들은 강화도로 압송되었다가 얼마 뒤 사사(賜死)되니, 안평대군의 나이 36세였다. 또한 잠시 살아났던 김종서 역시 그 날로 이승을 하직했고, 그 외에 수양대군의 반대편에 섰던 무수한 대신들이 죽었으며, 그들의 16세 이상의 아들은 교형(絞刑)에 처해졌고, 15세 이하의 아들은 관노로 전락했다. 처와 첩, 딸은 노비 신분이 된 뒤 공신들에게 분배되었다.

태종 이방원이 저세상에서 손자 수양대군이 형제를 비롯한 무수한 신하들을 죽이고 왕위를 넘보려 한다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면, 과연 뭐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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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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