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7일 수요일

궁인宮人 기씨 원의 황후가 되다 3편

■ 궁인宮人 기씨 원의 황후가 되다 3편

■ 궁인(宮人) 기씨 원의 황후가 되다 3편

타나시리의 친정은 이에 격렬하게 반발했다. 황후의 형제들은 순제를 제거해 가문의 세력을 보존하려 하다가 오히려 사전에 발각되었고, 순제는 1335년 승상(丞相) 빠앤白顔과 손잡고 타나시리의 친정을 황제역모 사건에 연루시켜 제거했다. 타나시리의 남매가 모반을 꾸민 혐의로 멸문하면서, 타나시리도 황후에서 폐위되어 유배 가는 길에 만 15세의 나이로 독살당했다. 타나시리를 없애는 데 성공한 기씨는 이제 황후자리는 자신의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기씨가 황후자리를 차지하기에는 몽골족의 전통이 너무 강했다. 이번에는 타나시리 친정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던 승상(丞相) 빠앤도 적극 반대하고 나선 것이었다. 관직 이름만 246자(字)에 달했던 빠앤은 사실상 순제를 능가하는 세력가였다. 순제는 결국 어쩔 수 없이 황실의 전통에 따라 옹기라트 가문의 빠앤후두伯顔勿都를 황후로 맞이했다.

기씨는 비록 황후가 되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세력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이미 일개 공녀 출신의 시녀가 아니었다. 황제의 총애에 고려출신 환관들의 지원까지 받는 실력자가 된 것이다.

기씨는 1339년 순제의 아들 황태자 아유시리다라愛猷識理達臘를 낳아 입지가 더욱 확고해진 상태로, 승상 빠앤을 축출하기로 결심했다. 기씨의 조종을 받은 순제는 스승 샤라빤沙刺 班과 손잡고 빠앤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거사 성공 직후 샤라빤이 순제에게 기씨를 제2황후로 책봉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이 거사의 배후에 그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빠앤까지 제거된 원 조정에서 그녀의 황후책봉을 반대할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공녀로 끌려왔던 기씨 처녀는 드디어 세계를 지배하는 원제국의 제2황후가 되었다. 제1황후(빠앤후두)가 있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황후가 된 기씨는 제1황후를 능가하는 세력을 가지게 되었다. 고려 여인 가운데 원의 7대 황제인 세조(쿠빌라이)의 총애를 받은 이씨가 있었고, 10대 인종仁宗 때에 영비(英妃)가 된 고려 여인도 있었지만, 자신의 실력으로 황후가 된 인물은 기황후(奇皇后)뿐이었다. 기황후와 같이 고려 여자들이 원에서 지위가 높아지는 경우가 더러 생기자, 고려에서는 스스로 딸을 원으로 보내고, 그 덕으로 출세를 해 보려는 자들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기황후는 고려 미인들을 대신 중에 권력이 있는 자들에게 보내 주었는데, 당시 원나라 고관과 귀인들은 고려 여인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명가(名家)라고 불리었다. 순제 이후로 궁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태반이 고려 여인이었으므로 몽고 왕실에는 자연스럽게 고려의 풍습이 유행하게 되었다. 공녀로 끌려와 천대받던 고려 여인들의 처지는 그녀 덕분에 완전히 뒤바뀌었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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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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