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택 3편
■ 간택 3편
간택의 기준은 오늘날의 기준과는 큰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황당하기까지 한 것도 있었다.
- 키는 크지 않아야 한다.
- 이마와 머리결 사이의 선이 갈매기 모양(M자 모양)이 아닌 둥근 모양이어야 한다.
- 눈은 쌍꺼풀이 지면 안 되고, 눈꼬리가 약간 처져야 한다.
- 코는 끝이 뽀족하지 않고 둥근 모양에 입술은 얇아야 했고 목도 길지 않아야 한다.
- 손과 발은 작은 반면 엉덩이는 커야 한다.
- 피부는 희고 고와야 한다.
- 가슴이 작고 턱도 주걱턱이어야 한다.
(가슴이 크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주걱턱은 성품이 착하다는 징표로 해석)
- 목이 두꺼우면 안된다.(처녀가 아닐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 탓)
- 양미간이 좁으면 안된다.(남자를 밝힐 우려가 있다는 판단)
- 입술이 자색(紫色)이어서도 안된다.(건강하지 않아서 출산에 지장을 줄 우려)
이러한 기준은 미적 외모를 갖추기 보다는 인자하고 어진 호감형 인상을 주는 사람을 뽑겠다는 것이다. 왕비에 대한 평가는 인자함과 지성이 우선이고 미모는 나중이었던 셈이다. 이 기준이 중전, 세자빈 간택 뿐 아니라 민간에도 널리 퍼져 일반 가정에서도 며느리를 들일 때 적용했다고 한다.
당시 왕실에서 선호한 왕비감은 오늘날 미인의 기준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먼저 현재 사진으로 남겨진 조선후기 왕비들의 모습을 보면, 현대적 기준으로 봤을 때 그리 뛰어난 미인은 아니었다. 조선후기의 화원 신윤복의 미인도에 그려진 얼굴이 실제 왕비들의 모습과 흡사한 점이 많다고 한다. 얼굴이 복스럽고 턱은 둥글고 크며 눈은 가늘고 눈썹이 가지런한 모습이다. 조선시대에 선호되었던 인물은 팔등신의 날씬한 미인이라기보다는 전반적으로 견실하고 반듯한 모습을 갖추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인에 대한 기준이 시대에 따라 달라졌음은 중국의 절세미인이라는 양귀비가 매우 통통한 모습으로 전혀 현대적인 미인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삼간택에 올라간 세 명 중 한 명이 왕비나 세자빈으로 낙점되면 나머지 둘은 결혼도 하지 못하고 평생을 혼자서 살거나 왕의 후궁이 되기도 하였다. 왕의 여자가 될 뻔한 여인을 누가 감히 아내로 맞이할 수가 있겠는가.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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