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민愛民을 실천한 세종대왕 3편
■ 애민愛民을 실천한 세종대왕 3편
세종은 지금 봐도 놀라운 정책인 국민투표까지 실시했다. 세종은 토지법 제정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관리를 파견하여 약 5개월에 걸친 국민투표로 민심을 파악했다.
세종은 관리등용에도 애민정책을 실시했다. 세종 초기 10년간은 가뭄으로 인한 기근이 아주 극심했다. 당시 과학으로서는 기근에 왕이 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일이 기우제를 자주 지내는 일 그것 밖에 없었다. 세종은 기우제만이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천민출신이지만 과학에 뛰어난 장영실을 신하들 반대를 무릅쓰고 등용했다. 장영실은 이런 세종의 뜻에 따라서 자격루와 측우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세종은 행촌 이암이 원나라로부터 수입한 농상집요라는 책을 참고해서 체계적인 영농법의 연구를 바탕으로 쓴 책인 농사직설을 편찬하여 농업 생산에서 혁신이 일어나게 한다. 농사직설의 간행은 그 당시 농업 생산량을 대폭 증대시켜 백성들의 생활을 개선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세종은 천민이라 하더라도 하늘의 백성으로서 다 똑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비록 천민이라 하더라도 인재로 쓰는 인사 정책에서 세종의 인간존중 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 세종의 애민정책의 결정판은 훈민정음 창제이다. 한자만을 읽고 쓰던 조선의 지배층인 양반들은 백성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지식이 깊어지고 힘이 커질 것을 두려워해 백성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세종은 백성의 입장에서 모든 백성이 글을 읽고 쓰는데 어려움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를 하게 되어 백성들도 문자생활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재위 32년 동안 세종이 꿈꿔온 목표는 모든 백성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애민군주의 참모습을 세종이 보여주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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