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 목요일

애민愛民을 실천한 세종대왕 3편

■ 애민愛民을 실천한 세종대왕 3편

■ 애민愛民을 실천한 세종대왕 3편

세종은 지금 봐도 놀라운 정책인 국민투표까지 실시했다. 세종은 토지법 제정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관리를 파견하여 약 5개월에 걸친 국민투표로 민심을 파악했다.

세종은 관리등용에도 애민정책을 실시했다. 세종 초기 10년간은 가뭄으로 인한 기근이 아주 극심했다. 당시 과학으로서는 기근에 왕이 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일이 기우제를 자주 지내는 일 그것 밖에 없었다. 세종은 기우제만이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천민출신이지만 과학에 뛰어난 장영실을 신하들 반대를 무릅쓰고 등용했다. 장영실은 이런 세종의 뜻에 따라서 자격루와 측우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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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종은 행촌 이암이 원나라로부터 수입한 농상집요라는 책을 참고해서 체계적인 영농법의 연구를 바탕으로 쓴 책인 농사직설을 편찬하여 농업 생산에서 혁신이 일어나게 한다. 농사직설의 간행은 그 당시 농업 생산량을 대폭 증대시켜 백성들의 생활을 개선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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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천민이라 하더라도 하늘의 백성으로서 다 똑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비록 천민이라 하더라도 인재로 쓰는 인사 정책에서 세종의 인간존중 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 세종의 애민정책의 결정판은 훈민정음 창제이다. 한자만을 읽고 쓰던 조선의 지배층인 양반들은 백성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지식이 깊어지고 힘이 커질 것을 두려워해 백성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세종은 백성의 입장에서 모든 백성이 글을 읽고 쓰는데 어려움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를 하게 되어 백성들도 문자생활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재위 32년 동안 세종이 꿈꿔온 목표는 모든 백성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애민군주의 참모습을 세종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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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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